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선수 없이 우승, 오가초 배구부가 또 기적을 기다립니다

황동환 2023. 11. 2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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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이 뭉쳐 충남도 정상에 올라... 30년 배구명문 오가초, 학생수 부족 명맥 끊길 위기

[황동환 기자]

 오가초 배구부 선수들.
ⓒ <무한정보> 황동환
 
교체할 후보 선수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하는 감독과 선수들은 어떤 마음일까. 만일 다치기라도 한다면? 지치기라도 한다면? 선수들의 매니저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부모의 마음은?

지난 10월 천안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제32회 충남학생체육대회 남자초등부 배구대회에서 오가초 배구부 6명(5학년 5명, 4학년 1명)의 선수들이 교체할 단 한 명의 후보선수 없이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오가초(충남 예산군 소재)는 이번 대회에서 충남도민체육대회 우승팀인 천안 부영초를 준결승에서 2대 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결승전에서 만난 청양초를 상대로 1세트 1대 0으로 앞선 뒤 2세트에서 24대 24 듀스로 가는 접전 끝에 27대 25로 승리했다. 2차 평가전인 2024년 3월 충남소년체육대회에서 우승하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전국소년체육대회 출전 자격을 얻게 된다.

앞서 지난 4월에 열린 제51회 충남소년체육대회에서 우승한 오가초 배구부는 5월 울산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 19년 만에 충남도 대표로 참가해 8강에 올랐다. 이 대회도 후보 선수 없이 6명의 아이들이 똘똘 뭉쳐 이룬 기적이다.

현재 6학년 1명, 5학년 5명, 4학년 1명, 3학년 1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돼 있는 오가초 배구부 선수들은 매일 정규수업이 끝나면 학교 실내 체육관으로 향한다. 배구가 좋아 배구를 시작했고, 배구를 통해 꿈을 실현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장효실(48) 감독은 "다른 학교 선수들의 체격과 비교하면 왜소하기까지 한 우리 아이들이 이런 결과를 낼 줄은 감독인 저로서도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며 "교체할 후보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뛰다보니 정신력과 투지가 강해진 것 같다"고 우승 비결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도내 초등학교 배구팀은 엘리트와 클럽으로 구분돼 있으며, 엘리트 배구팀을 운영하는 학교는 오가초 외에 청양초(청양), 한내초(보령), 부영초(천안), 둔포초(아산) 5개교이고, 클럽팀은 홍남초(홍성), 계룡초(계룡), 대덕초(당진)가 있다.
 
 오가초 배구부 선수들이 팀을 나눠 자체 연습경기를 하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 차분하던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지한 모습으로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이번에 오가초 배구팀이 우승한 충남학생체육대회는 도내 엘리트팀·클럽팀 모두 출전 가능하다. 내년에 있을 2차 평가전은 엘리트팀들끼리 실력을 겨룬다.

충남에서 5개 초등학교 졸업생을 받는 곳은 천안 쌍용중학교 배구부뿐이다. 이외 안양 연현중학교가 받는다. 지난해 평가전부터 올해 전국대회에 출전해 팀을 이끌었던 6학년 김택준군이 연현중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지난해에도 2명이 이 학교로 진학했다.

김군은 예산초등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힘들어 운동을 쉬고 있던 중에 학교 선배의 권유로 배구로 전환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공놀이 수업 때 배구를 알게 됐어요. 4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여섯 번째 선수로 배구팀에 들어왔는데, 충남도소년체육대회(제49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했어요"라며 "지고 있다가 역전승 할 때 가장 기뻐요. 계속 배구를 하고 싶어요"라는 의지를 밝혔다.

대회 규정은 5·6학년이 출전할 수 있다. 6학년 김군의 한 학년 아래의 동생들인 5학년 최명국·김태웅·최장산·조지항·이은빈 5명이 앞으로 주축이 돼 팀을 이끌어야 한다. 1개의 온전한 팀을 구성하려면 1명이 더 필요한데, 내년에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 4학년 김민겸군이 여섯 번째 선수 역할을 맡게 된다.

