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감독관이 나를 '아줌마'라 부르며 호통쳤어요"
본 연재는 전국 고용평등상담실 네트워크가 공동 기획, 집필합니다. <기자말>
[오순옥]
고용평등상담실을 찾는 피해자는 정말 다양하다. 사건 내용, 상담 목적, 사건 해결 의지나 대응력이 다 다르다. 처음부터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하는 분도 간혹 있지만, 1시간 넘게 통화해도 피해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고, 왜 상담실로 전화했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도 많다. 본인의 근로형태, 종사 업종이 무엇인지, 우리 회사가 법인인지 개인사업장인지 잘 알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따라서 상담활동가는 피해자의 말을 충분히 듣고 되물어 살피며 사건 해결에 필요한 주요 정보를 피해자로부터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용평등상담실의 상담이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존치·확대되어야 할 이유이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지난 7월 폭염이 이어지던 날 중년 여성이 울먹이며 전화를 해왔다. 음식점에서 일했는데 사장과 사장의 아버지로부터 1년 넘게 욕설, 성희롱, 협박을 당하다가 처음으로 대들었더니 바로 가게 밖으로 몰아내고는 문을 잠갔다고 했다. 폭염을 견디며 2시간 넘게 문을 두드리며 사정했지만, 당장 짐 싸서 나가라며 해고 통보를 했단다. 고용노동부 1350으로 전화했더니 '안 된다'는 말만 하다가 고용평등상담실 번호를 알려주었다고 했다.
피해자는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며 하소연을 했다가 분통을 터뜨렸다가 두서없이 1시간 넘게 이야기를 이었다. 지난 시간 사장의 아버지로부터 치욕스러운 언어적 성희롱을 당하고, 아들뻘인 사장에게 욕설을 들으면서도 돈을 벌어야 해서 그만두지도 못 했는데 이렇게 쫓겨나 억울하다고 울었다.
피해자가 긴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간간이 질문을 던지며 사안을 정리했다. 피해자가 언어적 성희롱을 입증할 증거를 모아두지 못했고, 목격자로 증언해주겠다고 나설 동료도 없어 사업주를 처벌할 길이 달리 없다면 당장 닥친 생계 불안이라도 덜어야 했다.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차분히 해보자'며 실업급여 신청을 안내하니 이미 1350에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했단다. 사장이 4대보험을 안 해줘서 그런 거 같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상황을 면밀히 들어보니 '일용직으로 1년 4개월간 주 6일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주급으로 급여를 받았고, 사장이 고용보험에 가입해 주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반 일용근로자라 하더라도 1개월 이상, 월 8일 이상 또는 월 60시간 이상 일을 하면 4대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은 의무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또! 고용노동부가 기계적인 답변만 했구나 싶어 화가 솟구쳤다. 피해자의 말을 내 일처럼 좀 더 주의 깊게 들어주었다면, 질문 몇 가지만 했더라도 '실업급여는 안 된다'는 답변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폭염에 거리로 내몰리는 수모를 당하며 한마디 말로 해고되었다는 노동자에게 '실업급여도 안 된다, 성희롱 진정도 안 된다'는 무성의한 답이 그리 쉽게 나오더냐고 묻고 싶다. 그런데 더 기가 찬 일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고용평등상담실은 피해자가 근로복지공단의 '피보험자격 확인 청구 절차'를 밟아 미납된 고용보험을 처리한 후 고용센터에 실업급여를 요청하도록 했다. 또 체불임금(주휴수당, 시간외근로 및 휴일근로수당, 해고예고수당, 퇴직금) 진정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도록 안내했다.
망연자실했던 피해자는 상담실의 지지와 조력에 용기 내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그러나 피해자는 고용노동부 조사과정에서 더 큰 상처와 수모를 겪었다.
