우승의 경영학…LG트윈스의 매직 ‘T·W·I·N·S’ [매니지먼트]
LG트윈스가 29년 만에 한국프로야구 통합 우승을 쟁취했다. 야구계 관계자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2023시즌 시작 전 LG트윈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지금이야 최강팀으로 꼽히는 LG트윈스지만, 본래부터 강팀은 아니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오히려 약팀에 가까웠다. 2002년 준우승을 차지한 뒤 10년 넘는 세월 동안 하위권을 전전했다. 2010년대 초반에는 들쭉날쭉한 성적을 기록하며 ‘그저 그런 팀’으로 취급받았다. 수많은 실패를 겪고 나서 LG트윈스는 근본적인 변화를 꾀했다. 우선 조직을 통째로 바꿨다. 선수 육성부터 선수단 문화, 팀 운영 전략 등을 모두 고쳤다. 기존의 강팀들을 연구, 그들의 강점을 LG트윈스에 하나하나 이식했다. 필요하면 라이벌팀 전략도 서슴없이 벤치마킹했다. 개혁이 성공하면서 팀은 진화했다. 그저 그런 팀에서 가을야구에 매년 진출하는 강팀으로, 그리고 마침내 한국시리즈 우승팀으로 거듭났다. 약팀을 강팀으로 바꾼 비법, LG트윈스의 경영 전략을 ‘TWINS’라는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근본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고쳐라
2003년부터 2012년까지 LG트윈스는 10년 연속 포스트시즌(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해당 기간 LG트윈스는 약팀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투수 박명환, 타자 이진영 등 스타 선수를 고액에 영입했고, 현대유니콘스에서 여러 번 우승을 차지한 김재박 감독도 선임해봤다.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기나긴 부진에 LG 구단은 근본적인 원인을 돌아봤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해냈다. 바로 선수 ‘육성’의 부진. 선수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탓에 전력에 계속 구멍이 생겼다.
당시 야구계에서는 ‘탈(脫)LG 효과’라는 말이 유행했다. LG트윈스에서 이적한 신인 선수가 다른 팀에 이적하면 잠재력을 터뜨리며 활약한다는 뜻이다. 실제 이용규, 서건창, 박병호 등 유망주들은 LG를 벗어나자마자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용어까지 나올 정도로 LG트윈스의 육성 정책은 어긋나 있는 상태였다. 구단은 대대적으로 육성 조직 정비에 들어갔다. 설비부터 고쳤다. 기존 LG 2군 연습구장인 구리구장은 환경이 열악했다. 설비는 낡았고, 선수를 유혹하는 유흥가가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2군에서 선수를 제대로 키울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셈이다. 2014년 LG 구단은 450억원을 들여 경기도 이천에 최신 시설의 2군 훈련구장 ‘챔피언스파크’를 건립했다. 세계 최대 규모 야구 전용 실내 연습장, 한겨울에도 훈련이 가능한 야외 설비 등을 갖춘 육성용 야구장이었다.
설비 보수와 함께 선수 육성, 신인 스카우트 팀을 강화했다. 성과는 2018년부터 서서히 드러났다. 유망주의 무덤으로 불리던 팀은 어느새 특급 신인이 넘쳐나는 역동적인 팀으로 변모했다.
기업을 회생시킬 때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근본 원인’ 파악이다. 회사가 실패를 거듭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면 어떤 해결책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2010년 일본항공(JAL) 부활을 위해 투입됐을 때, 가장 먼저 진행한 작업 역시 원인 분석이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2조엔이 넘는 빚을 기록하며 파산한 JAL의 근본 문제로 ‘공기업식 운영’을 꼽았다. 1951년 설립 이후 ‘반관반민’ 형태로 운영되던 JAL은 1987년 완전 민영화했지만, 경영진이나 경영 방식은 ‘관(官)’ 체질을 벗지 못했다. JAL을 준국영기업으로 취급한 일본 정부는, 주민들 표를 의식해 채산성 없는 지방 공항에 취항토록 압박했다. 이는 곧 역대급 부실로 이어졌다.
이나모리 회장은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JAL은 다시 몰락의 길을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공기업 마인드’ 타파에 나섰다. 시간당 채산의 목표치를 월간·연간으로 책정했다. 결과는 부문마다 실시간으로 점검했다. 비행 편(便) 하나하나마다 각각 수지를 측정했다. 동시에 ‘의무감’으로 유지하던 적자 노선을 30% 가까이 줄였다. 결국 JAL은 파산한 지 2년 뒤인 2012년 사상 최고 영업이익인 2049억엔을 거두며 부활에 성공했다.
