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완전정복]⑫NCM 강국 韓, 핵심 특허는 미국 보유
편집자주 - 지금은 배터리 시대입니다. 휴대폰·노트북·전기자동차 등 거의 모든 곳에 배터리가 있습니다. [배터리 완전정복]은 배터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 학생, 배터리 산업과 관련 기업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배터리의 기본과 생태계, 기업정보, 산업 흐름과 전망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미국 중부 일리노이주 레몬트에 있는 아르곤(Argonne) 국립 연구소. 미국 에너지부(DOE) 소속이지만 실제 운영은 시카고대학교가 맡고 있다. 아르곤 국립 연구소는 원자력 연구로 유명하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핵폭탄을 제조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비밀리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쟁이 끝난 1946년 미 정부는 몇몇 곳을 국립으로 전환했는데 아르곤 국립 연구소도 그중 하나였다.
아르곤 국립 연구소는 원자력으로만 잘 알려진 것이 아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연구도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아르곤은 리튬이온, 리튬공기, 리튬황, 나트륨이온, 플로우 배터리 등의 양극 및 음극에 관한 125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강점으로 가진 NCM(니켈 ·코발트·망간) 양극재에 대한 원천 특허도 이곳이 갖고 있다.
NCM 원천 특허 장악한 美 아르곤·3M1991년 소니가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를 상용화한 이후 아르곤국립연구소의 젊은 연구원들은 리튬이온배터리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연구에 몰두했다. 연구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굿 이너프 교수의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던 마이클 태커레이(Michael Thackeray)가 이끌었다.
이들은 굿이너프 교수가 개발한 리튬코발트산화물(LCO) 양극재의 개선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LCO를 양극 물질로 이용하는 경우 이론상 단위 중량당 용량은 274밀리암페어시(mAh/g)이지만 리튬 이온의 탈리 현상이 발생하면서 실제로는 그 절반인 약 150mAh/g의 성능만 나타난다. LCO 양극재 배터리는 스마트폰 등 소형 전자기기용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중대형 배터리로 사용하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이에 따라 많은 과학자가 LCO 양극재의 용량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있었다.
태커레이와 그 동료들은 LCO에서 코발트(Co)의 함량을 줄이는 대신 망간산화물(Li2MnO3)과 니켈(Ni)을 추가하면 리튬이온배터리의 용량이 안정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NCM(서구에서는 NMC라고 부르기도 함) 양극재다. NCM은 값이 비싼 코발트의 비중을 줄였기 때문에 제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태커레이는 크리스토퍼 존슨(Christopher Johnson), 칼릴 아민(Kalil Amine) 등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2000년 6월 미국에서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 특허 제목은 리튬 전지를 위한 리튬금속산화전극(Lithium metal oxide electrodes for lithium cells and batteries, U.S. Patent 6,677,082.)이다.
이 특허의 출원자 명단에는 위 3명 이외에도 김재국(Jaekook Kim) 교수의 이름도 보인다. 김 교수는 2004년부터 전남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2년도엔 한국전지학회장을 지냈다. 김 교수는 텍사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국립아르곤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이 연구를 함께 했다.
이 특허를 출원할 때만 해도 이들은 자신들의 특허가 전 세계 이차전지와 전기차 산업을 바꾸어놓을 줄 몰랐을 것이다. 현재 가격이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점유율이 많이 확대되긴 했지만, 전기차 시장의 절대다수는 NCM 양극재 배터리가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EV볼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NCM 양극재를 쓰는 리튬이온전지의 점유율은 61.3%에 달했다.
2000년대 후반 배터리 산업이 성장하고 NMC 양극재 기술이 널리 쓰이자 아르곤연구소는 적극적으로 특허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2009년 독일 화학업체인 바스프(BASF)와 일본의 토다(Toda)공업이 첫 번째로 아르곤연구소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그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당시 LG화학은 2007년 세계 최초로 NCM523(니켈50%, 코발트20% ,망간 30%의 비율) 배터리를 양산하고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리튬이온배터리 공급 협상을 진행하던 때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르곤연구소 측은 LG화학과 접촉했다. 미국에 NCM 기반의 배터리를 공급해야 했던 LG화학은 2010년 아르곤연구소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게 된다. 이후 GM도 아르곤과 NCM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한편, 아르곤연구소와 NCM 특허 라이선스를 맺은 토다 공업은 2011년 삼성정밀화학과 합작회사인 에스티엠(STM)을 설립해 이차전지 양극재 개발에 나섰다. 초기 지분 비율은 50대 50이었으나 이후 삼성정밀화학이 지분을 58%까지 확대했다. 에스티엠은 울산공장에서 양극재를 생산해 삼성SDI에 납품했다. 2015년 삼성그룹이 석유화학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삼성정밀화학의 전지 소재 사업부와 STM은 삼성SDI로 이관됐다. STM은 현재 삼성SDI의 100% 자회사로 남아있다.
