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품지만, 선 넘으면 경질"…국정원장 교체로 본 '尹의 인사'

‘기회→인내→경질’
영국·프랑스 순방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적인 국정원 수뇌부 경질은 위와 같은 단계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김규현 국정원장과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 모두에게 사표를 받았다. 신임 1차장에 홍장원 전 영국 공사를, 2차장에는 황원진 전 북한정보국장을 임명했으나, 김 전 원장의 자리는 비워뒀다. 문책성 경질의 성격이 더욱 드러나는 장면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27일 “국정원 내부의 기강을 다잡을 국정원장 후보자를 물색 중”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내에선 국정원장 교체를 두고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내 사람에겐 기회를 주고 품으며 기다려 주지만, 두 번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인사 철학을 유지해왔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인사는 국면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인사 카드를 꺼내왔던, 통상의 정치인 출신 대통령과 달리 잦지 않았다. 검찰 시절 윤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한 전직 검사는 “검찰 특수부가 그렇다”며 “내 식구는 쉽게 내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원장은 지난 6월 한차례 기회를 받았다. 당시 윤 대통령은 자신이 재가했던 국정원 1급 부서장 등 7명의 보직 인사를 일주일 만에 번복했다. 김 전 원장의 측근인 A씨가 인사 전횡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벌어진 인사 파동으로, 이때도 국정원장 교체 가능성이 거론됐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 순방을 다녀온 윤 대통령은 김 전 원장에게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라”고 밝힌 뒤 유임시켰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그 이후에도 국정원 내 인사 파동이 잦아들지 않았고, 윤 대통령이 몇 달간 인내하다 이번 인사를 단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윤 대통령은 장관을 교체하기 전에 차관을 교체하며 ‘기회’를 주고 기다려줬다. 여권 일각에서 “너무 온정주의적”이란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탈원전 정책 폐기 지연의 책임을 물어 지난 8월 교체된 이창양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5월 산자부 2차관을 먼저 교체했고, 이후에도 정책의 속도가 붙지 않자 3개월 뒤 이 전 장관을 핀셋 교체했다.

이번 국정원장 인사를 두고 윤 대통령이 ‘조직 장악력’을 인사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는 분석도 새삼 제기됐다. 여권 핵심 인사는 “윤 대통령은 주요 인사 결정을 내릴 때마다 후보자의 조직 장악력과 그립감 있는 리더십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평가를 내려왔다”고 말했다. 조직 내 불협화음 이후 교체된 김 전 원장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이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취지다.
대통령실은 국정원장 후임 인사에 속도를 내겠단 방침이다. 남북 9·19 군사합의 임시효력 정지 이후 북한의 무력 도발 가능성과 하마스 사태 등 국정원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미. 한·미·일 관계가 복원된 만큼, 이젠 국정원의 정보 역량을 키워낼 수 있는 국정원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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