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빈대의 습격, 결국은 인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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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전 세계 각국에서 빈대가 창궐해 인간을 공격하고 있고, 미 동부에서도 빈대가 확산하고 있다는 소식은 함께 여행한 가족의 건강을 걱정시키는 요인이었다.
과학이 만들어낸 화학 살충제의 사용이 제한된 후 빈대는 조용히 인간의 곁에 다시 등장했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인간이 빈대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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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다행히 빈대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과거에도 미국 여행을 하면서 빈대가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전 세계 각국에서 빈대가 창궐해 인간을 공격하고 있고, 미 동부에서도 빈대가 확산하고 있다는 소식은 함께 여행한 가족의 건강을 걱정시키는 요인이었다. 다행이었을까, 호텔들의 철저한 방역 때문일까.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숙소를 잡았지만 빈대로 인한 혼란이 있다는 인식은 받지 못했다. 여행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어쩌면 빈대에 대한 기자의 걱정이 기우였을 수도 있고, 코로나19 기간 방역에 익숙해졌던 호텔들이 철저한 대비를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빈대의 공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빈대가 늘어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게 과학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과학이 만들어낸 화학 살충제의 사용이 제한된 후 빈대는 조용히 인간의 곁에 다시 등장했다. 과학자들은 빈대의 확산 요인에 대해 인간의 이동을 이유로 꼽는다.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 이후 여행수요가 폭발하면서 빈대가 사람을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갈 기회가 어느 때보다 늘었다는 설명이다.
기후 변화도 빈대의 확산을 부추긴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여름 40도에 가까운 고온 현상이 발생한 유럽에서 빈대가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해석이다. 프랑스 곤충학자 장 미셸 베렌저는 집 안 온도가 25~26도 정도면 빈대알이 부화하는 데 5일이 걸린다고 파악했다. 일반적인 조건인 20도 정도일 때 10일이 걸리는 데 비해 빈대가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던 셈이다.
빈대도 진화했다. 일반적으로 빈대 퇴치에 사용되는 피레스로이드 및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에 대한 빈대의 내성이 강해졌다. 심지어 빈대의 껍질이 과거에 비해 두꺼워져 살충제가 침투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까지 나왔을 정도다. 곤충학자인 로버트 퍼켓 미 텍사스 A&M 대학교 부교수는 인간이 빈대에게 쏠 화살이 부족하다고 인정하기까지 했다.
과학이 발전해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해도 생명의 신비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인간은 빈대, 모기가 피를 빠는 순간에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곤충은 화학물질을 방출해 인간의 신경을 마비시킨다. 이를 막는 방법조차 우리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살충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빈대가 즉시 사라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대응법은 많지 않다. 퍼켓 교수의 조언은 간단하다. 호텔 방에 들어가면 짐을 욕조나 조리대 위에 올려둬야 한다. 빈대가 미끄러운 표면을 기어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지품을 빈대가 닿지 않는 곳에 안전하게 둔 후 침대의 매트를 들어 빈대나 혈흔이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빈대가 옷이나 소지품을 통해 집까지 따라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퍼켓 교수는 그럴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퍼켓 교수도 빈대 표본 채집을 위한 여행에서 돌아온 후 빈대와 함께 귀가한 일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유비무환이다. 기자는 귀국 후 여행 기간 입은 옷들을 모두 빨래한 후 장시간 동안 건조기에서 건조했다. 고온을 견디지 못하는 빈대를 퇴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인간이 빈대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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