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게 아니고 저를 찾는 거예요 [공백기 인터뷰]
삶의 어느 지점, 우리는 모두 공백기를 지난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일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1개월 이상의 공백기는 용납되지 않는다. 공백을 경제 손실, 게으름과 무능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공백기를 보내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불행하다. 그냥 쉬는 사람은 없다.
사단법인 니트생활자는 공백기를 보내는 청년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만드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2019년부터 공백기를 보내는 20~30대 청년들을 1000명 이상 만나오며 공백기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각기 다른 이유로 공백기를 보내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할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이번에 소개할 청년 프니(34·가명)는 좌절하고,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치 있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가 공백기를 보낸 과정,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려고 용기를 냈던 순간들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위트있는 니트생활을 꿈꾸는 프니입니다. ‘프리니트’는 니트컴퍼니에서 시작된 저의 정체성이에요. 니트컴퍼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업무를 인증해야 하는데, 그 강제성을 이용해서 매일 그림을 한 장을 그렸어요. 그러다가 어떤 분이 “인스타그램에도 올려보세요”라고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제가 귀가 얇거든요. 프리니트라는 계정을 만들어서 그림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는 거예요. 계속하다 보니 정체성도 찾게 됐어요.
-무업기간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첫 번째 회사에서는 회계 일을 했어요. 너무 재미없어서 한 달 만에 그만두고 싶었는데, 그래도 4년을 다녔어요. 그때는 어리기도 했고, 그만두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 없었어요. 주변에서 “네가 여길 나가면 어딜 가냐, 너 스펙에 재취업 못 한다”라는 말을 했거든요. ‘그런가’ 생각하면서 다니다가 진짜 아닌 것 같아서 도망치기까지 4년이 걸렸네요.
-무업기간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회사에서 사람에 치이다 보니까 사람이 싫었어요. ‘입을 닫고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속기사는 듣기만 하면 되고, 말하면 안 된다고 해서 학원으로 갔죠. 상담받고, 비싼 돈 주고 기계도 사고, 홍대까지 가서 새벽부터 공부했어요. 이때 무업기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아요. 결국 속기사로 취업은 못 했어요. 막상 자격증까지 따고 보니 알겠더라고요. 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때 제 나이가 29세였어요. 주변에서는 서른 되기 전에 확실히 진로를 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막상 할 게 없다 보니 힘들었어요. 그나마 경험이 있는 회계에 다시 발을 들였는데 6개월 만에 아니라는 걸 깨닫고 쉬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취직했던 곳에서 “내년에 새로운 사업 시작되면 다시 같이 일하자”라고 했는데, 그다음 해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해당 사업도 중단됐어요.
-구직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지난 2020년 3월이었어요. 그래도 돈은 벌어야겠다 싶어서 동네에 있는 회사로 면접을 보러 갔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2019년도에 결혼을 하고 처음 보는 면접이었거든요. 기혼이라니까, 면접관이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면접관 : 애는 낳을 거예요?
프니 : 딩크족이에요.
면접관 : 저는 그런 말 안 믿어요.
프니 : 그럼 왜 부르셨어요? 전화로 물어봐도 되잖아요.
면접관 : 전화로 먼저 물어보면 법적으로 안 돼요.
면접관의 결론은 내조였어요. 저에게 “남편이 돈 잘 벌기를 바라세요”라고 했죠. 계단을 우당탕 내려오는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저는 결혼해서 달라진 게 없었거든요. 기혼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런 무례한 일을 당하다니.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한마디 쏘아주지 못하고 돌아온 내가 싫어서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울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달 동안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못 했어요.
-충격이 컸을 것 같아요.
그 후로 면접 공포증이 생겼어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이왕 이렇게 된 거 하고 싶었던 걸 배워보자’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때부터 웹 소설, 전자책, 유튜브 기획 강의를 결제하고 하루 종일 강의만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돈이 벌고 싶은 거예요. 여전히 회사는 가기 싫어서 재택 알바를 시작했어요. 유튜브 작가, 상품 등록 알바, 콘티 알바 등등. 그때 수익 최고점을 찍었어요. 그중에 꾸준히 했던 게 유튜브 콘티 작가였는데 채널의 주제가 가십, 이슈에 집중되다 보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그만두었어요. 다시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어요.
-공백기에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누가 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했어요. 20대 때 저는 굉장히 의존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적성이나 관심사를 찾아봐도 좋았을 텐데, 부모님 말씀을 너무 열심히 들었죠. 그래서 저는 30세가 될 때까지 저를 잘 몰랐어요. 어느 날 도서관에 앉아서 종이 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봤어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한 사람이더라고요. 그런데도 용기가 부족해서 한 발짝을 나아가질 못했어요. 누가 옆에서 “너 괜찮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한번 도전해 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또 다른 길로 가지 않았을까요.
-현재 하는 창작활동은 어떤가요.
원래 꿈은 방송작가였거든요. 수시를 문예 창작학과로 넣었는데 떨어지고 말았어요. 사실 그때부터 인생을 포기하듯이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굳이 방송국에 가지 않더라도 작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독립출판도 도전해 봤어요. 운전면허를 따는 과정을 담았어요. 돈 아끼겠다고, 학원 대신 독학으로 준비했거든요. 기능 시험 4번 떨어지는 동안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은 책인데, 만들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험 한 번에 합격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많이 떨어질수록 저에게 콘텐츠가 쌓인 거였더라고요.(하하)
-창작자로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 있나요.
예전에 우연한 계기로 컴퓨터 강사를 해본 적이 있어요. 장애인과 노인을 대상으로 엑셀, 파워포인트, 한글 프로그램을 알려주는 일이었어요. 당시 협회 사무처장님이 저를 불러서 강의를 잘할 것 같다고 해보라는 거예요. 너무 재밌었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죠.
나중에 해보고 싶은 일은 따로 있어요. 지하철 개찰구 주변 의자에 항상 노인들이 앉아있거든요. 그분들을 볼 때마다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우린 모두 무업 동지인데 같이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가까운 미래에는 그분들과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나에게 공백기란 어떤 의미일까요.
‘실험 기간’인 것 같아요. 인스타툰 작가님들과 DM으로 소통하다 만난 적이 있어요. 저는 낯을 엄청나게 가리는 사람인데,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서 3시간 동안 떠들고 있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저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됐어요. 그림을 그리다 가끔 “재미있다, 잘 보고 있다”라는 댓글 하나에 힘이 나고 또 그런 제 모습이 신기하기도 해요. 공백기는 나에 대해 더 알아가고, 확신을 얻어 가는 시간 같아요.
니트생활자 admin@neetpeo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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