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여요전쟁의 시작, 전쟁 막지 못한 고려의 위기

이준목 2023. 11. 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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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KBS 2TV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이준목 기자]

 KBS 2TV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 KBS
 
마침내 2차 여요전쟁의 막이 올랐다. 지난 25, 26일 방송된 KBS 2TV 대하 사극 <고려거란전쟁> 5, 6회에서는 고려와 거란(요나라)간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발발하게 된 과정과 서전이 된 '흥화진 전투'가 그려졌다.

거란은 강조의 정변(1009년)과 목종 시해를 빌미로 삼아, 고려 정벌을 선언한다. 갓 보위에 오른 고려 현종(김동준)은 강감찬(최수종)의 조언에 따라 거란에 사절을 잇달아 보내어 어떻게든 외교로서 전쟁을 피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

다급해진 현종은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강조(이원종)의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승부수까지 던지지만, 이를 먼저 눈치챈 강조에게 오히려 제압당한다. 강조는 "소신이 꼭 죽어야 한다면 고려를 위하여 싸우다 죽겠다. 폐하의 칼에 죽는다며 영원히 역적으로 남을 뿐"이라며 직접 거란에 맞서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뿐만 아니라 강조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현종을 해치지 않고 "황제가 백성을 구하기 위한 일을 어찌 탓하겠나. 어떠한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군주보다는 낫다"고 칭찬하며 그대로 물러난다.

다음날 대전에서 강조는 전쟁을 협박하는 거란의 사신에게, 굳이 전쟁을 일으킬 것 없이 자신의 목을 베거나 아니면 거란으로 압송해가라고 호통을 친다. 서슬퍼런 강조의 기세에 당황한 사신은 현종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현종은 오히려 "거란 황제를 대신하여 답해보라. 이 전쟁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거란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추궁한다. 머뭇거리던 사신은 끝내 답변을 거부하고 그대로 거란으로 돌아간다.
 
 KBS 2TV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 KBS
 
결국 고려는 거란의 침공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전국에 총동원령을 내리며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돌입한다. 현종은 강감찬과 거란의 상황과 전쟁에 대하여 상의하다가 "솔직히 두렵다, 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황제의 자격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용손(용의 후손)이라는 자부심만 있었지 사실은 아무 능력도 없는 것 같다"며 자책한다.

하지만 강감찬은 "소신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군주로서 설익은 부분도 있지만,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하실 각오가 되어있지 않으시냐. 그것이야말로 황제가 가져야할 최고의 덕목"이라고 현종을 격려했다.

강조는 고려군 30만을 총지휘하는 행영도통사가 되어 출정한다. 현종은 양규(지승현)의 충언에 따라 개인적인 원한은 잠시 묻어두고 출정보고를 하는 강조에게 가절을 내리며 격려한다.

현종은 "꼭 승리하라. 그대가 고려의 온 백성들을 구원한다면, 단 한 명의 황제(목종)를 시해한 죄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다시는 누구도 그대를 반역자나 역적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고, 진심으로 고려를 구한 충신이자 영웅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에 강조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현종의 가절을 받아들고 승리를 다짐한다.

1010년(현종 원년) 12월,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마침내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해온다.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는 최전방 요새인 흥화진에서 3천명의 병력으로 거란군에게 맞서싸운다. 양규는 성종의 항복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낙승을 예상했던 거란은 흥화진에서 고려군의 거센 저항에 뜻밖의 고전을 겪는다.

개경의 고려 조정에서는 흥화진이 끝내는 거란의 대군에 버텨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며, 그저 강조의 본군이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데 의의를 두자는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이에 침울해하는 현종에게, 강감찬은 사찰을 찾아 백성들과 함께 불공을 드리고 전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것을 제안한다.

강감찬은 "두려움을 함께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조언하며 "국난이 닥쳐오면 백성들은 어린 아이가 된다. 아이가 두려우면 부모의 품을 찾듯이 백성들은 군주에게 의지하는 것"이라며 현종에게 국가적 위기에 지도자가 해야할 역할을 일깨워준다.
 
 KBS 2TV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 KBS
현종은 강감찬의 조언에 따라 사찰을 찾아 강조와 양규의 처를 비롯하여 전쟁에 나선 고려 무장들의 가족들을 위로한다. 또한 거리에 나가 전쟁의 두려움에 휩싸인 백성들의 고충을 직접 들으며 다독이고 "이 전쟁은 고려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독려한다. 현종은 백성들의 응원과 신뢰를 확인하며 스스로도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

하지만 원정왕후(이시아)는 현종이 백성들을 직접 대면하는 방식에 우려하며 "자칫 황제의 위엄을 잃을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나 간사하여 상대가 격의없이 대하면 오히려 상대를 우습게 본다. 쉽게 다가갈 수 있으니 쉬운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어 "엄한 군주는 한번의 선정으로도 성군이라 칭송하지만, 자애로운 군주는 한번만 칼을 뽑아도 폭군이 되었다고 말하는게 백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종은 "백성들이 어찌 그리 무지하겠나. 진심을 알아보는 눈은 누구나 갖고 있다"라고 옹호하지만, 원정왕후는 "황제의 진심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만으로도 황제의 권위는 추락하는 것이다. 황제는 하늘이 내린 분이다. 그 속을 짐작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높으신 분이여야 한다. 황제가 백성과 다를 게 없는 존재라면 왜 그 앞에 엎드려야 하나. 백성들의 선망과 두려움이 곧 황제의 힘"이라고 반박한다. 현종은 황후의 일침을 듣고 깊은 고민에 잠긴다.

