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스스로 개척한 고려왕... 참 치열했군요

김종성 2023. 11. 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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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 <고려거란전쟁>

[김종성 기자]

KBS 사극 <고려거란전쟁>은 암살 위협에 거듭거듭 내몰린 대량원군(김동준 분)이 생명을 건진 것은 물론이고 극적으로 즉위하기까지 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삭발과 승복 차림으로 사찰에 숨어 사는 그는 천추태후(이민영 분)와 김치양(공정환 분)의 살해 시도를 피해 동굴에도 숨고 방바닥 밑에도 숨었다. 그러다 강조(이원종 분)의 쿠데타에 힘입어 위기를 벗어나고 목종(백성현 분)에 뒤이어 임금이 됐다.

용상에 앉은 드라마 속의 대량원군은 강조를 실권자로 대하기보다는 신하로 대하고자 애쓴다. 강조 덕분에 즉위하기는 했지만 허수아비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훗날 현종이라는 묘호(사당 명칭)로 기억될 제8대 고려 주상의 길을 그렇게 내딛게 됐다.
 
 K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 KBS
 

시련의 주인공

실제의 고려 현종은 갓난아이 때부터 시련을 겪은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다. 태조 왕건의 손자인 구눈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의 몸에서 태어났다. 현종의 아버지는 사후에 안종(安宗)으로 추존된 왕욱(王郁)이다. 안종 왕욱은 왕건의 또 다른 아들이자 추존왕인 대종 왕욱(王旭)과 헷갈리기 쉬운 인물이다.

<고려사> 현종 편인 현종세가(顯宗세가)에 따르면, 현종은 음력으로 임진년 7월 1일인 양력 992년 8월 1일에 태어났다. 현종의 어머니에 관한 기록인 <고려사> 헌정왕후열전은 현종을 임신한 헌정왕후가 귀가 도중에 산기를 느꼈다고 한다. 급박한 상황에서 대문 앞 버드나무 가지를 부여잡고 해산하다가 그만 숨지고 말았다고 열전은 말한다.

한편, 현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현화사의 개창을 기념해 지은 현화사 비문에 따르면, 헌졍왕후가 사망한 것은 음력으로 이듬해 3월 19일인 993년 4월 13일이다. 어느 기록이 맞든 간에 현종이 어머니 얼굴을 모른 채로 성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현종의 아버지인 안종 왕욱은 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만 1세도 안 돼 어머니를 잃은 현종이 만 4세 때 아버지마저 잃었던 것이다.

현종이 태어난 시점은 고려 건국(918)으로부터 74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 시기의 고려 왕실은 남자 후계자가 귀했다. 그래서 현종은 유력한 왕위계승자 중 하나였다.

이 점은 아들 목종에게서 후사를 얻지 못하고 외가 친족인 김치양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아들을 낳은 천추태후를 긴장시켰다. 천추태후가 현종을 '가여운 조카'가 아닌 '위험한 경쟁자'로 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고려사> 현종세가는 천추태후가 만11세 된 현종을 강제로 삭발시켜 승려로 만들었으며, 현종이 14세가 된 때부터는 수시로 암살을 시도했다고 기술한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임금이 되기 이전의 현종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과 암살을 피해 도주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실제의 현종은 그런 속에서도 왕권에 대한 의욕을 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문서상의 증거로 남겼다. 현종세가 앞부분에 인용된 두 편의 시가 그것이다.

스스로를 샘물에 비유한 시에서 그는 "조용하고 잔잔히 흐르며 바위 밑에 있다 말하지 말라/ 오래지 않은 시일에 용궁에 도달하리라"라고 읊었다. 지금은 비록 바위 밑에서 샘물처럼 조용히 흐르고 있지만 머지않아 용궁에 이르게 되리라고 자기 암시를 했던 것이다.

<고려사>에 인용된 <편년통록>은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 10대 때 서해 바닷물에 빠지자 서해용왕이 작제건을 구했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작제건이 서해용왕의 딸과 혼인했으며 여기서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이 태어났다고 <편년통록>은 말한다.

주변의 부추김

이런 신화가 있었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고려왕실은 자신들이 용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종의 시에 나오는 용궁은 고려황제의 황궁이다. 이 시기의 고려는 황제국이었다. 현종이 말하는 용궁은 제후국의 궁궐이 아니라 황제국의 궁궐이었다. 위 시는 황궁으로 돌아가 그곳 주인이 되겠다는 현종의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은 뱀이 등장하는 또 다른 시에도 동일한 의지가 묻어난다. "늘상 꽃 덤불 아래로만 다닌다고 말하지 말라/ 하루아침에 용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다"라고 읊었다. 10대 초반부터 사선을 넘나들며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삶을 사는 그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꽃 덤불 아래로 기어다니는 뱀처럼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겠다'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격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격려가 현종 자신에게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주변의 승려들도 그쪽 방향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가 한때 머물던 숭교사의 승려는 자기 꿈에 현종이 나왔다고 말해줬다. 큰 별이 절 마당에 떨어지더니 용으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바뀌더라는 것이다. 승려는 주변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했고, 이는 그들이 현종을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현종세가는 주변 사람들이 현종을 특출하게 여겼다고 말한다.

그런 부추김은 현종의 꿈을 풀이해준 술사에게서도 나타난다. 어느날 현종은 꿈에서 닭 울음과 다듬이 소리를 들었다. 술사에게 해몽을 부탁했더니, 누가 들어도 기막힌 답변이 돌아왔다.

현종세가에 따르면, 술사는 닭의 꼬끼오 소리는 한자 고귀위(高貴位)로 표기된다고 말했다. 꼬끼오 소리는 '높고 귀한 자리'로 가게 될 예고라는 풀이였다.

술사는 다음이 소리는 한자 어근당(御近當)으로 표기된다고 말했다. 임금의 통치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어(御)와 더불어 '가까울 근(近)'이 들어간 어근당이란 글자를 제시한 것이다. 술사는 "이는 즉위할 조짐입니다"라고 일러줬다.

현종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기는 했지만, 목종에게 후계자가 없으므로 현종이 위험만 극복하면 차기 주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전망이 있었기에 승려와 술사가 그에게 유리한 예언을 해주는 게 어렵지 않았으리라 볼 수 있다.

멀리 떨어진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현종을 죽이려 애썼지만, 가까이 있는 승려와 술사는 그를 보호하고 격려했다. 그에 더해, 현종 자신도 스스로를 격려하는 '문학소년'의 심성을 유지하며 시련을 이겨나갔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다가 강조의 쿠데타로 천추태후 정권이 무너지고 목종이 폐위됐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현종은 그 뒤 강감찬을 내세워 거란족 요나라의 침략을 막는 역사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귀주대첩의 지휘관인 강감찬이 후세에 훨씬 더 부각됐지만, 강감찬이 기용되기까지의 전사(前史)에는 긴긴 세월의 인고 과정을 거치는 현종의 치열한 삶이 있었다. 천추태후 정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강감찬이 역사적인 전쟁터에 투입되지 않았을 수도 있으므로, 강감찬 입장에서는 현종의 고난과 시련이 강감찬 자신의 등장을 예비하는 서막으로 해석됐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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