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한국 첫 신소설 작가는 누구?" 시험용 말고 진짜 근대문학 만나볼까요
강화도 조약부터 남북 분단까지 근대 한국의 모습 근대문학에 녹아있죠
근대문학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국어·문학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시나 소설이 먼저 떠오를 것 같은데요. 혹시 해당 작가의 이름과 작품 의도를 줄을 치면서 달달 외우고 있지는 않나요. 근대 문학을 재미있게 공부하려면 그 작품들이 어떤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해요. 그러면 우리가 이들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인천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을 찾아 우리나라 근대에는 어떤 문학이 발달했는지 알아봤어요.
어떠한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사고·생각을 뜻하는 사상(思想)이나 어떤 현상·일에 대한 마음·기분을 뜻하는 감정(感情)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을 문학(文學)이라 해요. 시나 소설뿐 아니라 희곡·동화·수필·평론도 모두 문학에 해당하죠. 우리에게 익숙한 시·소설·수필 등의 형식의 출발점이 되는 시기가 바로 중세와 현대 사이의 시대인 근대입니다.
우리나라의 근대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1876년 조선이 일본과 맺은 수호 통상 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이후부터 1919년 3·1 운동까지를 이르죠. 조일수호조규에 의해 조선은 일본에 부산·인천·원산 등 3개 항구를 개방했어요. 이에 일본을 포함한 외국의 문물이 조선에 들어오며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됐죠. 우리나라 근대문학도 마찬가지예요.
인천광역시 중구에는 한국근대문학관이 있습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위치한 인천 중구 해안동 근처는 개항 이후 형성된 다국적 도시경관과 근대 건축물이 잘 보전된 지역이죠. 외관의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한국근대문학관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돼 물류창고·김치공장 등으로 사용했는데요. 2년여의 공사를 거쳐 2013년 한국근대문학관으로 다시 태어났죠.
이 전시 중이다. 전시 작품은 분기별로 바뀐다." src="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11/27/83db0798-1058-4a41-9870-211bbdc62160.jpg">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한 함태영 한국근대문학관 운영팀장(이하 함 팀장)과 김종운 인천광역시 문화관광해설사(이하 김 해설사)는 먼저 외벽에 있는 한 작품 쪽으로 이끌었어요. "이 외벽에 있는 시는 분기별로 작품이 바뀝니다." 김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박리안·유정현 학생기자와 이예준 학생모델은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
을 낭독했죠.
예준 학생모델이 "한국근대문학 관련 박물관이 인천에 설립된 이유는 무엇인가요?"라고 궁금해했죠. "서울과 가까운 항구 도시인 인천은 근대문화를 먼저 받아들인 지역 중 하나예요. 특히 한국근대문학관이 설립된 이곳은 100여 년 전 조선의 개항장이 있어 외국의 문물이 들어오던 곳이었어요. 여기서 몇 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바다가 보인답니다. 100여 년 전에는 외국 사람들이 바로 이 바다에 배를 대고 조선에 들어왔죠."(함)
조선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기점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종래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 개혁해 나갔는데요.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이 서구화되면서 우리나라의 문학 역시 기존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죠. 정현 학생기자가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였어요. 신분제는 언제 철폐됐으며, 그것이 근대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라고 질문했죠. "신분제도는 1894년부터 3차례에 걸쳐 추진된 갑오개혁을 통해 공식적으로 철폐됐어요. 그러면서 누구나 학교에 다니고, 글을 배울 수 있게 됐죠. 근대 문학이 출발할 토대가 넓게 마련된 셈입니다. 또 문인들이 일본 등 해외로 유학을 가면서 서구 문학을 접하게 되고, 이를 통해 국내 문학도 근대화를 향해 나아갔어요."(함)
(1908)에는 철도 개통으로 대표되는 서구문화에서 받은 충격이 잘 드러났다. " src="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11/27/2071387c-07cb-4167-ae4c-064a173ae534.jpg">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시기의 정의는 학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조선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 1950년 6·25 전쟁으로 남과 북이 나뉘기 전까지 공개된 한국적 정체성이 표현된 문학작품을 이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 변화와 발전 과정은 크게 여섯 시기로 나눠 살펴볼 수 있죠.
