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어 필수의약품도 ‘메이드 인 USA’…바이든의 ‘공급망 드라이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공급망 강화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공급망 회복력 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안보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필수의약품의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위해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ㆍDPA)을 발동하겠다고 했다. 반도체ㆍ배터리ㆍ바이오산업의 미국 내 생산 확대에 전력투구해 온 바이든 대통령이 필수의약품까지 ‘메이드 인 USA’ 품목으로 묶은 것이다. 미 경제안보의 근간이라고 보는 공급망 확보의 대상이 첨단기술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신설된 공급망 회복력 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미국 가정의 비용을 낮추고 국가안보에 중요한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30여개의 공급망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레이얼 브레이너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맡는다. 각각 안보와 경제를 관할하는 백악관의 양대 사령탑이 총괄 책임을 지는 구조다. 여기에 농무ㆍ상무ㆍ국방ㆍ에너지ㆍ보건복지ㆍ국토안보ㆍ노동ㆍ국무ㆍ교통ㆍ재무ㆍ법무 등 주요 부처 장관과 국가정보국(DNI) 국장,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생중계된 회의 모두발언에서 ‘공급망 회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코로나19팬데믹 기간 부품과 제품 공급이 수년간 지연된 일을 겪고 나서는 공급망이 왜 중요한지 모두가 알게 됐다”며 공급망 회복을 위해 자신이 펴온 전방위적 노력을 부각했다.
취임 첫달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을 국내로 가져와 상품을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하는 포괄적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도로ㆍ교량ㆍ항구ㆍ공항ㆍ광대역통신망 등에 8년간 1조2000억달러(약 1550조원)를 투자하는 초당적 인프라법(2021년 11월 15일)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총 2800억달러(약 360조원)를 투자하는 반도체ㆍ과학법(2022년 8월 9일) ▶북미산 전기자동차와 청정에너지 등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미래산업 성장을 돕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ㆍ2022년 8월 16일) 등에 연이어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ㆍ과학법을 두고 “반도체 부족 사태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그 다음 단계”라며 “먼저 공급망 회복력 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국내 생산을 두 배로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정적 공급망 유지를 위해 경제안보ㆍ국가안보ㆍ에너지안보ㆍ기후안보에 대한 공급망 리스크를 탐지하는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고도 밝혔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서 필수의약품 생산을 미국 노동자들이 더 많이 생산하도록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할 것”이라고 했다. 1950년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 3조는 국방 물자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관련 의료용품의 재고 확보, 백신 공급 확대를 명령했을 때도 DPA가 법적 근거가 됐다.
백악관은 27일 설명자료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안보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필수의약품, 의료대책, 필수투입물의 국내 제조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DPA 3조에 따라 보건복지부 권한을 확대하는 대통령 결정을 발표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필수의약품 핵심 원료 등의 미국 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3500만 달러(약 45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또 의료 제품과 주요 식품 공급망을 강화하고 관련 물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담당 코디네이터를 지정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고위험 해외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의약품 공급망 복원력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필수 군사물자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향후 3~5년간 방위산업 기반에 대한 관여 및 정책 개발, 투자 등을 담은 국방산업전략(NDIS)을 발표할 계획이다.
국토안보부는 대(對)국민 필수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핵심 인프라의 공급망 복원을 위한 공급망 회복력 센터(SCRC)를 출범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 공급망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반도체ㆍ과학법의 이행을 더욱 촉진하기 위해 상무부와의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공급망 강화를 위해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인도ㆍ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13개국 정상회의의 공급망 계약 체결 사례를 거론했다. 백악관 설명자료에는 한ㆍ미ㆍ일 3국이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핵심광물과 배터리 등에 대한 공급망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하기로 한 사례가 포함됐다.
백악관은 “공급망 회복력 위원회는 미국 가정의 비용을 낮추기 위한 ‘바이드노믹스’(바이든 대통령 경제정책) 의제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최우선 목표가 인플레이션 완화를 통한 중산층의 경제 부흥에 있다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은 우리가 이룬 이런 진전을 되돌리려 하고 ‘나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며 인프라법 투자 삭감, 사회보장혜택 삭감, 메디케어(의료보험) 삭감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50년 뒤 역사가들이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보면서 21세기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출발점이 됐다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은 중국이나 인도와 달리 미국 내 소비되는 의약품을 생산하지 않고 있어 당장의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다만 향후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미 정부의 정책 동향과 산업 구조 재편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렬 광운대 경영대학원장(국제통상학)은 “미국의 움직임은 산업을 ‘안보’ 관점으로 보고 현 공급망을 자신에게 유리한 구조로 완전히 재편하려는 것”이라며 “무역 구조가 빠르게 바뀔 수 있는 만큼 한국도 공급망 다변화로 대안 마련에 나서는 한편, 폭넓은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바이오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의 미국 운영 등을 통해 현지 시장에 진출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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