에코프로는 2004년 제일모직이 주도하는 정부 프로젝트 '초고용량 리튬이차전지 개발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2006년 제일모직이 이차전지 소재 사업을 정리하자 관련 기술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양극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SDI는 2014년 제일모직을 인수하며 소재 사업을 강화했다. 삼성SDI는 2020년 에코프로비엠과 양극재 합작법인 에코프로이엠을 설립하는 등 양측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NCM 양극재 원천 특허를 보유한 또 다른 곳은 글로벌 화학기업인 3M이다. 3M은 2000년 캐나다 달하우지(Dalhousie) 대학교의 제프 단(Jeff Dahn) 교수와 협업해 NCM 특허를 등록했다. 아르곤연구소가 특허를 등록한 지 3개월 만이었다. 3M의 특허는 NCM111(니켈 코발트망간의 비율이 1:1:1) 조성에 관한 것이다.
아르곤국립연구소와 달리 사기업이었던 3M은 이 특허가 얼마나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3M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 등에도 관련 특허 등록을 마쳤다. 3M은 수년에 걸쳐 소니, 마쓰시타, 산요를 상대로 특허 침해를 주장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한국의 양극재 기업들도 안정적으로 글로벌 사업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3M의 특허권을 확보해야 했다. 엘앤에프(L&F)와 에코프로가 각각 2012년과 2013년에, LG화학은 2015년 3M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2014년 미국 특허청(USPTO)은 아르곤연구소와 3M의 NCM 특허가 각각 신규성이 있다고 확인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이 커지자 특허 전쟁도 불붙었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소재 기업인 유미코어는 2010년 3M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특허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바스프와 아르곤연구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두 곳은 공동으로 2015년 3월 유미코어가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걸었다.
아르곤연구소의 특허는 NCM을 별개의 결정질 산화물로 구성된 2개의 상(Phase) 재료로 설명하고 있다. 아르곤은 유미코어의 양극재가 자신들의 특허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미코어는 자신들의 NCM은 3M의 특허로 보호되는 1상의 고체 용액이라고 반박했다. 2016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바스프와 아르곤연구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결국 유미코어는 아르곤연구소로부터 특허권을 구입해야 했다.
이후 유미코어는 2017년 3M으로부터 NCM에 대한 모든 특허를 인수하며 양극재 사업을 확장했다. 한때 으르렁거렸던 바스프와 유미코어는 현재 특허 동맹 관계다. 양사는 2021년 5월 배터리 양극재와 관련해 서로 보유하고 있는 특허를 공동 사용할 수 있는 비독점 상호 특허 사용(크로스 라이선스)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한국을 비롯해 유럽, 미국, 중국, 일본에서 출원된 100개 이상의 특허권에 적용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2023년 11월 SK온은 바스프와 배터리 분야에서 포괄적인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는 양극재 사용에 관한 내용도 포함됐다. SK온은 향후 바스프로부터 양극재를 공급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韓 기업들, 최근까지도 하이니켈 특허 공격받아국내 NCM 양극재 기업들은 초기에 해외 기업의 기술에 의존해야 했지만 차츰 자체 역량을 갖춰나갔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니켈의 비중을 확대해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각각 2014년과 2017년에 NCM622(니켈 60%, 코발트 20%, 망간 20%) 양극재를 상용화했다. 에코프로의 양극재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은 2018년 SK이노베이션과 함께 세계 최초로 전기차용 NCM811(니켈 80%, 코발트 10% ,망간 10%) 배터리를 상용화했다.