1894~1910 한국 근대문학의 씨앗을 뿌리다
첫 번째 시기는 전라도 고부군에서 민중 계층인 농민이 주도한 동학농민혁명(갑오농민전쟁)과 지배 계층이 주도한 갑오개혁이 일어난 1894년부터 한일 강제 병합이 자행된 1910년까지입니다. 이를 근대계몽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조선왕조의 몰락과 근대국가 설립을 향한 열망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던 시기예요. 낡은 폐습을 타파하고 발달한 문명을 받아들여 발전하는 문명개화(文明開化)와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거나 의존하지 않고 자주권을 행사하는 자주독립(自主獨立)이 많은 사람의 관심사였죠. 동학농민혁명·갑오개혁이 모두 1894년에 일어난 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근대계몽기 우리 문학은 내용상으로는 계몽적인 메시지를 담았지만, 형식상으로는 조선시대와 근대에 걸쳐 있는 과도기적 특성이 있어요. 함 팀장이 근대계몽기 주요 문학 장르인 계몽가사 중 이중원의
「동심가」
(1896)를 예로 들었죠. "잠을 깨세, 잠을 깨세, 사천 년이 꿈속이라, 모든 나라가 함께 모여 온 세상이 한 집이로다." 4음절로 된 비슷한 문장 구조가 반복되고, 비슷한 구절을 짝지은 대구(對句)를 활용했는데, 이는 조선시대 문학의 한 갈래인 가사의 특징이죠. 하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문명개화의 중요성입니다. 형식은 전통적이지만, 주제는 새롭죠.
(1908)를 직접 들어봤다. " src="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11/27/b0cfbd60-4a87-4517-8e07-be7ea145e9c9.jpg">
서양 행진곡·찬송가·일본 창가 등의 영향을 받은 노래인 창가도 이 시기 중요한 문학 장르입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상설전시실에서 이 시기 창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최남선의
「경부철도노래」
(1908)를 노래로 들어봤어요. 경부선의 시작인 남대문역에서부터 종착역인 부산까지 여러 역을 열거하면서 풍경이나 사실을 기행문처럼 기록한 긴 형식의 창가죠. 철도의 개통으로 대표되는 서구문화에서 받은 충격이 잘 드러난 작품이에요. 낯선 어휘와 어조를 사용하는
「경부철도노래」
가 신기했던 예준 학생모델이 주의 깊게 노래를 들었습니다.
시에서도 변화가 일어났어요. 시에서 일정한 형식으로 드러나는 운율을 정형률이라 하는데요. 근대계몽기에 발생한 신체시는 전통적 정형률과 조선왕조의 구시대적 이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율격이란 그릇 안에 근대적 문명개화라는 내용을 담았죠. 바다로 상징되는 근대 문명에 대한 관심과 수용 의지를 드러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1908)가 신체시의 좋은 예입니다.
소설에서는 고전소설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근대소설의 형식을 실험한 신소설이 등장했죠. 시간 순서대로 전개하는 경우가 많았던 고전소설과 달리, 현재와 과거를 뒤바꿔 서술하는 새로운 방식이 사용되기도 했어요. 청일전쟁(1894)에 의해 고아가 된 옥련이 일본으로 건너간 뒤, 구완서라는 청년을 만나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조선 근대화에 힘쓰기를 다짐하며 결혼하는 이야기인 이인직의 『혈의 누』(1906)가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에요. 또 조선이 외세의 압력에 시달리던 시기였던 만큼 을지문덕·이순신과 같은 민족 영웅이나 고난 극복의 역사적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자주독립과 애국심을 강조한 역사전기물도 사랑받았어요.
1910~1919 일제강점기와 근대 문학의 출발
근대계몽기에 씨앗을 뿌렸던 한국 근대 문학은 1910년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변화를 맞이합니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한일합병)가 발생한 1910년부터 3·1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1919년까지가 한국 근대 문학의 두 번째 시기죠. 자주독립국가 건설과 부국강병, 문명개화를 외치던 창가·신체시·역사전기물은 일제의 검열·규제 대상이 됐어요. 그래서 1910년대 문학에서는 정치·사회 문제가 배제되고 신교육과 자유연애, 식민지 치하 무기력한 지식인의 우울·고뇌 등을 많이 다루게 되죠.
