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특례 뭐가 문제길래…파두는 빙산 일각?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11. 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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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때리기 NO…혁신 기업 위축 우려

반도체 설계 기업 파두의 3분기 매출 공백 사태로 ‘뻥튀기 상장’부터 ‘사기 상장’까지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진다. 최근에는 파두 상장 방식인 기술특례 제도로 불씨가 옮겨붙었다. 일각에서는 “특례 제도는 투자자들의 구주 엑시트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개인 투자자 사이에는 ‘특례 제도 무용론’까지 번질 조짐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부 극단적 사례가 제도 자체의 문제로 일반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자칫 기술 혁신 기업의 자본 시장 진입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미래 성장성이 높지만 당장 재무적 성과는 부족하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자본 시장의 모험자본 공급이 필수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벤처캐피털(VC) 대표는 “파두 사태의 본질은 증권신고서 내 ‘매출 뻥튀기’지 기술특례가 아니다”라며 “기술특례에 대한 과도한 규제 등 일방적 여론몰이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롤모델’ 없는 기술특례

기술성 초점 맞춰 질적 평가

특례상장 제도는 혁신 기업의 상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상장 요건을 완화하거나 일부를 면제하는 제도다. 제도 특성상 기술과 성장성에 초점이 맞춰져 적자 기업도 상장할 수 있다.

특례상장은 크게 ‘기술특례’와 ‘이익 미실현(테슬라 요건)’으로 나뉜다.

기술특례는 기술성 트랙과 성장성 트랙으로 다시 구분된다. 기술성 트랙은 전문평가기관 2곳에서 BBB등급 이상의 기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가운데 한 곳에서는 A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파두도 상장 전 기술성 평가에서 AA와 A등급을 받았다. 성장성 트랙은 상장 주관 증권사가 기업의 성장성을 판단, 추천하는 형태다. 기술특례는 이렇다 할 롤모델 없이 성장해왔다. 해외에도 혁신 기업 상장 지원을 돕는 사례는 있지만, 기술성에 초점을 맞춰 질적 평가를 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미국 나스닥은 애초에 상장 진입 문턱이 낮은 편이다. 상장 추진 비용과 상장 후 유지 비용이 부담돼 진입에 어려움을 겪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기술특례 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기술 가치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특례를 노크하는 기업은 유형자산보다는 무형자산이 핵심 경쟁력이지만 기술 종류와 영역이 워낙 광범위해 ‘고무줄 평가’가 이뤄진다는 지적이 진작부터 잇따랐다. 학계에서도 기술 등 무형자산 가치 평가 방법론에 대해 여러 의견이 백가쟁명식으로 거론된다.

특히 기술성 평가는 기술특례상장 준비 기업이 마주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기술성 평가는 예비 상장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의 수준을 따져보는 것이다. 문제는 그간 기술성 평가가 ‘깜깜이’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평가 항목이나 시스템을 평가기관 자율에 맡긴 탓이다. 총 24곳의 평가기관(국책연구기관 17개·기술신용평가기관 7개)이 각자 프로세스로 예비 상장 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했다. 같은 기업도 평가기관에 따라 다른 등급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해 ‘고무줄 평가’ 논란이 잇따랐다.

실제 실적과 당초 회사 측에서 제시한 추정치가 괴리가 큰 것도 기술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 가운데 3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기업 10곳(스팩합병 제외) 중 8곳의 올해 누적 매출이 목표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에스바이오메딕스의 올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2억6000만원이다. 이는 공모 때 제시한 47억원의 6% 수준에 불과하다. 자람테크놀로지(22%), 시큐레터(32%), 아이엠티(32%), 센서뷰(34%), 씨유박스(38%), 큐라티스(48%) 등도 누적 매출액이 목표치의 절반을 밑돌았다.

예비 상장 기업의 불만이 이어지자 한국거래소는 최근 개선안을 내놨다. 올 2월 ‘표준 기술 평가 모델’이 고민의 결과다.

한국거래소는 “평가기관마다 상이한 평가 모델을 사용해 동일 기업에 대해서도 평가기관에 따라 등급 편차가 발생한다”며 도입 배경을 밝혔다. 지난 7월에는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추가 개선안을 내놨다. 평가기관의 기술 평가팀에 해당 분야 기술 전문가(박사) 40% 이상 참여를 의무화했다. 한국거래소는 개정안을 바탕으로 상장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다.

단계적 ‘파인 튜닝’ 필요

제도 무력화는 안 될 일

주관사 책임 강화도 자주 언급되는 보완점 중 하나다.

책임 강화라는 큰 방향에는 이견이 없지만 각론을 두고는 의견이 갈린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주관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과 주관사 책임 강화가 기술특례 활성화를 방해한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한국거래소는 주관사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국거래소는 성장성 트랙 기업에 적용되던 ‘풋백옵션(환매청구권)’을 기술성 트랙에도 도입할 방침이다. 기술특례 기업이 상장 후 2년 내 부실화(상장폐지 사유 발생 등)하면 주관사가 기업공개 공모에 참여한 일반 투자자에게 ‘환매청구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시장 일각에서는 환매청구권 의무를 부여하기 위한 문턱이 높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반면, IB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감지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2년은 과도하게 긴 기간”이라며 “과도한 책임 부여는 기술특례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국내 증시 특성과 맞물려 기술특례 제도가 입방아에 오른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의 ‘거래소 특례상장 증가와 투자자 보호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오테크 등 혁신 기업의 경우 제품화나 기술 이전 계약까지 많은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신약 개발을 예로 들면 평균 15년 동안 1조원 이상이 필요하고 출시 성공률은 0.01%에 불과하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바이오는 제품화까지 불확실성이 높고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산업”이라며 “문제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기술특례상장 기업에 내재된 위험을 인지·분석하고 감내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며 임상실험 실패가 발표될 때마다 주가가 급변동한 사례가 많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파두 같은 극단적 사례를 일반화하며 ‘기술특례 제도가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적절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특례 제도는 ‘미세 조정(Fine-tuning)’이 필요할 뿐 제도 자체를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VC업계 관계자는 “기술 평가에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3개월 이상인데, 벤처 특성상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면심사·현장실사 중복 대응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요소”라며 “기술력 부실기업 상장 등에 대한 우려를 덜어낼 수 있도록 여러 이해관계자가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력을 갖춰 미래 이익 창출 잠재력 있는 기업에 충분한 자금 조달 기회가 부여되는 것은 국가 경제에 중요하다는 점에서 현행 제도는 유지하면서 ‘스크리닝(평가·감시)’ 기능이 강화될 수 있도록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6호 (2023.11.29~2023.12.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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