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가 다르네? 특이한 활쏘기 대회가 열렸다
[김경준 기자]
▲ 개인전 경기를 치르는 참가자들 |
ⓒ 김경준 |
26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활쏘아궁술클럽에서 독립로드·노원사계 스포츠클럽 공동 주최로 '제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 전통활쏘기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대회는 최근 논란이 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계기로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선열들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그들의 무용(武勇)을 전통무예인 '활쏘기'로써 기리고자 기획한 행사였습니다(관련 기사: 홍범도 장군을 기리기 위한 '활쏘기 대회'가 열립니다 https://omn.kr/26env).
우여곡절 많았던 대회 준비
대회가 열리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워낙 준비 기간이 부족했기에 후원처를 구하기 어려웠던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보도가 나간 후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인들로부터 "의미 있는 대회를 개최한다"며 십시일반으로 후원이 쏟아진 것입니다. "대학생들 간식이라도 사주라"며 현금과 편의점 상품권 등을 기부하고, 혹자는 본인이 쓴 저서를 상품으로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후원을 바라고 쓴 기사는 아니었기에, 선뜻 받기 민망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대회를 치를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그 마음을 감사히 받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참가자들에게 지급할 상품과 간식이 풍성해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빨갱이를 기리는 빨갱이들의 대회"라는 악플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또 대회 참가자들로부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서명'을 받는 것에 대해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왜 서명을 받는지 모르겠다", "순수한 스포츠 경기로 즐기고 싶은데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 같아서 찝찝하다"며 경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처음부터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또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선열들을 기리기 위한 차원에서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참가자들에게 다시 한번 대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회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돌아봐달라고 당부해야만 했습니다.
봉오동·청산리 정신을 구현코자 했던 단체전
이번 대회는 개회식부터 남달랐습니다. 애국가 제창 시 안익태 작곡 애국가가 아니라, 과거 우리 선열들이 불렀던 '올드랭사인' 애국가를 부른 것입니다. 참가자들 모두 낯선 애국가 선율에 어색해하면서도, 열심히 따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기는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눠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백미는 역시 단체전이었다고 봅니다.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대한북로독군부·대한독립군·의열단·조선의용대·한국광복군 등 대일항쟁기 주요 항일무장단체들의 이름을 본떠 만들어진 '작대'에 편성되어 경기에 참전했습니다.
보통 다른 활쏘기대회에 나가게 되면 대학생들은 소속 대학 국궁동아리별로 작대를 편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같은 동아리끼리 모으지 말고, 무작위로 작대를 편성할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서로 소속도 신분도 달랐던 독립군들이 '대한독립'이라는 목표 아래 하나가 되어 싸웠던 봉오동·청산리의 정신을 구현코자 함이었습니다.
▲ 단체전 전략을 논의하는 참가자들 |
ⓒ 김경준 |
이번 대회에 참가한 대학생 장형준씨(23. 한양대 국궁동아리 '심궁회') 역시 "단체전의 경우 누구 한 명의 실력보다 모든 조원의 역량이 합쳐져 평가되는 느낌이라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며 "작게는 대학 국궁부 부원들이 새로운 방식의 대회를 경험할 기회였고, 크게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쓰셨던 순국선열들의 마음을 느껴보고 감사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습니다.
▲ 단체전 1위로 '홍범도상'을 수상한 '한국광복군' 작대 |
ⓒ 김경준 |
대회장을 찾은 특별한 손님
대회장에는 '깜짝 손님'도 방문했습니다. (사)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이기도 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격려차 방문한 것입니다.
우 의원은 "홍범도 장군은 50m 밖에서 술병을 눕혀놓고 총을 쏘면 병입구 사이로 총알이 뚫고 지나가 바닥을 뚫을 정도로 백발백중 명사수였다"며 "과거 우리 선조들은 활과 총으로 나라를 지켰는데, 이런 역사를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쏘면 더 잘 쏠 수 있을 것 같다"고 참가자들을 격려했습니다.
▲ 활쏘기를 체험하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 |
ⓒ 김경준 |
▲ 대학생들에게 최운산상을 시상하는 최은주 (사)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 |
ⓒ 김경준 |
항상 꿈꿔왔지만 설마 가능할까 스스로도 반신반의했던, 독립선열들을 기리는 활쏘기대회가 이렇게 현실에서 열렸다는 사실이, 대회가 끝난 지금까지도 꿈처럼 느껴집니다.
모쪼록 이번 대회가 참가자들, 특히 젊은 대학생들로 하여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행복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길 바라봅니다.
▲ 제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 전통활쏘기대회 단체사진 |
ⓒ 김경준 |
[미니 인터뷰] 조하연 (25. 광운대 국궁동아리 '천운' 소속)
- 어떠한 계기로 이번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나
"지금 현재 우리가 안온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뜻깊은 역사를 만들어주신 순국선열의 정신을 기리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독립군의 피를 이어 받은 우리가 전통무예인 활쏘기 대회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특별해 보였다. 그러한 독립군의 정신을 기리고자 대회 개최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신청했다."
- 이번 대회에서 인상 깊었던 게 뭐였나
"기존의 활쏘기 대회(궁도대회) 같은 경우는 작대 편성이 되어도 결국 그 안에서 개인의 기량을 시험하는 경기라 늘 스스로 과녁과 싸우며 마음을 다스리는 대회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작대 이름을 독립군 부대의 이름에서 빌려왔고, 또 단체전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독립군 정신으로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아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번에 내가 속했던 작대 이름은 '의열단'으로 만주에서 조직되어 다양한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독립운동 단체였다. 단체전을 앞두고 작대 인원들과 "의열단 모여서 작전회의 하자"고 할 때, 뭔가 뭉클했다."
- 이번 대회의 의의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함께'라는 말이 이번 행사를 함축하는 단어 같다. 함께 뜻을 기리고, 함께 즐기고, 함께 참전하고, 함께 승리하고, 함께 배우고, 함께 기뻐하고. 마치 승리한 독립군의 기세처럼, 이 마음 한 조각을 계속 마음에 품고 우리 모두 대회에 임했다고 생각한다.
▲ 광운대 국궁동아리 '천운' 소속 조하연씨 |
ⓒ 김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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