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이 쇄락한 파투…LVMH는 왜 샀을까 [경영칼럼]
전통·경험이 미래 경쟁력 원천 될 수 있어
프랑스 디자이너 장 파투(Jean Patou)는 샤넬과 함께 여성 기성복 시장 선구자로 인정받는다. 1920년대 입체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여성 패션의 현대화를 실현하고 여성 스포츠웨어 시장을 창조하는 등 업적을 쌓았다. 향수 사업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35년 출시한 향수 조이(Joy)는 1온스에 336송이 장미와 1만600송이 재스민 꽃이 사용돼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기로 알려진다. 파투는 세기의 디자이너를 배출한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1950년대 칼 라거펠트, 1970년대 장 폴 고티에, 1980년대 크리스찬 라크르와 등이 경력을 쌓은 곳이다.
2018년 LVMH가 파투를 인수한다는 소식은 큰 놀라움을 줬다. 크리스찬 라크르와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떠난 후 파투는 향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업을 중단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LVMH는 파투의 현재가 아닌 과거, 특히 70여년에 걸쳐 축적된 브랜드 아카이브에 주목했다. 천재 디자이너 장 파투를 비롯해 역대 최고 디자이너들의 스케치와 샘플, 제품과 모델에 관한 기록이 저장된 아카이브를 미래 경쟁력의 원천으로 봤다.
브랜드 아카이브는 브랜드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과 스토리가 축적된 공간이다. 문서와 사진, 육성 자료, 전자 자료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기록의 저장소다. 전 세계적으로 100년, 200년 전통의 기업이 하나둘 생기며 역사와 전통, 유산이 브랜드 자산이자 차별화 요인으로 활용된다. 여기에 레트로 트렌드가 확산하며 과거 기록이 저장된 아카이브의 자산 가치는 더욱 커졌다. 명품 브랜드를 비롯해 유구한 역사를 지닌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2021년 창립 100주년을 맞은 구찌는 피렌체에 위치한 세티만니 궁전을 브랜드 DNA가 응집한 아카이브 공간으로 재탄생시켰고,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투어 서비스도 제공한다. 아카이브 구축을 전담하는 부서를 설립하거나 전문 아카이비스트를 고용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운동화 시장을 개척한 아디다스 아카이브에는 약 4만개 제품과 2만5000개의 자료, 2만여개의 이미지와 동영상이 보존돼 있다. 지금도 신제품 중 가장 혁신적인 10~20%를 선별해 아카이브에 보관한다. 아디다스의 상품 개발자와 마케터들은 신제품이나 캠페인 콘셉트를 발전시키는 전 과정에서 아카이브 자료를 활용한다. 특히 디자이너들은 영감을 얻기 위해 아카이브를 찾는 경우가 많다. 카니예 웨스트, 비욘세 등 과거 컬래버레이션 파트너도 작업에 앞서 아카이브를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카이브는 내외부 고객과 소통하고 브랜드 정체성을 전달하는 훌륭한 매체기도 하다. 아카이브 자료를 홈페이지, SNS, 전시회 등을 통해 공유하며 과거를 조명하고 역사와 스토리를 보여주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포니의 시간’이라는 전시회를 통해 1960년대 포니 개발과 출시 당시 설계 도안, 노트, 사진, 광고 등 희귀 자료를 공개해 화제를 낳았다. 과거의 고유한 자원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브랜드 유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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