적당주의 버리고 ‘이기는 문화’ 확립
육성 조직 정비를 마무리한 LG 구단은 ‘선수단 문화’ 확립 단계에 돌입했다. 하위권을 맴돌던 기간 동안 LG 선수단은 개인주의 문화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수 개개인의 성적은 좋았지만, 정작 팀 순위는 늘 아래였다. 일부 선수는 불법 도박 같은 일탈을 일삼으며 사생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LG 구단은 아무리 2군에서 유망주를 육성해봤자, 1군 선수단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강팀이 되기는 힘들다고 내다봤다. 선수단 문화를 바꿔줄, ‘리더’를 찾기 시작했다. 2018년 그 적임자를 찾았다. 두산베어스에서 10년간 맹활약한 타자이자, 메이저리그까지 다녀온 타자 김현수였다. 4년 총액 115억원을 주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현수를 품었다. LG 구단은 그에게 경기에서의 활약은 물론 선수단을 휘어잡을 ‘더그아웃 리더’ 역할을 기대했다. 강팀이었던 두산,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익힌 ‘이기는 문화’를 심어달라고 요구했다.
결과는 대성공. 김현수는 2019년부터 3년간 주장으로서 LG 선수단의 조직 문화를 180도 바꿔놨다. 적당주의 타성에 젖은 주전급 후배 선수들에게는 “방심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신인들은 기죽지 말고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독려했다. 선수들이 오롯이 야구에만 집중하도록 리더 역할을 도맡았다. 야구계에서는 김현수의 영입 후 LG 구단에 이기는 문화, ‘위닝 컬처’가 자리 잡았다고 평가한다.
경영학에서 조직 문화는 조직 관리의 ‘정수’로 꼽힌다. 아무리 좋은 경영 전략도, 나쁜 조직 문화 안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게 경영학계 정설이다. 1990년대, 부진에 빠진 IBM을 굴지의 IT 기업으로 부활시킨 루이스 거스너는 조직 문화를 꾸준히 강조해온 CEO로 유명하다. 그는 “10년 가까이 IBM에 있으면서 나는 조직 문화가 성공을 결정짓는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조직 문화 그 자체가 승부처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Internalization ]
핵심 역량은 ‘내부에서’ 키워라
팀의 기틀이 잡히고 난 후, 2019년부터 2021년까지 LG트윈스는 3년 연속 외부 FA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다. 구단주인 구광모 LG 회장 뜻이었다. 구 회장은 2019년 부임 직후, 차명석 LG 단장을 직접 호출했다. 그리고 ‘1년 반짝이 아닌 지속 가능한 강팀’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물었다.
차 단장은 “팜(대체 선수, 육성하는 선수)이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팀이라면 몰라도 하위권 팀은 3년 안에 우승 못합니다. 지속적인 강팀으로 우승까지 넘보려면 5년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팜을 키우는 시간인 3년 동안은 외부 FA를 잡지 않겠습니다”라고 그 자리에서 답했다. 약속대로 LG트윈스는 해당 기간 외부 FA를 영입하지 않았다.
매력적인 매물이 없는 게 아니었다. 약점으로 꼽히던 2루수, 3루수, 선발 투수 자리를 꿰찰 선수가 시장에 나왔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내부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2군에서 올라온 신인 자원을 계속 투입하며 성장을 유도했다. 구단주와 팀의 지원 아래 팀 내 유망주였던 홍창기, 문성주, 문보경, 정우영, 고우석 등은 기회를 보장받으며, 빠른 속도로 실력을 쌓았다. 구 회장과의 약속이 끝난 2021년 무렵, 이들 유망주는 국가대표급 선수로 거듭났다. 그리고 LG트윈스의 핵심 멤버로 자리 잡았다.
제너럴일렉트릭(GE)을 40배 넘게 성장시킨 전설적인 CEO 잭 웰치는 내부 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GE의 변혁은 크로톤빌(GE의 인재 연수기관)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하며 내부 육성의 중요성을 설파해왔다.
잭 웰치는 인적 자원 개발을 여타 경영대학원이나 교육훈련기관에 위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직접 강사로 나서 시간을 할애할 만큼 내부 인재 교육에 시간을 쏟아부었다. 크로톤빌을 거쳐 간 1만8000명의 직원은 훗날 GE의 폭발적인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빈틈없이…A급 인재로 가득 찬 조직
LG트윈스가 본격적인 우승을 위해 도전을 시작할 때, LG 구단은 팀의 고질적인 문제를 발견했다. 수비력을 갖춘 중견수의 부재, 주전 포수 이탈, 그리고 부족한 토종 선발 투수 숫자였다.
