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케인지언의 시대를 끝내다[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 (18) 자본주의와 자유
밀턴 프리드먼. “부패란 정부가 시장 효율성에 규제로서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을 남긴 시카고학파의 거장이다. ‘통화주의의 대부’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 ‘1970년대 이후 주류 경제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학자’ 등 그를 설명하는 문장은 하나같이 대단하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그러므로, 꼭 기억해야 할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역작이 바로 ‘자본주의와 자유’다.
이 책이 쓰인 1962년 당시 세계 경제 정책은 사실상 케인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20년 말 대공황이 발생했을 때, 케인스의 주장에 따라 미국과 영국 정부는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케인스의 주장은 전 세계가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큰 정부’는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적인 추세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여년간 미국과 유럽의 사회와 경제는 큰 변화를 경험했다. 핵가족이 나타났고 서비스업이 제조업을 처음으로 능가했다. 인구가 증가하고 소득이 늘었다. 미국의 국가 총생산량은 1940년 2000억달러, 1950년 3000억달러, 1960년에는 5000억달러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당연히 소비도 폭등했다. 일례로 1945년 미국에는 8개의 쇼핑센터가 있었는데, 1960년에는 3840개로 늘어났다. 1950년대 인류는, 아니 미국과 유럽은, 가파른 소비 증가를 통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케인스학파는 옳았다. 아니 옳은 것처럼 보였다.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를 보낸 미국인들은 정치적, 국제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대변화를 겪는다. 1960년대 미국은 존. F. 케네디 대통령(1961~1963년 재임)의 임기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고 소련과 우주 개발 경쟁을 시작했다. 이에 더해 케네디 대통령의 후임인 린든 존슨 대통령은 대중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는 ‘그레이트 소사이어티(Great Society)’ 정책을 실행했다. 의료보험, 푸드 스탬프, 교육 사업과 같은 새로운 복지 정책들은 연방정부에 지출을 강제했다.
단기간에는 늘어난 정부 지출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1960년대 초 큰 정부 정책으로 인해 인류는 1960년대부터 그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 위협에 직면했다. 당시 어떤 정책 입안자도 높아지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이로 인해 197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경제 침체는 반대로 일어난다. 즉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을 가져오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면 경제 침체가 일어난다는 의미로, 즉 인플레이션과 경제 침체는 배타적이다(같이 일어나지 않는다). 1960년대까지 세계 경제 정책은 둘 사이의 배타적 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1970년대 이 공식이 깨졌다. 경기가 침체했는데 물가가 상승한 것. 그것도 수년간. 경기 침체가 인플레이션과 공존하는 생소한 상황. 이 상황을 1962년에 발간한 책을 통해 정확히 예측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밀턴 프리드먼이다. 바야흐로 케인스의 시대가 가고 신자유주의학파, 시카고학파의 세상이 온 것이다.
책은 내용적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서론~2장, 3~6장, 7~12장, 그리고 13장은 결론이다. 서론을 본문에 포함시켜 0장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쓰여졌다. 체계적이고 꼼꼼한, 그리고 논리적인 전개와 잘 쓰여진 글을 통해 집필에 있어 많은 고민과 노력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프리드먼은 서론에서 국가와 정부의 차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관계까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이 개념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정책적, 철학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은 화폐, 금융 그리고 재정 정책을 중심으로 프리드먼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인 7~12장은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잘못됐다고 생각되는 정책을 하나씩 짚어가며 대안을 제시한다.
프리드먼은 정치적 자유가 경제적 자유로부터 파생돼 나온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을 만들어냈다. 자유 시장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민간 기업, 가계들의 집합체인 ‘시장’은 정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는 예시를 통해 시장에는 수요와 공급에 의한 경제적 동기만이 있을 뿐, 시장이 인격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정부는 외부 효과나 독점과 같은 시장 실패를 근거로 규칙을 만들고 시장에 강제한다. 프리드먼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정부의 심판적 역할을 두 가지, 즉 재산권과 통화 제도에 한해 국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부가 이 이외 영역에 있어 시장에 간섭하는 것은 자유의 보전에 독이 되기 때문에 시장 개입에 앞서 사회적 비용과 효용을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통화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다
프리드먼은 위와 같은 견해를 금융, 무역, 재정 정책, 교육에도 일관되게 적용했다. 예를 들어 국제 금융 시장에서 정부는 고정환율제를 지양하고 환율 흐름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금보유고를 점진적으로 없애고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교육에 있어 정부가 개입하는 이유는 외부 효과를 해결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고 봤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의,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통화 정책과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논함에 있어 이 책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1962년 책이 발간될 당시의 반응은 냉랭한 무관심이었다. 당시 주류 경제학이던 케인스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악플보다 무서운 것이 무플이다. 사실상 최악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책이 발간되고 10여년 정도 지난 시점에 프리드먼이 책에서 예측한 스태그플레이션이 1970년대에 실제로 발생했다. 케인스학파가 주장한 물가 안정과 고용 증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정부의 역할은 물가 안정과 실업률이 동시에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버리자 무의미해졌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프리드먼의 세상이 도래했다.
이 책의 주장에 따라 1971년 미국은 고정환율제를 폐기했고 1973년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했다. 1976년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걸맞은 통화의 역할, 대공황 당시 연준의 역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책에는 저자의 통찰이 돋보이는 훌륭한 문구들이 마치 숨 쉬듯 여기저기 널려 있다. 프리드먼의 경제 정책에 대한 철학과 고민, 그리고 신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경제 정책의 방향성이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독자라면 한 번은 정독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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