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군 의문사 피해 인정됐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네 가지

김성수 2023. 11. 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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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희철 40주기 추모식 준비하는 '친구' 이은희 박사⑤

[김성수 기자]

전두환 정권기였던 1983년 12월 11일, 그날은 나와 철도학교 동문인 한희철이 군대에서 의문사한 날이다. 한희철은 1978년 12월 국립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철도청에 근무하다 1979년 3월 철도장학생으로 서울공대에 입학했다.

오는 12월 11일이면 한희철이 이 땅을 떠난 지 어느덧 40년이 된다. 그가 죽은 날 나도 군복무 중이었다. 진실이 은폐되고, 사실이 감춰진 엄혹한 시절, 그래서 나도 당시 군대에서 그의 억울한 죽음을, 죽음의 원인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은 거의 상투어가 되다시피 한 '자유' '민주주의' '사회정의'의 가치를 추구하다가 그는 23살의 젊은 나이에 망자가 됐다. 하지만 그의 희생덕분에 나는 40년이 흐른 지금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역사는 흐르고 사람은 가도 정신은 남는다. 산 자가 망자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그가 남긴 정신과 열망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일 것이다.

이은희 단국대 초빙교수는 한희철의 철도고 동기이자 지난 1970, 1980년대 한희철과 함께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꿈꾸었던 '절친'으로서 지금 한희철 40주기 추도식을 준비하고 있다. 아래는 지난 10일부터 24일까지 이 교수와 이메일과 페이스북 메신저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의문사 진상규명 30년 사진전이 열린 국회의사당에서 이은희 박사
ⓒ 이은희
 
- 한희철을 비롯한 민주화운동관련 군희생자에 대한 국방부의 보훈정책에서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논란인가?

"지난 2018년 6월 29일~7월 13일경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의 결정문을 따라 희철의 죽음을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에 근거한 유족의 국가유공자 신청에 대해 서울북부보훈지청은 국가보훈부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에서 희철의 사망이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에 해당'하는 순직군경이 아니라, 보훈대상자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 '군인이나 경찰, 소방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을 포함)'하는 재해사망군경에 해당하는 순직형으로 결정되었으며, 이와 함께 배우자나 자녀, 부모 등이 없어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이 될 수 없다고 유족에게 통보했다.

현재 보훈대상자지원에 관한 법률은 군 입대 후 군복무 중 사망한 경우 사망원인이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보호'와 관련이 있는지 만을 판단해 군 사망자를 순직군경과 재해사망군경으로 양분하고 있는데,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대가로 죽임을 당한 희철과 같은 군의문사 사건은 순직군경이나 재해사망군경 어디에 속한다고도 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고 김용권 군의문사사건의 유족이 이의신청을 했지만, 보훈청에서는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규정의 보완을 통해 군내 민주화운동 관련 희생자를 적절한 사망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대부분이 결혼하기 이전에 군의문사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반영해 이런 경우 보훈대상자인 유족의 범위도 조정하는 보훈규정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 특히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 2기가 구성되어 한희철의 군의문사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조사신청을 한 이유와, 현재의 조사상황, 앞으로의 전망은?

"의문사위가 희철이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음을 인정했지만, 의문사위의 조사결과는 아직 한계가 있다. 첫째, 희철을 직접 조사한 심사장교 '유00'와 그 조력자 등의 가혹행위 여부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둘째, 희철의 사망원인을 판단할 직접 증거인 시신의 상태와 사망현장에 대한 조사가 원천적으로 부실했다.(부모님이 현장을 방문한 당시부터 이미 시신과 총기 등을 옮긴 상태로 사망현장의 상황을 훼손하고서 시신과 사망한 참호를 찍은 여섯 장의 사진만이 남아 있다), 가슴에 난 삼각형 모양의 세 발의 총상과 달리 등 뒤에는 3발의 총상이 일(ㅡ)자형으로 나있었다는 모순되는 검시관의 시신상태에 대한 보고서의 모순점 등은 의문사위가 인용한 법의학적 판단에 여전히 의문점이 제기된다.
 생전의 한희철 모친
ⓒ 이은희
  
