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사로잡는 유튜브 속 이것... "마약보다 나아요" 말까지

서부원 2023. 11. 2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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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에너지 음료와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에 기웃거리는 아이들

[서부원 기자]

 작은 알약.
ⓒ pexels
 
최근 유튜브마다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가 넘쳐난다. 급기야 새끼손톱만 한 작은 알약 하나만 먹으면 저절로 1000Kcal 가까운 열량이 소모된다는 내용까지 나온다. 임상실험을 통해 안전성이 입증됐고, 미국 내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는 문구는 전가의 보도다.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1000Kcal면 웬만한 성인에게 필요한 하루 열량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광고에는 쉬지 않고 두세 시간을 뛰어야만 태울 수 있는 열량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의사나 약사가 모델로 동원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멀쩡한 음식도 오남용하면 위험한데, 하물며 약인데도 부작용에 대한 안내가 없다. 광고 속 설명만 들으면 '만병통치약'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광고비와 마케팅비가 없어 판로가 막혔는데, 사용해본 소비자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가 뒤따른다.

광고 속 다이어트 보조제의 부작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깜냥은 못 된다. 굳이 여기서 그걸 문제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유사한 제품을 판매하는 광고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현실이 적이 당혹스러워서다. 일일이 헤아려보진 않았지만, 족히 십수 종은 되는 것 같다.

질병 치료 목적도 아닌데, 체중을 줄이기 위해 약을 먹어야 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 백 보 양보해서, 부작용이 전혀 없는 '신비의 명약'이라고 해도, 음식을 먹어서 축적된 열량을 소비하기 위해 다시 무언가를 먹는다는 게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마음껏 먹고는 싶은데, 살찌는 건 싫은 장삼이사의 마음을 노린 얄팍한 장삿속이다.

10대들의 눈길이 가는 곳

정작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들에 눈살이 찌푸려진 이유는 따로 있다. 당장 10대 아이들이 큰 관심을 보여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 내가 해당 광고를 접하게 된 것도 몇몇 아이들의 호들갑 때문이다. 그들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유레카'를 외쳤다.

아이들은 광고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였다. "세상에 약장수는 믿을 게 못 된다"며 손사래를 치는 아이조차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최근 들어 여학생은 말할 것 없고, 남학생조차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성적에 대한 그것 못지않다.

그나마 남학생에겐 선택지가 두 개다. 훤칠하거나 근육질이거나. 그래선지 가방에 미숫가루처럼 생긴 단백질 보충제를 넣어 다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보기에 뚱뚱해도 팔과 다리의 근육이 탄탄하다면 전혀 꿀릴 게 없다. 하지만 여학생에겐 날씬한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

한창 성장할 때라며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은 기성세대의 잔소리일 뿐이다. 외모에 민감한 아이들에게 다이어트 보조제와 단백질 보충제 등은 어느새 후식처럼 먹는 비타민 영양제처럼 여겨지는 모양새다. 그 어떤 부작용도 그들의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를 넘어설 수 없다.

"마약보다는 백 배 낫잖아요."

한 아이는 내 말을 '기우'라고 무지르며 말을 끊었다. 살을 빼거나 집중력 향상을 위해 인터넷 등에서 마약을 구매하는 범죄 행위보다 건전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유튜브 등에선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을 광고하고 직거래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
ⓒ pexels
 
올 초부터 학교 게시판에도 온종일 마약 중독의 폐해를 알리는 공익 광고가 방송되고 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제작한 홍보 영상인데, 친숙한 애니메이션 방식인 데다 영화배우가 모델이라 아이들의 눈길을 끈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연루된 사건들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커졌다.

마약 중독의 폐해와 엄한 법적 처벌이 강조될수록, 안타깝게도 다이어트 보조제 등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높아지는 형국이다. 일종의 '풍선 효과'처럼 보인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엄청난 열량이 소모된다는데, 쉽게 넘어가지 않을 이가 있을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만큼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심한 곳도 없다. 겉보기에도 비쩍 마른 아이들조차 스스로 살이 쪘다고 말하는 지경이다. 다이어트 시장은 오랜 경제적 불황에도 끄떡없는 블루오션일 수밖에 없다.

살 빼겠다며 먹는 알약, 졸음 피하려고 먹는 카페인에 기대는 아이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살찌는 게 걱정이라면 덜 먹고 많이 움직이면 된다. 마약이든 다이어트 보조제든 뭐든 약에 의존하는 건 잘못이다. 운동할 시간은커녕 잠잘 시간도 부족한 현실에서 차선책이라 둘러대지만, 약에 기댈수록 항생제의 내성처럼 더 큰 자극을 찾게 될 뿐이다. 다이어트 보조제가 되레 다이어트 강박을 높이고 있다고 하면 억측일까.

마약 근절 공익 광고가 반복되는 프로젝션 TV 옆 쓰레기 분리배출함엔 아이들이 마시고 버린 에너지 음료의 병과 캔이 수북하다. 숱한 아이들이 수업 중 쏟아지는 잠을 카페인의 힘을 빌려 견뎌내고 있다는 뜻이다.

시험공부에 찌든 아이들에게 충분한 수면 시간을 보장하고, 매일 체육 활동이 이뤄지도록 교육과정을 손보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이를 고정불변의 현실로 여기다 보니, 교실마저 '약장수'들이 판치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 와중에 틈새를 파고든 게 마약이다.

사족. 스스로 탐욕을 제어하도록 이끄는 게 교육의 본령이라고 믿는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소비를 줄이고 귀찮음을 견디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습관적으로 에너지 음료를 마시고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에 기웃거리는 아이들을 학교가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정부가 교육적 대안 마련은커녕 엄벌만을 외쳐대고 있으니 난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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