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식품사막’과 메가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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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한창일 때였다.
거동이 어려워 생필품을 사거나 장보기 어려운 고령인구가 쇼핑난민이고, 이들이 사는 지역은 식품사막이다.
쇼핑난민, 식품사막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대도시에서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빈집이나 빈 점포가 수두룩한 일본은 지난 2013년에 쇼핑난민·식품사막의 해법으로 콤팩트 시티(Compact City)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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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한창일 때였다. 은퇴한 뒤 친척들이 많이 사는 경기도 양평읍의 아파트로 이사를 간 A씨 부부는 코로나 확진으로 큰 낭패를 겪었다. 밖에 나갈 수 없다 보니 생필품이며 식료품을 배달 주문해야 하는데, 무엇 하나 여의치 않았다. 죽으로 끼니를 때우려 했지만, 읍내에 그 흔한 죽집 하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아들 부부가 서울에서 차를 몰아 아파트 앞까지 음식을 배달했다. 며느리 B씨는 “아주 시골이 아닌 읍내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쿠세권’이 아니면, 로켓배송이 안 되면, 다른 배달 앱도 안 된다는 게 적나라한 현실”이라고 했다.
쿠세권은 온라인 쇼핑 플랫폼 쿠팡에서 상품을 주문한 뒤에 바로 다음 날에 새벽배송이 가능한 지역을 이르는 신조어다. 한때 온라인에선 쿠세권 지도와 인구소멸 위험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겹쳐 보여주는 그림이 화제였다. 쿠세권 지도를 보면, 서울 전역과 인천(강화군 제외), 경기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경기도에서도 21개 시·군만 쿠세권이다. 충청권에서는 아산·천안·청주·세종·대전, 호남권에서는 전주·광주, 경상권에선 김천·구미·칠곡·경산·대구와 울산·양산·김해·부산·창원만 쿠세권이다. 새벽배송이 가능하려면 반경 10㎞ 이내에 물류센터가 있어야 한다. 인구밀도가 낮으면 효율성은 물론이고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쿠세권 지도는 인구소멸 위험지역 지도와 비슷할 수밖에 없다.
고작 새벽배송이고,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일 뿐이라고? 그렇지 않다. 인구소멸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쇼핑난민’ ‘식품사막’은 심각해진다. 거동이 어려워 생필품을 사거나 장보기 어려운 고령인구가 쇼핑난민이고, 이들이 사는 지역은 식품사막이다. 시가지 등에서 식료품, 일용품 등을 파는 상점이 철수한 지역이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굴레에 빠진 일본은 이미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일본 농림수산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가장 가까운 소매점까지 직선거리로 500m 이상 떨어져 있고, 자동차를 사용할 수 없는 65세 이상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824만6000명에 이른다.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4명 중 1명꼴이다. 이동판매차, 식료품 택배, 쇼핑대행 서비스 등이 등장하고 있지만 완전 해소는 어렵다고 한다. 쇼핑난민, 식품사막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지난해 3월 기준 한국의 인구소멸 위험지역은 113곳(전국 시·군·구의 49.6%)에 달한다. 이미 수도권 외곽(포천, 동두천)으로 번지고 있다. 우리도 걱정할 시점이 다가오는 것이다.
일상과 건강을 위협하는 식품사막은 국가 복지·의료비용 부담으로 귀결한다. 식품사막을 촉발하는 방아쇠는 저출산·고령화이지만, 폭발력을 더하는 건 수도권·대도시 집중이다. 대도시에서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빈집이나 빈 점포가 수두룩한 일본은 지난 2013년에 쇼핑난민·식품사막의 해법으로 콤팩트 시티(Compact City)를 내놨다. 콤팩트 시티는 좁은 지역에 주거·상업시설, 병원, 관공서 등을 밀집시켜 걸어 다니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한 압축도시다. 도심 공동화를 막고 인구 감소 시대에 대비할 수 있는 도시 모델이기도 하다. 한국도 2011년에 도시 재생, 도심 고밀 개발에 초점을 맞춘 콤팩트 시티를 국토종합계획에 반영했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수도권의 외형 확장과 신도시 개발에 몰두하고, ‘메가시티’ ‘메가 서울’에 열을 올린다. 수도권 과밀화와 부동산 거품은 저출산·고령화의 ‘거울에 비친 모습’이다. 둘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라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김찬희 편집국 부국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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