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그라운드 위 ‘승리의 십자가’를 새기다

박효진 2023. 11. 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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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자 수첩-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크리스천 프로야구 선수들
프로야구 SSG랜더스 최항(왼쪽) 최정 형제. 이들이 로마서 말씀을 새겨놓은 팔꿈치 보호대. 2016년 5월 29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에서 ‘기독교vs불교’ 종교전쟁 해프닝이 벌어진 그라운드 모습. 해프닝을 벌인 주인공 전 KIA타이거즈 서동욱(왼쪽)과 NC다이노스 박민우. 목회자를 꿈꿨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김하성과 SSG랜더스 박민호. 삼성 라이온즈 뷰캐넌 왼쪽 팔뚝에 새겨져 있는 십자가. 두산베어스 김재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연합뉴스, 프로야구 SNS


스포츠에서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승리에 대한 욕구가 있는 선수와 코치는 경기에서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꾸준한 반복 연습과 심리적 기술 훈련 외에도 종교의 힘을 수단으로 이용한다. 큰 경기일수록 그리고 치열한 경기일수록 더욱 종교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더미션 유튜브 채널 ‘박기자 수첩’에서는 마운드 위 종교 전쟁과 올 시즌 신앙의 힘으로 멋진 활약을 펼친 프로야구 선수에 대해 알아봤다.

‘기독교 vs 불교’ 종교전쟁

2016년 프로야구장에서는 ‘기독교 vs 불교’ 종교전쟁 해프닝이 벌어졌다. 기아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의 경기가 열린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다.

시작은 NC 2루수 박민우였다. 박민우는 이날 1루와 2루 사이에 스파이크로 불교를 상징하는 ‘卍(만)’자를 그렸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 알려진 박민우는 그라운드 흙 위에 20여개의 만자를 그리며 실책을 줄이고픈 자기만의 암시를 담았다.

이때 같은 위치에서 수비하던 전 KIA 내야수 서동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서동욱은 만자 사이에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이를 두고 야구팬들은 ‘그라운드의 종교전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의 종교적 행동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KBO 리그 규정 ‘경기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 9항에는 ‘헬멧, 모자 등 야구용품에 지나친 개인 편향의 표현 및 특정 종교를 나타내는 표식을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상대 팀의 항의가 없으면 종교 표식에 대해서는 문제가 되진 않는다.

‘믿음의 가장’ 데이비드 뷰캐넌

“뷰캐넌에게 사인받았는데 ‘ROM 8:31’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 분?”

삼성 라이온즈 투수 뷰캐넌에게 사인을 받아본 팬이라면 한 번쯤 갖게 되는 질문이다. 그가 사인과 함께 적는 ‘ROM 8:31’은 성경 말씀 신약 로마서 8장 31절을 뜻한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기초임을 확증하고 있다.

뷰캐넌은 자신의 팔뚝과 글러브에도 십자가와 함께 이 말씀을 새겨 놓았다. 그는 마운드 등장 곡으로 ‘가정 안에서의 믿음의 고백’을 사용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나 이곳은 기적의 집이라’는 가사의 고백처럼 뷰캐넌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꾼, 야구계의 최수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의 아내 애슐리 뷰캐넌은 소셜미디어에 가족들과 행복한 모습을 공개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예배자의 삶’을 꿈꾸는 김재호

선수들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 대한 표식을 모자나 글러브 등 장비에 나타내거나 관련 액세서리를 착용하기도 한다.

두산베어스 김재호는 안타를 치면 십자가 목걸이에 입을 맞추는 세리머니를 한다. 십자가 목걸이에는 ‘God Bless You(하나님의 축복이 있길)’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재호는 2010년 후보 선수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프로야구 선수이긴 한 걸까’라고 여길 정도로 의기소침했다. 그때 철야 예배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크게 꿈을 가지면, 그 꿈을 언젠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설교 말씀에 은혜를 받은 뒤 자신의 꿈을 하나씩 메모해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적은 꿈이 3할 타율, 팀 우승, 국가대표 선발, 골든글러브 수상 등이었는데, 김재호는 이듬해에 그 꿈을 모두 이뤄 냈다.

김재호는 야구장에서 “늘 기도하는 중에 삶이 예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며 “작은 것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배가 되길 바란다. 늘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목회자를 꿈꿨던 김하성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김하성도 믿음의 사람이다. “어렸을 적 꿈이 목사였다”고 고백할 정도로 독실한 신자다. 그는 매년 새해 첫날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며 ‘기도 제목’을 작성한다. 이때 야구 선수로서 매우 높은 목표를 적는데, 이는 “한 시즌 동안 반드시 꼭 이루고픈 목표가 아닌 자신이 바라는 높은 지향점이자 동기부여를 위함”이라고 밝혔다.

김하성은 ‘기도 제목’을 자신의 휴대 전화에 저장해놓고 틈날 때마다 보면서 기도하며 각오를 다진다. 그는 “경기 시작 전이나 타석에 들어가기 전 항상 기도 제목을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김하성은 지난 6일 MLB 골드글러브 시상식에서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골드글러브 상을 받은 것은 김하성이 최초다. 아시아에서는 스즈키 이치로(일본)에 이은 두 번째지만 내야수 중에서는 처음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키우는 선수들

SSG 랜더스 최정·최항 형제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형제는 매일 성경을 읽고 야구 장비인 암, 풋가드에도 십자가 표식을 박아 사용한다. 팬들에게 사인할 때도 십자가를 그려준다.

같은 팀 박민호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부담감을 이겨내기 위해 성경을 읽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힘든 시기에 우연히 성경을 읽고 멘탈을 회복한 적이 있었다”며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성경 말씀이 큰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배 김택형이 부진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털어놨을 때도 이 말씀 구절을 소개해줬다”며 “이후 마운드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뿌듯했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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