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 사태 일파만파…기술특례 쇼크
70%가 공모가 밑돌아…주관사 성토
최악의 어닝 쇼크를 기록한 파두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하면서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성난 투자자에게 뭇매를 맞는다. 2005년 도입된 기술특례상장은 기술 잠재력이 큰 기업이 모험자본을 공급받아 날개를 펼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상장 심사 문턱을 낮춰주는 제도다. 일반 상장은 매출, 이익 등 재무지표를 엄격히 따지는 반면, 기술특례는 전문기관의 기술 평가에 더 큰 비중을 둔다. 2017년까진 기술특례상장 기업 수가 연간 한 자릿수에 머물 정도로 드물었으나 주관사가 성장성을 평가하는 ‘성장성 특례’가 도입된 뒤 확 늘었다. 특례상장 기업이 늘면서 부실 논란도 잇따른다. 2018년 이후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 10곳 중 7곳의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모가를 적정 가치보다 훨씬 높게 잡았거나 기술 평가가 엉터리로 이뤄졌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기술특례 제도 자체를 문제 삼지는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기업공개(IPO) 시장 불신을 자초한 주관사단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기업공개의 가격 발견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파두 사태로 촉발된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허점과 주관사단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짚어본다.
올 하반기 코스닥 기업공개 ‘대어’로 꼽혔던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파두가 최악의 어닝 쇼크를 기록한 가운데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투자자의 ‘성난 민심’은 상장 주관사단과 한국거래소 등을 향한다. 상장 당시 실적 추정치를 믿고 투자에 나섰던 주주들은 상장을 대표 주관했던 NH투자증권과 공동 주관한 한국투자증권을 대상으로 집단소송을 추진 중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초대형 투자은행(IB)을 비롯한 주관사단의 평판 시장을 별도로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특례 뭐가 문제
고무줄 기술 평가
당장 입길에 오른 것은 기술특례상장 제도다. 2005년 도입된 기술특례상장은 현재 수익성은 낮더라도 기술 잠재력이 큰 기업이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에 갇히지 않도록 상장 심사 기준을 낮춰주는 제도다. 매출, 이익, 시가총액 등 재무 요건을 엄격히 따지는 일반 상장과 달리 기술특례로는 자기자본 10억원 이상이거나 시가총액 90억원 이상이면 전문기관의 기술 평가를 받아 상장을 추진할 수 있다. 2017년까지는 기술특례상장 기업 수가 연간 한 자릿수에 머물 정도로 드물었지만 이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술특례상장은 문재인정부 때 ‘성장성 특례 요건’이 추가되면서 급증했다. 성장성 특례 요건은 벤처·중소기업에 모험자본 공급을 위해 상장 주관을 맡은 증권사가 성장성을 평가해 추천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시행된 뒤 기술특례상장이 대폭 늘었다. 2017년 5개에 불과했던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2018년 21개로 급증했고 올 들어 현재까지 32개 기업이 기술특례를 통해 상장했다.
기술특례상장이 늘면서 부실 상장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기술특례를 통해 상장한 기업 가운데 스팩합병·상장폐지 종목을 제외한 149곳 중 102곳(68%)의 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10곳 중 7곳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것. 달리 말해, 공모가를 지나치게 높게 잡았거나 기술 평가가 엉터리로 이뤄졌을 수 있다는 의미다.
2020년부터 올 11월 21일까지 상장한 곳들의 공모가 대비 현 주가(11월 21일 종가) 수익률을 비교해봐도 기술특례 공모가 산정의 허점을 엿볼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1년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연도의 경우 일반 상장 기업 수익률이 기술특례상장 기업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해는 일반 상장 기업 평균 수익률이 28%였던 반면, 기술특례상장 기업 평균 수익률은 11%대에 그쳤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올 들어 11월 21일 기준 일반 상장 기업의 수익률은 26%였으나 특례상장 기업은 -1%에 머무른다.
실적도 당초 회사 측에서 제시한 추정치와 괴리가 컸다. 올해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 가운데 3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기업 10곳(스팩합병 제외) 중 8곳의 올해 누적 매출이 목표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에스바이오메딕스의 올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2억6000만원이다. 공모 때 제시한 47억원의 6% 수준에 불과하다. 자람테크놀로지(22%), 시큐레터(32%), 아이엠티(32%), 센서뷰(34%), 씨유박스(38%), 큐라티스(48%) 등도 누적 매출액이 목표치의 절반을 밑돈다.
거래정지나 상장폐지 등까지 간 곳도 적지 않다. 2018년 상장한 철도·환경 사업 기업 유네코는 대표이사의 횡령·배임 혐의로 경영난을 겪다 감사의견 거절로 올 1월 상장폐지됐다. 거래가 정지된 이노시스·어스앤에어로스페이스·셀리버리 등도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악재 공시 전 경영진이 주식을 미리 내다 판 혐의 등으로 큰 혼란을 빚었던 신라젠, 경영권 분쟁 등으로 소액 주주의 거센 반발을 산 헬릭스미스도 기술특례상장 기업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기술특례 제도 자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적기에 모험자본을 공급받아 성장동력 투자에 나서는 것은 산업 구조 선순환 측면에서도 순기능이 적지 않다. 시장에서는 알테오젠, 레인보우로보틱스, 파크시스템스, 루닛 등을 기술특례상장 성공 사례로 꼽는다. 알테오젠은 정맥주사를 피하주사로 바꿔 환자가 스스로 주사를 놓을 수 있게 하는 기술로 대형 제약사들과 기술 수출 계약을 맺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 지분 투자 뒤 로봇 업종 주도주로 자리매김했다. 원자현미경 개발 업체 파크시스템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 등도 시장의 호평을 받는다.
기술특례상장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자 한국거래소는 제도 개선을 위해 시행 세칙 개정을 예고했으나 시장에서는 ‘제2의 파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개선 방안에는 기술특례상장 유형 체계화·합리화, 기술특례상장 기업에 대한 상장 주선인 책임성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정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주관사 책임을 강화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다수다. 주관사에 환매청구권(풋백옵션) 의무를 부여하기 위한 문턱이 높을 뿐 아니라, 파두와 유사한 사태를 선제적으로 예방할 만한 조치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매청구권은 특례상장을 주관한 증권사가 일반 공모에 참여한 투자자에게 손실 한도를 보증해주는 제도다.
실적 공시의 허점을 어떻게 보완할지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파두 사태는 신규 상장사에 허용되는 실적 공시 유예 규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신규 상장사가 증권신고서를 통해 사업보고서에 준하는 사항을 공시할 경우 해당 분기 보고서 제출을 면제해준다. 파두가 올 3분기 보고서로 실적을 발표했을 때 시장이 충격에 빠졌던 것은 2분기(4~6월) 매출이 5900만원에 불과했다는 게 5개월 뒤인 11월에서야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른 상장 기업이 3개월마다 분기·반기 보고서로 실적을 공시하는 것과 비교하면 두 달 이상 ‘실적 쇼크’를 감출 수 있었던 셈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술특례의 정책적 목표와 투자자 보호는 태생적으로 트레이드오프(상충) 관계를 맺고 있다”며 “보호예수 기간을 늘리는 등의 조치는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며 과도기를 거치는 동안 주관사와 거래소가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상장사, 회계법인 등이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면 기술특례 제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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