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의 퍼스펙티브] 건강보험 수가, 낮은 게 아니라 부정확한 게 문제
의료체계 붕괴 어떻게 막을까
먼저 미국, OECD 국가와 비교해보자. 다른 나라와 건강보험 수가를 비교하려면 그 나라의 소득 수준을 반영해서 비교해야 한다. 2017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는 미국 수가의 48%, 우리나라 1인당 GDP가 미국의 53% 수준이니,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는 소득에 비해 약 10% 정도 낮은 수준이다(그림 1).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 기반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소득은 미국의 65% 수준까지 높아져서 소득과 건강보험 수가의 격차는 조금 더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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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 수준 고려 때 진찰·입원·수술 수가는 미국보다 낮지만
검사 수가는 원가보다 최고 50%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
시간·노력 많이 드는 응급·중증·소아진료 건보 수가 올리고
과잉 진료 병원·의사가 많은 돈을 버는 의료체계 개편해야
」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가 얼마나 낮은지 확인하는 다른 방법은 우리나라 병·의원들이 환자를 진료하는 데 쓰는 비용과 건강보험 진료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2017년 OECD 통계가 나온 이후 여러 차례 건강보험 수가를 올렸기 때문에 최근 자료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2022년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진료비가 102조원이고, 의료기관 회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추정한 병·의원 진료비용이 111조원이다. 건강보험은 병·의원 진료비용의 92%를 보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병·의원들은 8%를 손해를 보면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것일까?
의사 소득, OECD 평균의 1.5배
아니다. 병·의원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약을 처방하고 치료 재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숨은 수익이 생긴다. 치료 재료란 환자를 수술할 때 쓰는 일회용 수술 도구나 거즈, 유착방지제 같은 것을 말한다. 정확한 규모를 알기 어렵지만, 약과 치료 재료 비용에서 30%가량의 수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작년에 약과 치료 재료에 28조원을 썼으니 병·의원들은 건강보험 진료비 이외에 약 8조원을 더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숨겨진 수익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병·의원이나 이들과 관련된 대학이나 재단 등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건강보험 진료 수입에 포함하면 건강보험의 원가 보상률은 100%가 된다.
여기에 의사 수 부족과 맞물려 높아진 의사 인건비로 인한 추가 비용을 고려하면 건강보험의 비용 보상률은 108%까지 높아진다. 우리나라 의사 소득은 OECD 국가 대비 1.5~1.6배 높은데, 이를 병원 진료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8조3000억원이 된다. 지금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앞으로 10년 정도는 의사가 부족해서 의사 월급과 개원의 수입이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가 아니라 병·의원 의사 인건비가 올라가서 건강보험의 원가 보상률은 낮아질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는 우리나라 소득 수준이나 병·의원 진료 원가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지,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낮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의사들은 우리 건강보험 수가가 외국에 비해 엄청나게 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환자 진찰이나 수술처럼 의사들이 직접 수행하는 의료 행위의 수가가 낮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가 낮다는 근거로 자주 언급하는 미국 건강보험 수가를 우리와 비교해보자. 2022년 우리나라 병원들이 가장 많이 진료비를 청구한 항목을 진찰·검사·수술의 영역별로 뽑아서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노인 건강보험(메디케어) 수가와 비교해 보았다(그림 2). 우리나라와 미국의 소득 차이를 반영하여 비교한 결과, 수술은 20~30%, 진찰료는 15%가량 낮지만 검사비는 미국보다 13~50% 높았다. 혈액 투석처럼 미국보다 진료비가 거의 2배인 것도 있었다.
의사들, 검사비 높다는 말은 쏙 빼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는 낮은 것보다 영역별로 진료비용 보상률이 들쑥날쑥한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 같은 문제는 보건복지부 의료기관 회계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진찰과 입원·수술은 원가 대비 수가가 85~92%로 낮았던 반면, 검사는 원가 대비 수가가 110~128%로 높은 수준이었다. 건강보험 수가를 정확하게 만들지 못한 정부가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의사들도 검사비가 높다는 것에는 입을 다물고, 입원료나 수술비가 낮다는 것에만 목소리를 높여서는 안 된다.