장르별로 살펴볼까요. 먼저 시입니다. 계몽적인 내용을 다루며 집단의 목소리를 드러냈던 신체시와는 달리, 개인의 정서를 개성적으로 드러낸 시가 등장했죠. 함 팀장이 리안 학생기자에게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라고 묻자 "학교 안 가서 좋아요"라고 답했죠. 함 팀장은 "그런 생각과 감정을 길게 쓰면 근대 소설이 되고, 짧게 시로 쓰면 근대 시가 되는 겁니다. 즉, 1910년대부터 '나는 외롭다' '나는 누구를 사랑한다' 등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근대문학의 단계로 진입한 것이죠"라고 설명했어요.
이에 해당하는 예가 바로 주요한의
「불놀이」
(1919)예요. 4월 초파일 대동강에서 벌어진 불놀이를 바라보는 젊은이가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며 애상에 젖는 내용인데요. 계몽성이나 목적성을 배제하고 개인의 내면과 정서를 자유로운 문장에 담아냈죠.
1910년대를 대표하는 장편소설은 이광수의 『무정』(1917)입니다. 등장인물들을 통해 신구질서가 충돌하던 격변기의 조선사회를 보여주죠. 또한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 그대로 소설 문장으로 써 근대 소설의 문체를 뚜렷하게 확립했으며, 세밀한 묘사와 생동감 있는 인물 활용 면에서도 이전 시기 소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죠.
1919~1925 식민지 현실 속에서 성장하다
한국이 일본의 강제적인 식민지 정책으로부터 자주독립할 목적으로 일으킨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부터 1925년까지가 세 번째입니다. 함 팀장이 "3·1 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1920년대 초기에는 좌절감과 현실 도피 의식을 표현한 시가 주로 창작되죠"라고 설명했어요. 박영희의
「월광으로 짠 병실」
(1923), 박종화의
「흑방비곡」
(1922)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암울했지만 김소월·한용운과 같은 민족시인이 두각을 드러낸 시기이기도 해요. 김소월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로 평가받는
「진달래꽃」
(1922)을 선보였으며,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1926)에서 불교 사상·윤리를 바탕으로 식민지 현실에 대한 고통과 구원의 메시지를 드러냈죠.
소설에서도 시대 반영의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염상섭은
「표본실의 청개구리」
(1921)를 통해 3·1 운동의 실패 이후 패배주의적 경향 속에서 우울함에 시달리는 지식인의 고뇌를 그렸고,
「만세전」
(1924)에서는 도쿄 유학생인 주인공이 조선으로 귀국하는 동안 목격한 여러 이야기를 통해 일제 치하 식민지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했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확립한 작가로 평가받는 현진건은 인력거꾼 김 첨지의 일상을 그린
「운수 좋은 날」
(1924)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당대 노동자와 농민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줬어요. 리안 학생기자가 상설전시실 벽면에 그림으로 묘사된
「운수 좋은 날」
의 한 장면을 살폈는데요. 싸늘하게 식은 아내의 주검 앞에서 김 첨지가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죠.
1925~1935 리얼리즘·모더니즘으로 식민지 현실에 맞서다
네 번째 시기인 1925~1935년에는 식민지 치하의 근대의 문제점을 포착한 모더니즘 소설·시, 사회주의 영향을 받은 카프 문학 등이 나타났어요. 1930년대에는 식민지 자본주의 발달로 백화점·카페·호텔·영화관이 경성(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 들어섰죠. 근대 자본주의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인 황금만능주의와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인간 소외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어요.
모더니즘 시와 소설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했습니다. 화폐를 통한 교환관계에 대해 냉소적 시선이 담긴 이상의 소설
「날개」
(1936), 가난한 소설가 구보씨의 시선을 통해 근대도시 경성의 우울한 풍경을 담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등이죠. 모더니즘 시도 근대적 삶의 불안과 자아의 분열 등을 집중적으로 표현했죠. 정지용의 시
「카페 프란스」
(1926)는 식민지 지식인의 우울한 내면을 생생하게 그렸어요.