한편 강조는 성 안으로 들어가 수성전을 하자고 제안하는 최사위(박유승)에게 거란과의 정면승부를 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만일 수성전을 하게 되면 거란군을 섬멸할 수 없어서 국토가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할 것이라고 분석한 강조는, 비장의 무기인 '검차'를 앞세워 거란의 주력인 철갑기병을 상대하겠다는 전략을 밝힌다.

양규의 강력한 저항으로 흥화진 함락에 어려움을 겪게된 거란군은, 이번엔 사로잡은 고려의 백성들을 인질로 삼아 '인간 방패'로 앞세워 성을 공략해온다. 고려군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백성과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차마 반격하지 못하고 흥화진은 함락될 위기에 놓인다. 잠시 갈등하던 양규는 끝내 눈물을 머금고 화살을 들어 공격을 지시한다. 잔혹한 전란의 틈바구니에서 희생양이 되어버린 백성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KBS 2TV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 KBS
 
KBS가 50주년 특별기획으로 선보인 <고려거란전쟁>은 <태종 이방원> 이후 1년 6개월 만에 돌아온 대하사극이다. 한국사 최대의 위기 중 하나였던 여요전쟁 시기를 바탕으로 '승리로 쟁취한 평화'라는 주제의식을 통하여 국난을 이겨낸 선조들의 지혜를 조명했다.

<고려거란전쟁>은 30여 년에 걸친 거란과의 전쟁사에서 서희의 외교담판과 강동 6주 획득으로 대표되는 1차 여요전쟁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목종 말기와 강조의 정변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려와 거란의 국제적인 상황과 전쟁의 발발 배경을 조명하면서 속도감 있는 전개를 통해 6회 만에 본격적인 2차 여요전쟁 이야기에 돌입했다.

이전의 국내 전쟁 사극들과 비교하면 전투 재현의 고증과 스케일 면에서 발전한 점들이 눈에 띈다. 중국식 무협활극같던 과장된 연출이 많이 줄어들고 검차(전투마차), 함마갱(인마살상용 함정), 효시(신호용 화살) 등 당대의 병기나 군편제, 전투방식 등을 세부적으로 조명한 묘사가 돋보인다. 또한 당시 고려가 내부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는지, 전쟁을 막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의 과정 등 정치-외교적인 배경도 깊이있게 다뤘다.

'애국심'에만 집중하는 국내 전쟁 사극의 클리세에서 탈피하여, 여요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접근방식은 신선하다는 평가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현종, 강감찬, 양규, 강조, 지채문, 김숙흥 등 여러 인물군상들이 각각의 위치와 관점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구현하고 어떻게 국가를 지켜야할 것인지 고뇌하는 모습을 조명한다.

특히 2차 여요전쟁의 가장 중요한 발단을 제공한 강조는, 역적과 충신의 면모가 공존하는 복잡한 인물로 드라마 초반부에 가장 비중있게 재해석된 캐릭터로 등장한다. 자신이 섬기던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윽박지르며 위협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권신이지만, 한편으로는 양규와의 대화나 현종과의 복잡한 애증을 통하여 그가 정변을 일으켜야만했고 거란과의 전쟁에 직접 앞장설 수밖에 없었던 모습에 나름의 개연성을 부여했다.

또한 <고려거란전쟁>은 여요전쟁을 낭만적인 민족주의나 선악대결의 관점에서 벗어나, 냉정한 국제관계와 정치의 연장선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적국인 거란은 당연히 이 드라마의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며 명분없는 침공과 민간인 약탈-인간방패등 잔혹한 전쟁범죄도  부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하고 극단적인 '악마화'에만 치중하기보다는, 거란이 당대의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민족적인 특성과 장점, 그들 나름의 명분과 계산을 가지고 전쟁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냉철한 면모 등이 균형있게 묘사된다.
 
 KBS 2TV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 KBS
실제로 2차 여요전쟁은 고려를 한때나마 멸망 일보 직전까지 몰고간 국가적 위기이자 최대의 어두운 역사이기도 하다. 여기서 끊임없이 전쟁의 위험을 우려하는 강감찬과 현종의 대화, 끝내 피할 수 없는 전쟁에 직면하여 패닉에 빠진 고려 사회의 반응, 흥화진 전투에서 인간방패로 동원된 백성들의 참상 등에서 끊임없이 부각되는 메세지는, 거란이라는 악역보다는 '전쟁 그 자체의 비극성'이 주는 공포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전쟁은 결국 국가간의 무력을 통한 또다른 정치행위의 수단이고 그 과정에서 희생양이 되는 것은 결국 힘없는 백성들이다. <고려거란전쟁>에서 묘사하는 2차 여요전쟁은 호쾌한 무용담보다는, 전쟁을 막지 못한 국가에는 항상 무거운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싸워서라도 지켜내야할 '평화'의 가치가 왜 소중한지를 더  부각시키는 의미도 담고있다.

여러 등장인물중에서도 가장 주인공에 가까운 현종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라 국가적 재난을 헤쳐나가며 진정한 군주로 거듭나가는 '성장형 주인공'에 가깝다. 그리고 이는 현종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곧 당시의 불안정한 고려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최악의 환경을 극복하고 군주가 되어 명군으로까지 거듭난 현종처럼, 당시의 고려 역시 아직은  체제와 위상 면에서 여러모로 불안정한 국가였다. 하지만 여요전쟁이라는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고려는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이뤄낸 강자로 거듭나며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고려가 처음부터 강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이기면서 고려라는 나라가 어떻게 강해져갔는지, 앞으로 드라마가 여요전쟁사의 재해석을 통하여 풀어나가야할 궁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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