셋째, 희철 사망 며칠 후에 모친이 사망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희철이 자살했다는 초소를 빠르게 폐쇄한 상태였는데, 사망현장의 어떤 증거들을 인멸하고자 한 것은 아닌가. 넷째 성남시대학생연합회와 서울대가톨릭학생회 등에 대한 위계공작 수립문건과 동 단체의 구성원들을 심사대상자로 적시하고 있는데, 보안사의 이런 공작이 희철의 죽음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다섯째, 녹화사업의 최종책임자인 전두환, 그 아래 위법적인 공권력 사용에 대한 책임자인 보안사령관, 심사장교 등 가해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을 묻는 조치도 너무나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02년 의문사위가 희철의 죽음에 대해 '민주화운동 관련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것이라는 결정이 난 이후에도 나와 이수열을 비롯한 희철 추모모임은 부모님 사후 가족을 대표해 유가협과 추모연대 등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희철의 누님 한영희 여사와 함께 협력해 꾸준히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희철의 죽음에 관련된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래서 지난 2019년 4월 국회에서 '의문사 진상규명 30년사 사진전'이 열릴 때도 나와 누님은 적극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의문사 진상규명 30년 사진전이 열린 국회의사당에서 한희철 누님 한영희 여사
ⓒ 이은희
 
의문사 진상규명 운동이 지속되면서 드디어 정치권의 화답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지난 2020년 12월 진실위 2기가 출범하게 되었다. 희철의 누님과 나는 희철과 같은 군의문사사건으로 분류되는 정성희, 한영현, 김두황, 이윤성, 최우혁, 김용권, 이진래 등 유족 및 추모단체와 군의문사사건의 진상을 이번 기회에 철저히 규명하기로 뜻을 모아 추모연대 산하에 군의문사대책위를 구성하고 공동으로 진실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게 되었다.

진실위에서 군의문사 사건을 접수해 조사 개시한 이후에도 군의문사대책위는 진실위의 의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추동하기 위해 진실위 입구에서 지속적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특히 현재까지 진행된 진실위의 군의문사사건에 대한 조사를 지켜보면서 나를 포함한 진실위 공동신청인단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진실위에 보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첫째, 전문적인 조사인력이 부족하다. 둘째 당시의 녹화사업의 지휘부에 속했던 대공처장, 심사과장, 학원 계장, 지도계장 등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셋째, 의문사와 관련된 관계기관의 비협조로 진상규명이 방해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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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희철 유족 대 국가'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데 그 상황을 좀 설명하면?

"지난 2021년 군의문사대책위를 중심으로 변호사들의 법률자문을 받아 국가가 사망한 희철 본인, 부모, 자매 등 가족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족과 논의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했다.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부친에게 지급되었던 위에 언급한 보상금 등 보상을 '화해로 간주한다'는 부분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었던 것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당시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김사랑 부장판사)는 2년에 걸친 재판의 결과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희철에게 3억 원, 희철 부모님에게는 각각 1억 원씩 총 5억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국가 측에서는 부친이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금을 수령한 2002년에는 원고가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지했다고 보고 '불법행위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이란 민사상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이 내려진 2018년부터 소멸시효가 계산된다고 보고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희철 본인과 부모의 경우와 달리 희철 자매들 각각에 3000만 원을 청구한 부분은 자매들이 민주화보상금 수령대상이 아니어서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부모와 달리 부친이 보상금을 수령한 2004년으로 보아 소멸시효가 지났고 판단해 패소판결 했다. 이러한 1심결과에 유족인 원고와 국가 측인 피고 양측에서 모두 불복해 상고함으로서 희철 유족들에 대한 배상소송의 최종결과는 아직 기다려야 하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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