막내 3학년 최용락군은 배구가 하고 싶어 보성초에서 전학을 온 경우다. "포지션은 볼보이예요"라고 농담도 던질 줄 아는 최군은 "공격수가 되고 싶어요. 공격수가 되려면 키가 커야 해요. 그래서 밥 많이 먹고, 잠도 잘 자고 해서 키가 컸으면 좋겠어요"라며 나름대로의 포부를 밝혔다.

최명국·김태웅군은 3학년 때 방과후 공놀이 시간에 놀이 배구를 하면서 배구 재능을 꽃피운 경우다. 최군은 4학년이던 지난해 충남학생체육대회 한 달 전에 여섯 번째 선수로 팀에 합류해 우승 주역이 됐다. 

최장산군은 "4학년 여름 방학 때 동생과 물놀이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배구를 해 볼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때부터 시작했어요"라고 말한다. 장 감독에 따르면 최 군은 배구가 하고 싶어 양신초에서 올해 1월 오가초로 학교를 옮겼다. 최군은 "작년에 처음 형들과 같이 해보니까 내가 못 해 미안했는데, 지금은 훈련도 열심히 해서 실력도 좀 느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조지항·이은빈군은 2학년때 배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포지션이 세터인 이군은 "머리를 잘 써야 된다. 정신을 잘 차려야 한다"며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다. 장 감독은 "시합에선 훈련 때의 기량을 두 배로 발휘하고, 항상 웃으면서 팀 분위기를 살리는 친구"라며 이군을 붇돋웠다. 

4학년 김민겸군은 "수비전문이예요. 수비할 때 큰소리로 '마이 싸인!'을 외치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배운 것을 설명했다.

배구부 선수·부모·교사 모두 배구부 받아 줄 학교 찾는 중
 
 장효실 감독이 해체위기에 있는 오가초 배구부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오가초는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배구 명문학교다. V리그 삼성화재 배구단에서 활약 중인 김정호 선수가 오가초 출신이다. 언제든 새로운 역사를 쓸 준비가 돼 있는 오가초 배구팀이지만, 현재 큰 난관에 봉착했다.

학생수가 부족한 오가초에서 배구팀 운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6학년 김택준군이 졸업으로 빠지면 내년에 5학년이 되는 김민겸군이 여섯 번째 선수로 5명의 형들과 간신히 팀을 이뤄 각종 경기를 치러야 하는 형편이다. 새로운 선수들이 충원되지 않고, 5명의 선수들이 1년 뒤 졸업하면, 배구팀은 해체될 운명에 처해 있다.

장 감독은 "후배들이 없기 때문에 이대로면 팀 해체 수순을 밟아야 할지 모른다"고 안타까워 했다.

배구 명문학교의 전통이 끊길지 모르는 위기에 오가초 교장, 교감뿐만 아니라 예산군내 다른 교사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특히 선수 부모들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우선 예산교육지원청을 통해 학생수가 오가초보다 여력이 있는 다른 학교로 배구팀을 옮겨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장 감독은 "아이들이 운동을 통해 단련되면서 멋있어졌다. 말수 적고 적응을 잘 못하던 아이들의 달라지는 모습을 봤다. 학습의욕도 높아졌고 교우 관계도 좋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예산군에서 배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각 학교 교장 선생님들께서 전향적으로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장산 선수 어머니 신승애씨는 "운동부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 때문에 다른 학교에서 흔쾌히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 저 역시 비슷한 입장이었지만 아이들이 운동을 하면서 성격이 쾌활해졌고, 단체생활을 통해 인성이 좋아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며 "운동이 아이들에게 주는 긍정적인 면과 비교하면 우려는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점을 교육계에 있는 분들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가초 배구부가 없어지면 예산군의 유일한 배구부가 사라진다는 것을 교육지원청뿐만 아니라 만나는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다 알고는 계시지만, 오가초 배구부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듯하다. 명맥을 유지하는 것과 함께 운동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신씨는 현재 다른 선수들의 부모, 예산군체육회와 함께 배구부 존속을 위한 서명운동과 함께 배구부를 받아줄 학교를 찾을 때까지 군내 다른 초등학교의 문을 두드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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