의사들이 건강보험 수가가 낮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외국처럼 진료행위를 자세하게 분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장절제술 건강보험 수가를 비교해보면 미국 건강보험의 수술 수가가 훨씬 세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장절제술은 대장에 종양 같은 것이 생겼을 때 하는 수술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대장절제술 수가를 3가지로 구분하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11가지로 수가를 세분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는 쉬운 수술과 어려운 수술의 진료비 차이가 1.4배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2배나 된다. 그 결과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어려운 수술일수록 충분하게 보상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응급수술이 없더라도 당직을 서야 하는 의료진의 대기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응급 수가, 성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영유아 진료에 대해 제대로 보상을 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문제이다. 이처럼 낮은 응급·중증·소아 진료 수가는 의사들의 등을 떠밀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밖으로 내보내고,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는 이들을 동네 병·의원으로 끌어당기니 의료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 진료 대란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검사 수가 낮추고 외래 방문 줄여야
진찰과 입원·수술 비용을 100% 이상 보상하고, 응급환자와 소아 환자를 포함한 중증 환자들이 제대로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건강보험 수가를 어떻게 올려야 할까? 첫째, 입원비와 수술비, 응급환자와 중환자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를 원가 대비 100% 이상으로 올리되, 검사 수가는 낮추고 약과 치료 재료의 숨겨져 있는 수익을 걷어내야 한다. 높은 검사비와 약값과 치료 재료 비용의 거품을 그대로 놔둔 채 입원비와 수술비만 올리자고 하면 국민이 동의하기도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렵다.
둘째, 낭비적인 의료체계를 개편하면서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야 한다. 진찰료를 올리려면 OECD 국가 대비 2.6배 더 많은 외래 방문 횟수를 줄여야 한다. 의사들도 고혈압·당뇨병 환자를 매달 외래에 오게 하는 일은 줄여야 하고, 환자도 가벼운 감기로 병원을 찾는 일을 줄여야 한다. 입원료를 올리면서 OECD 국가 대비 3배 더 많은 병상과 3배 더 많은 불필요한 입원을 줄여야 한다. 실손보험과 맞물려 급속하게 늘어나는 비급여 진료를 해결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의료 이용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낭비와 치솟는 의사 몸값을 감당하기 어렵다. 지금 같은 낭비적인 의료체계에 그대로 둔 채 건강보험 수가를 올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들쑥날쑥한 진료 원가 보상률
셋째, 시도별로 응급·심뇌·소아·분만 환자를 책임지고 진료하는 ‘필수의료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병원들의 응급·심뇌·소아·분만 수가를 집중적 올려줘야 한다. 지역별로 환자 수요에 맞춰 적정 수의 응급·심뇌·소아·분만 센터만 지정될 수 있도록 하고,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이들이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환자와 의사가 집중되어야 의료의 질은 좋아지고 부족한 의사 인력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응급·심뇌·소아·분만 수가만 올리면 응급의료기관과 수가가 오른 수술을 하겠다는 병원이 늘어나 의사와 환자가 분산되면서 의료의 질과 효율성이 떨어지고, 응급환자 뺑뺑이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건강보험 수가는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과 병의원 진료 원가에 비해 10% 정도밖에 낮지 않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는 평균적으로 낮은 것보다 들쑥날쑥한 원가 보상률, 응급·중증·소아 환자에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다.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것을 막으려면 응급·중증·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의사가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공정한 건강보험 수가를 만들고, 비급여 진료와 과잉 진료를 하는 병원·의사들이 많은 돈을 버는 낭비적 의료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 [알려왔습니다]
「[김윤의 퍼스펙티브] 건강보험 수가, 낮은 게 아니라 부정확한 게 문제」
관련
「 본 신문은 지난 2023.11.28.자 오피니언 섹션에서
「[김윤의 퍼스펙티브] 건강보험 수가, 낮은 게 아니라 부정확한 게 문제」
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습니다. 이 기사와 관련해 사단법인 대한의사협회 측은 “김윤 교수는 미국 공보험 ‘메디케어’의 보상 중 ‘병원비용’을 제외한 채 ‘의사비용(physician-fee)’과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를 비교했고, 미국 공보험 ‘메디케어’는 특정 취약계층만 가입 가능하므로(가입률 19%), 전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의료보험인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와 비교한 것으로 이는 타당하지 않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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