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팔아 번 돈, 아프로디테님께 봉헌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바로 ‘매춘’이다. 성욕은 태곳적부터 존재해왔지만, 불행하게도 모든 이들이 성교 파트너를 가진 건 아니었다. 부드러운 살갗, 따스한 숨결, 그리고 찰나의 쾌락을 위해 많은 이들이 지갑을 열어야 했다.
매춘이 오랫동안 존재했다고 늘 같은 모습인 건 아니었다. 고대 시대 매춘은 적어도 오늘날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수메르 문명만 봐도 그렇다. 기원전 2400년 수메르의 대표 도시 우르크에서는 사제들이 매춘 업소를 운영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윤락이 이뤄진 장소가 다름 아닌 ‘사원’이었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성(聖)스러움과 성(性)스러움이 구별되지 않았다. 사원에는 늘 유녀들이 거주했고, 길 가는 나그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당시만 해도 신전에서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성의 생식능력은 자연이 준 선물로 주술적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의 매춘을 ‘신성매춘(Sacred Prostitution)’이라고 부른 이유다. 저명한 수메르 학자 사무엘 노아 크라메르는 “수메르의 왕들이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인안나 사원에서 성교하면서 권위를 과시했다”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모시는 신의 성격에 따라 사원에서 매춘이 이뤄지기도 했다.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그랬다. 신전 유녀들은 ‘헤타이라’로 불렸다. 몸을 팔아 번 돈은 아프로디테에게 봉헌됐다. 정숙한 의상과 고상한 언어를 구사했기에 저잣거리 매춘 여성과는 급이 달랐다.
가난한 그리스 사내들을 위한 매춘 여성도 공존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성을 파는 여성은 ‘포르노이’라고 불렸다. 포르노이가 단골손님의 습관·성적 취향을 모아 기록한 책이 ‘포르노그래피’였다. 우리말로 풀면 ‘성매매 장부’인 셈이다. 성적 이미지·영상을 뜻하는 ‘포르노’가 바로 여기서 파생했다.
고대 로마에서 매춘 사업은 더욱 불이 붙었다. 전 유럽을 로마가 정벌하면서 노예가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노예상들은 장 복판에 여성들을 전시했다. 보다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팔기 위해 전시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프로스티투테(Prostitute)’가 매춘부를 의미하는 ‘프로스티튜트’로 변용된 배경이다. 고대 매춘의 역사가 현대 언어에까지 그 흔적을 남긴 셈이다.
성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가 중세 유럽을 지배한 후에도 매춘이 배척된 것은 아니었다.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여겨서다. 매춘 여성이 사라지면 ‘정숙한 여성’들이 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프랑스 파리·툴루즈, 영국 런던 등 유럽 주요 도시에는 성매매 집결지인 ‘유곽’이 자리를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유곽의 관리 주체는 국가와 교회였다. 종교를 앞세웠지만, 뒤로는 수익을 추구했던 시대였다.
중세 시기 잉글랜드에는 매춘이 만연했다. 케임브리지대 총장의 임무가 매춘 관리였을 정도다. 당시 대학은 교회 부설기관이었다. 사실상 교회가 매춘 산업의 주체였다는 얘기다. 14세기 스웨덴의 성 브리기타 수녀는 “수녀원이 신성하기는커녕 유곽에 가깝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매춘에 타격을 준 건 종교가 아닌, 질병이었다. 성병 ‘매독’의 등장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매독이 처음으로 유럽 땅에 착륙했다(첫 발생지가 미 대륙인지, 유럽인지는 아직도 학설이 분분하다). 성매매 집결지가 매독의 온상으로 비난받으면서 1546년 런던에서, 1560년 파리에서 공창이 폐지된다. 16세기 독일의 헬레나 로우볼딘이라는 매춘 여성이 성매매를 하다 적발돼 손가락이 잘리고 거리에서 추방당한 기록이 전해진다.
