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교장... 학교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일
[이준만 기자]
▲ 학교 의사 결정 과정에서 교사는 주인이 아니다. 교사 없이, 의자만 있어도 학교의 주요 정책이 결정될 수 있다. |
ⓒ 이준만 |
30년 넘게 지방 소도시 공립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지난 8월 말 퇴직했다. 얼마 전,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후배 교사를 만났다. 자기 학교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하소연이다. 사연인즉 이랬다.
어느 날 갑자기 교장이 교직원 회의 석상에서, 12월에 3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 롯데월드로 체험학습을 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단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 위원들이 의견을 냈단다. 코로나 사태로 체험학습을 많이 못 다닌 학년이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3학년 학생들은 이미 학교 예산으로 졸업 여행을 다녀온 터였는데, 이번에는 수익자 부담으로 롯데월드 체험학습을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비용은 무려 6만 5000원. 버스 임대료와 롯데월드 입장료가 포함된 가격이란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없는가? 교장이 '롯데월드로 체험학습을 가기로 했다'라고 발표한 게 체험학습이 결정되는 일반적인 절차와 많이 어긋난다. 학년 단위의 체험학습은 전년도에 이미 결정되어 학사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누군가 체험학습을 제안했다면 회의를 통해 그 필요성을 논의해 보고 필요성이 인정되면, 학생들의 희망을 묻는 것이 순서이다.
위의 경우 학부모 위원들이 체험학습을 제안했으니, 교직원 회의에서 그 필요성을 논의한 다음 학생들의 희망을 물어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순리일 터이다. 그런데 교장이 학부모위원들의 제안을 듣고 체험학습을 가기로 했다고 발표했으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수익자 부담 아닌가. 6만 5000원이면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후배 교사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점입가경이다.
학생들 희망 조사를 해 보니, 70% 이상이 희망해서 체험학습을 실시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문제는 학급별로 희망 비율이 천양지차였다는 것이다. 어떤 반은 거의 다 가고, 어떤 반은 반도 안 가는 등등. 하긴, 이 자체는 문제 될 게 하등 없다. 희망하는 학생들만 체험학습을 실시하면 되니까. 문제는 교장의 강요였다.
교장이 희망 비율이 적은 학급 담임교사를 불러, '교육활동' 운운하면서 모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하라고 했단다. 가지 않겠다고 하는 학생들의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라고까지 했단다. 급기야 어떤 교사는 학부모들에게 장문의 읍소 메시지를 보내야 했고 어떤 교사는 체험학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교사 사비로 1만 원씩 주겠으니 모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또 그날은 생리 결석은 불가하며, 질병 결석을 하려면 학교에 나와 담임 교사나 보건 교사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단다.
이런 일이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970~8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제 교육 현장에서 2023년 현재 벌어진 일이다. 롯데월드에 6만 5000원 내고 놀러 가는 게 어떤 의미에서 '교육활동'라 할 수 있으며 법으로 보장된 '생리 결석'은 어찌해서 불가하단 말인가.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 여전히 비민주적
가장 큰 이유는 학교 현장에서 교장이 거의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근무할 때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교장이 하겠다고 하면 하지 못할 일이 없었고 교장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공동 연수'라는 게 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을 하고 당일 또는 1박 2일 정도로 전 교직원이 연수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연수를 진행하는 학교도 대한민국 어디엔가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근무했던 학교들의 연수는, 말만 연수다. 계획에는 그럴듯한 연수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 프로그램은 아예 실시되지 않거나 그냥 흉내만 낸다. 그러고는 바로 친목 도모를 위한 회식 모드로 진입한다.
그런데 이 공동 연수의 실시 여부가 교장의 생각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교장이 하자고 하면 공동 연수가 이루어지고, 교장이 '공동 연수? 뭐 별 쓸데없잖아'라고 이야기하면 실시되지 않는다. 공동 연수가 정말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떻게 내실화할지에 대한 고민은 이루어질 틈이 아예 없었다.
어떤 학교로 전근해 갔더니, 정기고사 문항에 오류가 있을 때마다 해당 문항에 대해 재시험을 실시하고 있었다. 담담 부장 교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교장이 그렇게 하라고 했단다. 지역 내 어느 고등학교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류의 유형에 따라 재시험을 실시하기도 하고 재시험을 실시하지 않고 그 문항을 복수 정답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그것은 교육청의 성적관리지침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교장에게 건의했다.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거쳐 오류 유형에 따라 재시험을 실시하거나 복수 정답을 인정하자고. 교장은, 본인 말대로 해야 교사들이 감사에서 면책을 받는다고 했다. 금시초문이었다. 그런 사례가 있냐고 했더니, 찾아서 보여주겠노라고 했다. 종무소식이었다. 교육청 담당 장학사에게 질의했더니, 재시험을 실시했다고 면책받는 경우는 없다는 답변이 왔다. 교장에게 이야기했더니, 담당 장학사가 잘못 알고 있다며 본인 말이 맞는다고 했다. 끝내 사례나 근거는 보여주지 않았다. 교장이 바뀌기까지, 그 학교는 내내 재시험을 보았다. 새 교장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곧바로 재시험을 없앴다.
후배 학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 교장은 무슨 생각으로 일반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롯데월드 체험학습을 추진했을까? '체험학습'이라는 말도 우습기는 하다. 롯데월드에 가서 무슨 '체험학습'을 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그 교장은 교장의 힘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평교사 시절부터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절차를 좀 무시하더라도 자신이 밀어붙이면, 큰 문제없이 일이 추진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교장의 막강한 힘으로 인한 학교 현장에서의 의사결정 구조의 비민주성이 학교 교육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학교 체제에서는 뾰족한 해결 방안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롯데월드 체험학습.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체험학습'이라는 말은 뺏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후배 학교의 경우처럼 강제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생리 결석 불가', '질병 결석 직접 와서 말하기'라니. 롯데월드에 가는 게 '교육활동'의 일환이라니.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중학교 3학년 학생이더라도 롯데월드에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않을 '자유'쯤은 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생리통 때문에 못 가요.', '머리가 아파서 못 가요'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그냥 가기 싫어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를 줄 수는 정녕 없는 걸까.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최은순, 국세청 공개한 상습 투기 88명 중 한 명이었다
- '국민 부담 덜겠다'는 윤 정부 정책, 무주택자에겐 '손해'
- "부모 얘기 왜 나와" 야당도 이준석 편들게 만든 인요한
- 학생 사로잡는 유튜브 속 이것... "마약보다 나아요" 말까지
- 안익태 애국가가 아니네? 특이한 활쏘기 대회가 열렸다
- 이성윤 "내가 김건희 특검 지명되는 기적 생긴다면, 결코 피하지 않겠다"
- 용산의 '당무개입' 선긋기, 탄핵 트라우마 때문?
- 실패에서 배우는 꿈틀리학교, 아이들 웃음이 돌아왔다
- 북, 9·19 합의로 파괴한 GP에 병력·중화기 투입
- 또 용산참사 책임 떠넘긴 김석기, "시위 전문꾼의 도심 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