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학원가 줄도산 中 '먹튀주의보'…코로나·저출산 그림자
닫힌 문엔 "전염병에 타격" 사과편지만
지역 당국·공안국 개입해 해결방안 찾기 분주
저출산에 원생 급감·화재예방 규정까지 발목
"상하이, 칭다오에도 있는 전국 단위 프랜차이즈 학원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았어요. 할인율이 높다고 해서, 얼마 전에 몇만위안이 넘는 선불 수업권을 추가로 구매했는데…"
27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 중심가의 한 대형 쇼핑몰 앞에서 만난 중국인 션모씨는 갑자기 사라진 학원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7살 딸의 학원비에는 좀처럼 지출을 아끼지 않던 터였는데, 한순간에 수업도 학원비도 날아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션씨가 자녀 수업을 등록한 '백조의 호수' 학원은 베이징에만 16개의 지점을 둔 전문 발레학원으로, 지난달 돌연 한꺼번에 문을 닫으며 추산 피해액만 3000만위안(약 55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점차 확산하며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 제로코로나 3년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빚더미에 앉은 사교육 사업주들이 무리하게 외연을 넓히려 시도하는 와중에 저출산 여파 등으로 등록 수요까지 급감한 탓이 크다.
어제까지 추가결제 유도하더니 먹튀
잠적했던 사업주는 사과편지에 "코로나 타격"
정부까지 개입해 조기 진화 시도
발레학원의 상황이 처음 외부에 알려진 것은 지난달 중순부터다. 며칠 문을 닫는 듯하더니 언젠가부터 시설물까지 싹 철거되고 다시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며칠 뒤에는 코로나19 상황을 경영악화 원인으로 언급한 창업주의 '사과 편지'가 각 지점의 문 앞에 붙었다. 프랜차이즈 창업주인 리우톄쥔 최고경영자(CEO)는 "2020년 전염병이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타격을 받았지만, 월세는 크게 감면되지 않았다"면서 "감원 등의 조처를 했지만, 전염병 발생 후 소비가 급감하며 운영원가가 증가해 운영이 어렵게 됐다"고 이 편지에 털어놨다.
사태가 확산하자 베이징의 문화관광 및 공안당국이 중재에 나섰고, 현재까지 왕징과 푸둥 지점은 인수자를 찾아 운영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는 근처 지점에 납부한 원비만큼 외부 학생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지만, 그마저도 자리는 제한적이며 환불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국의 4대 직할시이자 한국 교민들이 1만명가량 거주 중인 톈진에서도 비슷한 일이 빈발하고 있다. 학원 밀집 지역인 아오청 상업지구에서는 대형 학원이 원비를 환불하지 않고 잠적하는 '먹튀' 사태가 잇달았다. 지난달 말에 이어 이달 초까지 수영클럽인 '룽거친즈' 두 개 지점이 연달아 문을 닫았고, 대표는 연락이 두절됐다. 27일 찾은 룽거친즈의 입구는 굳게 닫혀있었고, 법적 대응을 위해 학부모들이 개설한 메신저 방 안내가 부착돼있었다. 이 역시 지역 당국이 상황을 조사중이다.
톈진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교민은 "회원들 대부분 1만~3만위안씩 피해를 봤으며, 총 900만 위안 정도를 떼인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지난달 말 대형 매장이 갑자기 문을 닫았는데, 학원 대표는 도주 일주일 전까지도 충전을 권유했었다"고 전했다. 충전(충즈)은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일종의 선불 회원권 문화로, 큰 금액을 미리 예치할수록 할인율이나 서비스 금액을 추가해준다. 이 교민은 "프랜차이즈 계약이 8월 말 이미 종료된 상황이라 보전할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직원들도 그냥 휴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고, 일부는 임금도 못 받았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교민은 "아이가 다니는 밸런스바이크 학원에 추가로 회원권을 끊으려고 했더니, 카운터 직원이 '곧 문을 닫을 것 같다. 양심상 돈을 더 못 받겠다'고 귀띔해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된 경우도 있다"면서 "그 외에도 한국 학생들이 많은 어학당이 갑자기 문을 닫고 책상까지 모조리 빼버리는 등 연쇄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 겹악재로 원생 급감
화재예방 규정까지 까다로워지며 영업난 가중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타격을 입은 대면 사교육 시장의 회복이 소비 부진으로 늦어진 데다가, 고질적인 저출산과 최근 강화된 화재예방 규정 등으로 영업난이 가중된 결과라는 진단도 나온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현지 신생아 수는 956만명으로 1949년 이후 73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1000만명을 밑돌았다. 2016년까지만 해도 1883만명에 달했지만, 이후부터 연평균 150만명씩 급감해 절반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초혼자 수는 1051만7600명으로 1985년 집계이래 37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아예 정규 교육시설이 잇달아 문을 닫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허페이시 보저우의 유명 유치원 교장이 학부모들로부터 수만위안씩 등록금을 미리 받은 뒤 달아나 당국이 조사중이다. 중국 1600개 현 가운데 인구가 229만명으로 가장 많은 안후이성 린취안현에서는 올 한 해 동안 지역 사립유치원 중 11.8%에 달하는 50곳이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 규정으로 비교적 임대료가 높은 위치에 교육시설을 개원해야 하는 것도 악재로 꼽힌다. 중국 국가건물 화재 예방 규정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베이징과 톈진 등 일부 지역 당국은 학원을 비롯한 교육기관이 건물의 3층 이상이나 지하에서 운영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화재 등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의 안전 문제 때문이다.
베이징·톈진= 김현정 특파원
베이징·톈진=김현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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