종교개혁도 ‘매춘 폐지론’에 불을 당겼다. 개혁의 선두자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신부들의 방종한 성생활을 비난했다. 그는 “차라리 성직자들이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면서 “기독교도가 사회 한복판에 유곽을 일상적으로 용인하는 건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개혁의 불꽃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간의 성적 욕망은 계속됐고, 누군가는 여전히 돈으로라도 잠자리를 사고 싶어 했다. 의학의 발전이 성병까지 정복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매춘은 여전히 비난을 받지만, 음습한 어딘가에서는 돈과 섹스가 교환되고 있다.
“역시 인간은 더러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잠시 접어두자. 동물의 세계에도 매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처럼 돈이 직접 오가는 건 아니지만, 물질과 성적 서비스의 교환이라는 측면에서 매춘으로 보기 충분하다.
‘아델리펭귄’이 대표적이다. 녀석들 대부분은 일부일처제로 살아가는 대표 사랑꾼이다. 서식지인 남극에서 새끼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암수 협력이 필수적이어서다. 하지만 어딜 가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남편(?) 몰래 다른 수컷에게 몸을 파는 암컷이 존재한다.
현장을 급습해본다. 암컷 한 마리가 외로운 수컷 둥지를 어슬렁거린다. 짝짓기에 실패한 ‘루저’들이 모인 곳이다. 번듯하고 큼직한 조약돌 성까지 지어놨지만, 짝을 찾지 못한 어설픈 녀석들이다.
루저 수컷의 집을 영악한 암컷이 방문한다. 이내 시작되는 건 짝짓기. 관계가 끝난 후 암컷의 모습이 어쩐지 수상하다. 수컷의 성채에서 가장 빛나는 돌을 하나 갖고 슬그머니 빠져나온다. 교미의 대가다. 펭귄에게 돌은 인간의 돈만큼이나 중요한 재화다.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둥지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교미를 대가로 돌을 가져가는 건 약과. 어떤 암컷은 교미도 없이 수컷을 유혹하고는 스리슬쩍 돌을 훔쳐 가기도 한다.
영장류에서도 동물 매춘의 모습이 발견된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가 침팬지를 관찰한 결과였다. 연구진은 코트디부아르 타이 국립공원 내 야생 침팬지가 암컷 고기를 내민 수컷에게 교미를 허락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관찰했다. 두 침팬지는 모르는 사이였다. 일면식이 없는 타인끼리 재화와 섹스의 교환. 인간 매춘과 같은 모습이다. 연구진들은 “수컷으로서는 자신이 가진 고기를 이용해 짝짓기 성공률을 높여 번식을 할 수 있고, 암컷은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윈윈 관계’였다”고 설명한다.
자연스레 더 사냥을 잘하는 침팬지들은 더 많은 암컷과 교미를 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고기-섹스 교환 가설(The meat-for-sex hypothesis)을 세웠다. 침팬지처럼 수렵 채집 사회 당시 함께 사냥하고 고기를 나눴던 우리 인간 세계에서도 더 나은 사냥꾼 주위에 여자가 몰렸을 것이라는 추론도 나온다.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은 이야기다.
인간이 동물에게 ‘매춘 교육’을 시킨 황당한 사례도 있었다. ‘카푸친 원숭이’ 이야기다. 미국 예일대에서 2005년 카푸친 원숭이 실험에 돌입했다. 이들이 인간처럼 경제적 ‘교환’의 개념을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동전을 주고 이것을 던질 때마다 과일을 원숭이에게 줬다. 몇 개월이 지나자 이들은 명백히 이 동전이 과일과 교환되는 걸 인지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컷 카푸친이 동전을 갖고 자기 무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목격된다. 암컷 앞에 서더니 주섬주섬 무엇을 꺼내들었다. 그 ‘동전’이었다. 암컷은 바로 교미 자세를 취하더니, 격정적인 사랑을 나눴다. 일을 마친 암컷은 동전을 받고 유유히 수컷 곁을 떠났다. 압권은 그다음. 암컷이 연구진에게 찾아와 동전을 던졌다. 맛있는 과일을 이제 내놓으라는 듯이.
동물 매춘이 부도덕만을 상징하는 건 아니다. 교환의 가치를 알 정도로 고도의 지능을 동물이 가졌다는 긍정적 의미도 존재한다. 매춘의 세계는 어쩌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욱 심오할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5호 (2023.11.22~2023.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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