1차 조사에서 만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피해자를 '아줌마'라 칭하면서도 본인을 '근로감독관'이라 정확히 호칭하지 않았다며 명패를 두드려가며 호통쳤다고 한다. 취조하듯 묻는 말에만 답하라 다그치고, 열심히 준비해간 부당해고 증거자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 내담자가 보내온 손편지 성희롱, 임금체불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지만, 근로감독관과의 첫 만남에서 '근로감독관이 아닌 선생님'으로 호칭했다는 이유로 명패를 치며 호통을 치고, '아줌마' '묻는 말에만 답하라'고 취조하듯 대해 주눅이 들었다는 내담자의 호소가 담긴 손편지. 고용평등상담실을 찾는 내담자 중에는 이처럼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으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
ⓒ 서울여성노동자회 |
상담사님은 친절히 제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주었고 구제 받을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노동청에 진정을 했는데 근로감독관님은 첫 만남에 제가 감독관이라는 호칭을 잘 몰라 "선생님'이라고 했더니 "이 아줌마야. 난 선생님이 아니고 근로감독관, 사법경찰관"이라고 하며 명패를 탁탁 치며 말했습니다. 저는 진정인인데 취조하듯 묻는 말에만 말하라며 컴퓨터 자판을 쳤습니다. 저는 말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주눅이 들어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해고당한 증거로 카톡을 보여주려고 하자 "됐어요"라며 쌀쌀맞게 대답을 했습니다. 일용직이라 결근한 날을 찾아야 임금 계산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수첩을 뒤지고 통장 입금 내역을 계산하여 제출하려고 하니, 식당 사장이 다 제출했다며 제가 가져간 수첩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 사건과 관련해서 전화를 했더니 "왜 전화 했어요"라고 다그치는 감독관을 보고 부당해고 인정이 안될 것이란 것을 저는 직감했습니다. 저는 하루 12시간 주6일 출근해서 일했지만 사장은 4대보험 신고를 하지 않으려고 월 6일 출근했다고 허위신고를 했습니다. 고용센터에 실업급여 신청 문의를 하였더니 근로감독관에게 확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여러 번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아서 직접 찾아가보니 사무실에 계셨습니다.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으신 걸 알았습니다. 내용을 설명해도 자리에 앉아 인공눈물을 넣으면서 천장 쪽만 바라보고 저하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2차 조사를 앞두고 다시 노동청에 갈 생각을 하니 심장이 떨렸습니다. 상담해주신 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가님이 생각나서 전화를 했더니 2차 조사는 함께 가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장맛비가 엄청 오던 날 상담사님이 먼 길까지 와서 함께 근로감독관을 만났습니다. 상담사님이 함께 가니 근로감독관은 웃음도 보이면서 친절하게 답변을 하고 태도도 180도 달라졌습니다.
상담사님은 눈물만 보이는 저에게 법 절차를 자세히 설명해주시고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제가 마음이 힘든 사람임을 아셨는지 심리상담사 선생님을 연결해주셔서 심리상담도 받게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용기를 얻어 노동청에서 인정하지 않은 해고예고수당 미지급에 대해 재진정을 하였습니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좌절했지만 상담사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며 "아, 세상은 어둡지만은 않구나" 하고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상담부터 권리구제까지 원스톱'으로 효율적인 행정을 하겠다며 24년간 민관 협력으로 해온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하고, 2024년부터는 직접 상담창구를 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았다. 고용노동부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제대로 질문하지도 않았다. 피해자를 홀대하고, 귀찮아했다. 상처 입은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입혔다. '상담부터 조사까지 원스톱으로' 피해자를 철저히 무시했다.
고용노동부에 간곡히 말하고 싶다. 지금처럼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며 각자 서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이러한 목표로 시작한 민관협력이며 24년간 성과도 크게 일구지 않았냐고.
고용노동부가 우리 사회 평등한 노동환경 조성에 진심이라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여성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찾던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고용평등상담실과 더 밀착된 연계·협력 방안을 실행하고 구체화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오순옥 기자는 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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