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팬덤 정체…"도토리 그려주세요" 이런 요구도 나왔다

김정민 2023. 11. 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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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4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지지자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출마설이 커지면서, 그를 향한 팬덤도 덩달아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 24일 한 장관이 울산의 울산과학기술원(UNIST)을 방문했을 땐 한 장관을 만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한 장관은 이 자리에서 사실상 1시간 가량의 ‘팬미팅’을 진행했다. 한 장관을 만난 이들은 “사인해달라” “좋아한다”는 말을 쏟아냈다.

한 장관의 팬덤은 디시인사이드의 ‘한동훈 갤러리’, 네이버 팬카페 ‘위드후니’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출근 사진에 “패션 화보 같다”며 환호하거나, 영상을 ‘움짤’로 만들어 공유하는 식이다. 커뮤니티엔 ‘좋아요’와 ‘댓글’ 공세를 부탁하는 기사·유튜브도 수시로 올라오고, 패션 잡지나 카페 CF에 한 장관을 합성한 패러디물이 제작되기도 한다.

한동훈 지지자 오픈채팅방에서 연필 정보가 공유되는 모습(왼쪽), 한동훈 팬카페에서 1일1끼 수산물 먹기 캠페인이 열렸던 모습. 사진 독자 제공, 팬카페 캡처

한 장관이 애용하는 스카프나 양복점, 연필 브랜드 역시 팬들 사이에선 ‘한동훈 아이템’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장관이 벨트를 구매한 서울 강남의 한 양복점 사장 서모(41)씨는 “요즘 한 장관 벨트를 찾는 고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 장관의 일거수 일투족을 공유한다. 최근엔 한 장관의 방문 지역을 지도에 표시한 ‘동훈여지도’가 팬덤 내에서 화제가 됐다. 공개 일정 날에는 직접 ‘오프(오프라인 행사)’를 뛰는 팬들이 적잖다. 특히 한 장관이 지난 17일 대구 방문 때 기차표를 취소하고 팬들의 악수·셀카 요청을 받아준 뒤로 인파는 더 몰리고 있다.

지난 17일 대구 방문 당시 “도토리를 그려달라”는 팬에게 “그냥 먹는 도토리 말예요?”라며 그림을 그려주는 한동훈 장관. 사진 디시인사이드 캡처

당시 대구에서 만난 직장인 송모(31)씨는 “한 장관이 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모비딕』도 따라 읽었다”며 “더 유명해지면 사진 찍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도토리를 그려달라”며 사인을 부탁해 성공한 팬도 있었다. 도토리는 한 장관 팬덤 사이에서 통용되는 ‘대통령(ㄷㅌㄹ)’의 은어다. 한 장관은 당시 의아하다는 듯 “그냥 먹는 도토리를 그려달라는 거냐”고 해당 팬에게 되물었다.

최근 들어서는 외연 확장을 위해 애쓰는 흔적도 나타난다. 1만3000여명이 가입한 네이버 팬카페 ‘위드후니’엔 2020년 8월부터 한 장관의 생일 4월 9일을 기념해 4만9000원이 모일 때마다 취약계층에 기부하는 문화가 있다. 현재까지 누적 기부액은 800만여 원이다. 지난 15일 아내 진은정 변호사가 공개된 뒤로는 한 장관과 진 변호사를 함께 응원하는 팬카페도 생겼다.

지난 17일 대구에서 만난 40대 여성 A씨는 “책을 좋아한다는 한 장관에게 직접 만든 낙엽 책갈피를 주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반(反)민주당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도 최근 한 장관 팬덤 내에서 나타나는 흐름이다. 한 장관과 공방을 주고받은 송영길 전 의원, 민형배·유정주·김용민·최강욱·서영교 의원 등을 비판하고, 한 장관의 발언을 “속시원하다”며 재조명하는 식이다. 이런 성향은 현 정부 정책 지지로도 연결되고 있다. 팬카페 ‘위드후니’의 대문 문구는 “검찰 수사권 제자리로 돌려 놔” “마약·도박·조폭 꺼져”다. 이 팬카페에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정쟁이 한창이었던 지난 7~8월엔 ‘1일 1끼 수산물 먹기 캠페인’도 이뤄졌다.

한 장관 팬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극성 지지자들의 입김·이익만 반영되는 ‘팬덤 정치’의 폐해가 여당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소수의 열성 지지자가 전체 국민 정서를 대표한다고 볼 순 없다”며 “지금의 팬덤을 만든 한 장관의 언행이 훨씬 불편하고 즉흥적인 상황이 많을 정치 영역에 들어오고도 독이 되지 않을지는 새로운 문제”라고 분석했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아직까지는 박사모·문파·개딸 등 기존 정치인 팬덤만큼 뚜렷한 이념적 맹목성·배타성이 관찰되지 않는다”면서도 “향후 극단적인 형태로 변질됐을 땐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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