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국민의힘의 혁신, 헌신, 그리고 확신
‘헌신’이 도통 보이지 않으니
‘확신’도 비관으로 기우는 중
여당 국민의힘이 최근 소속 당직자와 보좌진을 대상으로 민심에 다가갈 수 있는 정책 홍보용 ‘카피’(유행어)를 공모했다. 대상에 ‘혁신, 헌신 그리고 확신’이 꼽혔다. 제안자는 “‘혁신’과 ‘헌신’을 통해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 승리를 ‘확신’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 행태는 이 간결하고 희망찬 카피와는 정반대로 보인다.
먼저 혁신부터 들여다보자. 국민의힘은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12일 만에 인요한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인 위원장은 친윤(친윤석열) 인사와 당 지도부, 중진의 수도권 험지 출마 등 당초 기대보다 수위 높은 제안을 불쑥 꺼내 들며 한동안 정치권의 이슈를 주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혁신은 딱 거기에 멈춰 있다. 인 위원장이 지도부와 친윤계 등을 향해 희생을 요구한 지 3주가 지나도록 당내 어느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은 보란 듯 전세버스 92대를 동원한 산악회 행사로 지역구 사수 의지를 드러냈다. 김기현 대표도 지난 25일 지역구 의정 보고회에서 “내 지역구도, 고향도 울산인데, 지역구를 가는 데 왜 시비인가”라며 험지 출마론에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지도부나 실세조차 당을 위해 좀처럼 헌신하지 않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일부 의원들은 내년 예산안도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인의 용퇴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아마추어’라며 인 위원장을 비판했다. 하지만 애초 그런 아마추어 인 위원장을 링 위로 소환한 건 국민의힘 지도부다. 보궐선거 패배 책임을 피하려고 혁신위를 띄워놓고 막상 혁신위가 물밑 조율 없이 용퇴론부터 꺼내자 지도부가 뭉그적대며 혁신위 힘 빼기에 나서는 건 지독한 자가당착 아닌가. 국민은 아직도 김기현 대표가 인 위원장에게 “전권을 다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걸 생생히 기억한다. 혁신위발(發) 용퇴론에 ‘타이밍이 아쉽다’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응은 일반 국민에게는 그저 ‘여의도 사투리’일 뿐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정책이라도 바뀌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신통치 않다. 국민의힘이 꺼내든 ‘메가시티 프로젝트’는 당내에서조차 물음표가 제기됐다. 이를 두고 혁신이라고 볼 국민은 별로 없는 듯하다.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 재정립은 고민하는 ‘척’도 안 하는 것 같다. 김 대표와 인 위원장 모두 ‘윤심(尹心)’이 자기편이라고 우기기 급급하다. 당대표·원내대표·사무총장 등 핵심 간부가 영남 일색이라는 비판에도 공석인 최고위원 한 자리마저 영남 의원이 기어이 차지했다.
“와이프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인 위원장의 첫 일성이 무색할 만큼 국민의힘은 바뀌지 않았다. 국민의힘에 오래 몸담았던 한 인사는 혁신위 출범 전 “‘당이 200석을 얻더라도 내가 떨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게 의원들의 기본적 마인드”라고 귀띔했다. 이 말을 멋지게 반박해줄 의원이 한두 명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 말보다 여당을 더 잘 나타내는 표현을 못 찾겠다.
혁신도, 헌신도 없으니 확신의 방향도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오죽하면 이제 믿을 건 ‘암컷’ 발언 같은 야권의 실수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올까. 상황이 이런데 비주류나 소장파가 연대해서 대안을 찾는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부분 혹시나 공천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숨죽이고 있다. 올해 초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출마하려던 어느 중진 인사를 주저앉히려고 ‘연판장’을 돌리던 초선들의 패기는 어디로 갔을까. 전형적인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함)의 모습 아닌가.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선수(選數)도, 탄탄한 지역 기반도 아니다. 불이익이 뻔한데도 권력에 맞섰던 강단과 소신의 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집권여당은 정권의 명운을 건 총선을 앞두고 그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며 숨죽이고 있다.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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