국내 NCM811 양극재에는 한양대학교 선양국 교수의 '농도 구배(concentration gradient)' 기술이 적용됐다. 농도 구배는 농도를 다르게 한다는 뜻으로 양극재의 중심에는 니켈 비중을 높게 하고 바깥에는 망간과 코발트의 비중을 높게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니켈의 함량을 높일 때 나타나는 양극재의 갈라짐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에코프로는 2009년 한양대로부터 이 기술의 이전 및 독점적 통상 사업 실시권을 획득했다. 에코프로는 이 기술의 원천 개발자인 한양대 선양국 교수팀,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와 함께 '2012 미국 R&D 100 어워드'를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 하이니켈 양극재에도 여전히 해외 특허를 피해 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2~3년간 한국 양극재 기업들은 미국 CAMX와 잇달아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된다. 2020년 삼성SDI에 이어 2022년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올해 5월에는 엘앤에프가 각각 CAMX의 'GEMX 플랫폼'에 대한 특허 계약을 체결했다. 이 기술은 하이 니켈 양극재에 대해 적은 비용으로 높은 성능과 안정성을 제공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벨기에 유미코어도 지난 5월 CAMX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젠 차세대 배터리 특허 전쟁NCM 배터리와 관련해 다수의 해외 기업들로부터 공격받아야 했던 국내 기업들은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R&D)에 집중하며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고 있다. 리튬전고체배터리, 리튬금속배터리, 리튬황배터리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특허전략개발원이 11개의 이차전지 카테고리에서 2008년 출원돼 2021년 6월까지 공개된 11만4984건(한국·미국·일본·유럽·중국 5개국 및 세계지적재산권기구)의 특허를 분석한 결과 LG화학은 일본 도요타자동차(4366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LG화학은 리튬전고체전지 → 리튬황전지 → 리튬금속전지 → 리튬이온전지 순의 순으로 특허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리튬전고체 및 금속공기전지에서 다수의 특허를 확보하고 있었다. 삼성전자와 별개로 삼성SDI는 리튬이온전지 → 리튬금속전지 → 리튬전고체전지 → 리튬황전지의 순서로 특허를 보유했다.
이차전지와 관련해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곳은 일본 도요타 자동차로 리튬전고체전지 → 리튬이온전지 → 금속공기전지 → 리튬황전지 순으로 많은 특허를 갖고 있었다. 중국 CATL과 BYD의 특허는 리튬이온전지에 집중됐다. 현대자동차도 리튬전고체전지 및 리튬황전지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기할 만한 점은 미국 등 서구권이 강세였던 초기와 달리 현재 이차전지 특허의 대부분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 세계 이차전지 산업이 앞으로도 한·중·일 3국의 경쟁 구도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lectronic Products, '3M and L&F complete nickel, manganese and cobalt patent license agreement', 2012.1.5
ARGONNE NATIONAL LABORATORY, 'Argonne battery technology confirmed by U.S. Patent Office', 2014.1.29
Quartz, 'Two industrial titans are duking it out over a technology that could make electric cars mainstream', 2015.3.30
Chemical & Engineering News, 'BASF Sues Umicore Over Battery Chemistry', 2015.4.10
Geen Car Congress, '3M and LG Chem enter into NMC patent license agreements; cathode materials for Li-ion batteries', 2015.8.4
ITCBlog, BASF Wins Big in Battery Battle, 2016.12.19
Umicore newsroom, 'Umicore acquires NMC battery material patents from 3M', 2017.1.10
ARGONNE NATIONAL LABORATORY, 'Argonne’s debt to 2019 Nobel Prize for lithium-ion battery', 2019.12.9
Steve Levine, 'The Powerhouse:Inside the Invention of a Battery to Save the World'
머니투데이, '에코프로, 전기차용 양극소재 '미국 R&D 100 어워드' 수상', 2012.11.6
전자신문, [대한민국 과학자]김재국 전남대 교수 “AI 이오닉스 소재 개발 플랫폼 구축”, 2019.3.3
전기신문, ‘리튬이온배터리’ 韓?中 격차‘양극재 특허기술’이 갈랐다, 2020.9.16
오토저널 2022년 3월호 '저탄소 모빌리티 분야 특허기반 산업혁신 전략?전기차 배터리'
바스프 홈페이지
3M 홈페이지
유미코어 홈페이지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좋아해서 욕망 억제 못했다"…10대 성폭행한 교장 발언에 日 공분 - 아시아경제
- '다이소가 아니다'…급부상한 '화장품 맛집', 3만개 팔린 뷰티템은? - 아시아경제
- "화끈한 2차 계엄 부탁해요" 현수막 내건 교회, 내란죄로 고발당해 - 아시아경제
- "새벽에 전여친 생각나" 이런 사람 많다더니…'카카오톡'이 공개한 검색어 1위 - 아시아경제
- "ADHD 약으로 버틴다" 연봉 2.9억 위기의 은행원들…탐욕 판치는 월가 - 아시아경제
- 이젠 어묵 국물도 따로 돈 받네…"1컵 당 100원·포장은 500원" - 아시아경제
- "1인분 손님 1000원 더 내라" 식당 안내문에 갑론을박 - 아시아경제
- 노상원 점집서 "군 배치 계획 메모" 수첩 확보…계엄 당일에도 2차 롯데리아 회동 - 아시아경제
- "배불리 먹고 후식까지 한번에 가능"…다시 전성기 맞은 뷔페·무한리필 - 아시아경제
- "꿈에서 가족들이 한복입고 축하해줘"…2억 당첨자의 사연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