사회주의 영향을 받아 민중이 식민지배와 자본주의의 폐해로부터 벗어나는데 문학이 제 역할을 하자는 문학 장르인 카프(KAPF)도 나타납니다. 예준 학생모델이 "카프가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됐나요?"라고 질문했어요. "1917년에 러시아에서 왕정을 붕괴시킨 혁명이 일어나요. 이를 계기로 사회주의가 전 세계로 퍼졌고,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들어오죠. 일부 시인·소설가 등은 이러한 사상을 반영한 문학 작품을 썼습니다."(함)
카프는 민중을 사회 변화와 혁명의 주체라고 봤어요. 농민의 아들 박성운이 주인공인 조명희의
「낙동강」
(1927), 조선에서의 궁핍한 생활을 청산하고 만주로 이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한설야의
「과도기」
(1929) 등이 대표적인 카프 소설이죠. 카프 시인들은 각성한 지식인·노동자·농민의 목소리를 통해 타락한 현실을 고발하거나,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계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어요. 노동운동을 하다가 감옥으로 끌려간 오빠에게 편지를 보내는 누이동생 이야기인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
(1929) 등이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일제가 만주사변(1931)을 계기로 군국주의 정책을 강화하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관련된 카프 문학을 탄압해 1935년부터 카프 문학은 자취를 감추게 됐죠.
1935~1945 일제 파시즘에 맞서 시대를 고뇌하다
다섯 번째는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35년부터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1945년까지예요. 일제는 이 시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을 일으키고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을 대대적으로 수탈하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예준 학생모델이 "일제는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말살하려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일제강점기 시인과 소설가들은 우리말로 작품을 쓸 수 있었나요?"라고 궁금해했죠. "조선어 사용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것은 해방되기 몇 년 전이에요.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국권 침탈이나 독립을 향한 열망을 담은 문학 작품이 공식적으로 발표될 수는 없었죠." 함 팀장의 설명처럼 일제는 1940년 이후에는 각종 신문·잡지를 폐간하고, 한글 사용도 금지했어요. 문인들에게는 통제와 검열, 일제에 대한 협조가 강요됐죠. 지식인을 향한 혹독한 사상 탄압은 사회주의자 경력을 감추고 대학 강사로 취직하려던 변절 지식인이 주인공인 유진오의 소설
「김 강사와 T교수」
(1935)에 잘 나타나요.
또한 현실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제약과 일제 치하 이전 역사에 대한 관심 등이 더해져 193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역사소설이 유행하죠. 홍명희의 대하장편소설 『임꺽정』(1928~1940)은 신분제도 등 봉건제에 저항하는 하층민의 서사와 당시의 생활 관습을 생생하게 묘사했어요. 한국근대문학관이 있는 인천을 배경으로 한 현덕의 소설 『남생이』(1938)는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농촌공동체의 와해과정을 그렸는데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애니메이션으로 『남생이』를 감상했죠.
1930년대 후반엔 민족과 문학의 암흑기를 헤쳐 나갈 대안으로 가족사연대기소설이 등장해요. 김남천의 『대하』(1939)처럼 한 가족의 삶을 시기별로 보여주면서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조명하는 방식인데요. 좌절·절망·혼돈에 휩싸인 현재를 있게 만든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미래를 기약하기 위함이었죠. 시인들에게선 근대적 물질문명에 훼손되지 않은 인간의 본원성이나 원초적 생명을 탐구하는 경향도 나타났어요. 이들을 '생명파'라고 부릅니다. 유치환은 그의 첫 시집 『청마 시초』(1939) 서문에서 "시란 생명의 표현, 혹은 생명 그 자체"라고 밝히기도 했죠.
1945~1948 해방의 감격과 민족문학의 부활
여섯 번째 시기는 1945년 해방부터 1948년 남한과 북한의 분단까지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드디어 일제 치하를 벗어나 광복을 맞이해요. 조선어 말살 정책을 벗어나 우리 말과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온 것이죠. 민족 해방을 위해 앞장선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육사시집』(1946)과 식민지 현실에서의 치열한 고뇌가 담긴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등이 이때 간행됐어요.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위의 시는 심훈이 지은
「그날이 오면」
(1949)입니다. 1930년 3월 1일에 썼으나 일제 검열로 인해 출간이 미뤄졌죠. 해방을 향한 기대와 광복의 기쁨이 생생하게 담겼어요.
하지만 이 시기는 나라 밖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 나라 안으로는 좌와 우의 대립이 시작됐던 때이기도 해요. 문인들 역시 좌와 우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거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드러냈죠. 1948년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작가들 역시 자신이 지향하는 체제와 이념에 맞춰 대한민국과 북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치열했던 이념 대립은 소설에서 잘 나타납니다. 이태준의 소설
「해방 전후」
(1946)는 일제 치하 해방 직전까지 양심을 지키던 주인공이 해방 후 좌파 문학 진영에 가담하는 모습을 그렸죠.