중견수는 외야 수비를 지휘하는 핵심 포지션이다. 특히 수비 하나로 경기 분위기가 달라지는 포스트시즌 특성상, 넓은 수비 범위를 가진 중견수는 필수였다. 기존 LG 외야수들은 타격은 좋았지만, 수비에서는 ‘S급’으로 부를 만한 선수가 없었다.
설상가상 리그 최정상급 포수로 꼽히던 유강남이 타팀으로 이적했다. 외국인 선수를 받쳐줄 토종 선발진도 부족했다. 김광현, 고영표 등 확실한 국내 에이스 선발 투수를 가진 경쟁팀과 달리 LG는 확실한 에이스 카드가 없었다.
가을야구와 같은 단기전은 전력에 구멍이 존재하면 팀이 승리하기 힘들다. 전 포지션을 A급 선수로 채운 팀만이 결국에는 우승을 차지한다. 가을야구에서 성과가 부진한 LG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부 육성만으로는 전력 누수를 단시간에 메우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했다. A급 선수 영입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22년 리그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박해민을 영입했다. 유강남의 빈자리 역시 2023년 리그 최정상급 포수 박동원을 사 와 해결했다. 2023시즌 도중 키움에서 최원태를 트레이드로 데려오며 선발진 보강까지 마쳤다. LG는 전 포지션을 A급 이상으로 채우면서 ‘적수가 없는 팀’으로 재탄생했다.
업계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는 기업은 조직을 철저히 ‘A급 인재’로만 구성한다. 인류의 우주 탐사 ‘특수부대’를 자처하는 민간 우주 항공 업체 스페이스X가 대표적인 예다. 스페이스X는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의 면접을 거쳐 최고 실력을 지닌 엔지니어만 채용하기로 유명하다. ‘A급 인재’로만 구성된 스페이스X의 엔지니어들은 재사용 가능한 우주 발사체 팰컨9호를 17억달러도 안 되는 비용으로 개발해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1년 보고서를 통해 “NASA가 다른 하도급 업체와 함께 이런 발사체를 제작했다면 약 40억달러의 예산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최적화된 ‘전문가’형 리더 선임
2022년 시즌 전 ‘우승 전력’이라 평가받았던 LG는 정규 시즌 기세를 탄 SSG에 밀려 2위로 시즌을 마쳤다. 가을야구에서는 한 수 아래로 꼽힌 키움에 허무하게 시리즈를 내주며 탈락했다. LG 구단은 문제의 진단을 ‘리더십’에서 찾았다. 경기 전략을 결정하는 감독·코치진의 ‘큰 경기 경험’이 부족했다. 결정적인 순간 우왕좌왕하며 경기를 내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승이라는 팀의 29년 숙원을 풀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운 감독의 조건은 명확했다. LG의 문화를 잘 이해하면서 동시에 감독, 단장으로 큰 경기를 여러 번 성과를 거둔 사람이어야만 했다. LG는 조건에 맞는 전문가를 후보군에 올리고 감독 후보군을 물색했다. 조건에 맞는 사람을 확인하고 바로 감독으로 선임했다. 염경엽 감독이었다.
염 감독은 LG에서 프런트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덕분에 LG 구단 내부의 사정을 잘 알았다. 2014년 넥센 감독으로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2018년에는 SK 단장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염 감독은 구단 기대에 부응했다. 철저한 계산속에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정규 경기 우승을 견인했다. KT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는 선발 투수 조기 교체, 과감한 주루 플레이(주자가 베이스에서 다음 베이스로 달리는 것)로 승리를 가져왔다.
애플이 회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던 창업주 스티브 잡스 사후에도 잘나가는 배경에는 최적화된 리더 선임이 자리 잡는다. 애플 이사회는 잡스 후임으로 ‘팀 쿡’을 지목했다. 이유는 2가지였다. 우선 애플 출신이라는 점. 잡스의 최측근으로서 그의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이가 팀 쿡이었다. 동시에 그는 생산·재고 관리 전문가였다. 다른 빅테크 대비 이익률이 낮다는 애플의 약점을 해결해줄 인재였다. 팀 쿡의 지휘 아래 애플은 전 세계 기업 시가총액 1위를 달성했다. 주가는 잡스 사후 7배가량 뛰었다. 애플뮤직, 애플TV, VR 서비스 등 혁신도 성공시키며 애플을 독보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6호 (2023.11.29~2023.12.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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