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을 깬 첫 대사... 모든 순간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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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여행,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연극 등 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자립과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권유정 기자]
▲ 광주시민연극제에 참가하여 작품상을 수상했다 |
ⓒ 전남일보 |
청평에서 광주까지 먼 길을 가 고생한 보람이 좋은 성과로 나타난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우리(발달장애 당사자와 그 주변인)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다는 것이 기뻤다.
연극 <시선, 그때 우리는>은 아이들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직접 대사도 쓰고 함께 만든 작품이기에 무대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관련기사 : 자기혐오 하는 아이들, 이 무대에서는 아닙니다 https://omn.kr/265ob]
믿었지만 걱정도 많았다
▲ <시선, 그때 우리는> 공연 중 한 장면 |
ⓒ 호산나대학 유튜브 |
내내 장애인임을 숨기고 싶어 하던 아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 장애가 있음을 고백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응원해 주는 교사와 친구들에게 기대어 용기를 냈으나 편치만은 않은 길인지라 아이는 갖가지 방식으로 불안함을 표시했다.
특히 공연 이틀 전 교내에서 선후배를 대상으로 프리뷰 공연을 앞두고는, 하기 싫다며 작년에 자주 보이던 비딱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대사를 외우고 연습하여 비교적 안정적인 연기를 보였지만 쉬는 시간이면 감정의 기복이 컸다.
성실한 연습하는 태도에서, 연극 프로젝트 수업일이면 평소와 달리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서 어려운 자리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마주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샘솟았다.
나는 아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지만 그 크기를 감히 알지 못한다. 이 연극이 아이들에게 치유의 과정이 되리라 믿지만 무대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힘겨울지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그래서 H가 무대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상상을 했다. 우리는 아이가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주고자 하지만 결국 마지막 한 발을 내딛는 데 필요한 건 스스로의 의지이다.
프리뷰 공연일, H는 긴장해 잔뜩 굳은 얼굴로 무대에 섰다. 그리고 첫 대사를 한참 동안 뱉지 못했다. 영화였다면 NG를 외쳤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연극이었고, 무대를 채우는 건 오로지 아이들의 몫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긴 정적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H는 겨우 첫 대사를 토했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야."
무수한 연습으로 달달 외운 덕분인지 첫마디 이후로는 쭉 대사가 이어졌다. 다음 장면에서도 H는 첫 음절을 꺼내기가 힘겨웠지만 이어지는 대사는 매끄럽게 소화했다. 기나긴 침묵은 그 아이가 홀로 견뎌온 과거의 흔적이었고, 막힘없이 이어진 대사는 그 아이가 노력해 온 현재의 증거였다.
H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마지막 단체 군무까지 공연을 마쳤을 때, 객석 곳곳에서 울음이 흘러나왔다. 온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아이의 진정성이 관객들에게도 닿은 것이다. 나 역시 공연을 준비하며 수십 번 본 장면임에도 눈시울이 시큰했다.
▲ <시선, 그때 우리는> 중에서 |
ⓒ 호산나대학 유튜브 |
손기능이 약해 혼자서 리본을 묶지 못했는데 연극 장면을 위해 리본 묶기를 연습했고 이제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방법을 터득했다. 제 물건도 남에게 맡기던 아이가 무거운 연극 소품을 제가 들겠다며 나서고, 제가 흘린 음료도 남들이 닦아주기만 기다리던 아이가 제가 식사한 자리를 척척 정리한다.
군무도 원래 기억하지 않고 그냥 다른 친구들을 따라 하느라 한 박자 이상 늦고 몸짓에도 힘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앞서 나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 <시선, 그때 우리는> 중에서 |
ⓒ 호산나대학 유튜브 |
주말에 뭐 했냐는 평범한 질문에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던 아이가 2학년 봄 MT에서 처음 노래를 선보였을 때 모두가 깜짝 놀랐었다.
"저는 말을 좀 더듬어요. 친구들하고 얘기할 때는 좀 괜찮은데 이렇게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거나 어른들하고 이야기할 때는 말을 많이 더듬어요. 지금도 많이 긴장돼요."
▲ <시선, 그때 우리는> 중에서 |
ⓒ 호산나대학 유튜브 |
"넌 이런 것도 못하냐?"
"하지도 못하면서 왜 나서? 너를 믿은 내가 바보다, 바보!"
"저리가, 너 때문에 망쳤잖아!"
"아무것도 하지마."
▲ <시선, 그때 우리는> 중에서 |
ⓒ 호산나대학 유튜브 |
▲ <시선, 그때 우리는> 중에서 |
ⓒ 호산나대학 유튜브 |
연극은 끝났지만 기억은 남아서
그리고 극의 또 다른 주인공, S도 참 기특했다. 우리 학교에는 졸업 후에도 개별적인 욕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인턴십 과정이 있는데, S는 졸업하고 취업을 했지만 학교를 좋아해 주 1~2회 등교를 하고 있다.
▲ <시선, 그때 우리는> 중에서 |
ⓒ 호산나대학 유튜브 |
덕분에 우리가 '대배우'라는 별명도 붙여주였다. 대배우답게 기분에 따라 대사를 바꾸고 애드리브를 남발하여 후배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지만 S는 공연을 연습하는 내내 행복 가득한 얼굴과 드라마틱한 표현력으로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 공연을 통해 많은 것들을 느낀 학생들 |
ⓒ 권유정 |
공지사항이든 활동지든 주기만 하면 몇 시간 이내로 낙서하고 찢어서 버리기 일쑤이던 아이가 대본을 두 달 내내 파일에 넣고 곱게 간직하여 감탄을 유발하기도 했다. 본인의 대사라고는 '저리 가' 달랑 한 마디였는데 형광펜으로 칠하고 빈 공간에 비뚤비뚤한 글씨로 '저리 가, 저리 가, 저리 가'를 반복해 쓰며 연습한 흔적이 있었다.
타인에게 관심 표현을 하지 않던 아이들이 한 무대를 만들며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모습도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했다.
본격적인 공연 연습을 한 건 두어 달, 공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두 학기 정도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우리가 함께 한 이년 여의 시간이고, 아이들 각자가 가진 스무여 해의 세월이다. 연극제는 끝났지만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 긴 여운이 남는다.
스토리와 구성력으로 호평을 받은 무대 위의 모습도, 우리만 알고 있는 무대 뒤의 모습도, 모든 순간이 벅찬 <시선, 그때 우리는>의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brunch.co.kr/@h-teacher)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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