여기까지가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와 흐름이에요. 문학은 각 시대 사람들이 어떤 양식의 삶을 살았으며, 당시 많은 영향을 끼치던 사상과 신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시대의 거울'입니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역사는 강화도 조약부터 조선 왕조로 대표되는 봉건체제의 몰락, 새로운 민족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비극, 조국을 되찾은 광복까지 우리나라 근대의 주요 사건과도 맞닿아 있죠. 그래서 근대 문학은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변화를 겪었던 근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매개체예요. 또한 문학은 당대 언어로 구현한 예술이기에 근대 한국어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죠. 즉, 책장을 펼치면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타임머신인 셈이랍니다.
■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는 근대문학
「 하나의 이야기가 소설이나 시로 세상에 나오면 영화·드라마·희곡·전시 등으로 재탄생하기도 하죠. 이야기를 듣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모두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한국 근대문학 작가들과 친해져 보세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
20대 연인들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고군분투를 해학적으로 그려낸 김유정의 『봄봄』, 40대 가장의 어느 하루를 통해 본 경성시대의 명암이 담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60대에 돌아보는 삶에 대한 소회가 담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세 사람의 인생을 풀어내는 하나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어요. 원작을 최대한 살린 전개와 아름다운 영상이 특징입니다.
소나기(2017)
황순원은 1931년 시
「나의 꿈」
으로 등단한 뒤 소설과 시를 넘나들며 한국 근현대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예요.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설 중 하나인 『소나기』를 원작으로 한 시골소년과 도시소녀의 짧지만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입니다. 섬세한 작화와 서정적인 영상미로 원작의 가슴 설레는 분위기를 잘 구현했죠.
무녀도(2021)
시대의 변화 속에 소멸해 가는 무녀와 신구세대의 갈등을 담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무녀도』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이에요. 한국의 전통 색채와 풍경이 담겨 있는 작화가 특징이며, 주인공들이 겪는 일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의 시대상을 보여주죠.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해요.
」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소년중앙 학생기자단 취재로 인천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에 갔어요. 전시 관람하기 전 건물 벽에 있는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
이라는 시를 낭독해 봤죠. 이후 김종운 해설사님과 상설전시실로 들어가 여러 시기의 우리나라 근대문학 작품도 살펴봤죠. 최남선의
「경부철도노래」
를 들어보고 현덕 작가의 『남생이』를 애니메이션화한 작품도 봤어요. 주인공은 노마와 그의 가족이었죠. 취재로 알아본 한국 근대 문학은 매우 신기하고 흥미로웠어요. 소중 독자 여러분도 한국근대문학관에 꼭 가보기를 추천해요. 저도 가족과 함께 다시 가보고 싶어요.
박리안(서울 태랑초 5) 학생기자
사실 한국 근대 문학이라는 취재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는 생소했어요. 그래서 질문지를 작성할 때도 지금까지 참여했던 그 어떤 취재보다 오래 걸렸죠. 이번 취재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한국근대문학관에 들어가는 순간 이 생각은 제 머릿속에서 지워졌어요. 많은 책과 풍부한 장르,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까지 정말 흥미로웠죠.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카프'라는 장르였는데, 당시 사회주의 문학이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문학관에 근대에 세상으로 나온 문학 작품들도 있어서 잠시 읽어보았는데 그 시대의 생활이나 상황을 알 수 있었어요. 취재가 끝나고 꼭 찾아서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평소 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 소중한 취재였어요.
유정현(서울 목동초 5) 학생기자
이번 취재는 근대 문학에 대한 것으로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1894~1948년 만들어진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근대계몽기에 발표된
「경부철도노래」
를 들었는데 요즘 음악과 많이 다르고 오래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근대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현재와는 다른 어휘와 표현 방법을 보면서 시대가 바뀌면서 언어도 바뀐다는 것을 알았어요. 글 속에 그때 사람들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시절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었죠. 특히 식민지의 혼란 속에서도 조국의 자주독립에 대한 글을 쓴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근대 문학 작품을 더 읽은 뒤 다시 방문하고 싶어요.
이예준(서울 도성초 4) 학생모델
」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박리안(서울 태랑초 5)·유정현(서울 목동초 5) 학생기자·이예준(서울 도성초 4) 학생모델, 참고서적 『단숨에 읽는 한국 근대문학사』(한국근대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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