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웬 소파·전자레인지? 시진핑의 '혁명', 8년 뒤 보니
" 농촌이 발전해야 하고 '화장실 혁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
지난 2015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린성 옌볜 조선족자치주를 찾은 뒤 이렇게 말했다. 시 주석의 발언 이후 중국은 전국에서 3년 동안 총 200억 위안(약 3조 6400억원)을 쏟아부었다. 재래식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개조하거나 신축하기 위해서다.
당시 중국 농촌에선 여전히 초가집 안에 구덩이를 판 형태의 재래식 화장실을 주로 썼다. 화장실에 쌓인 배설물을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유기 비료로 쓰는 친환경 방식이지만 비위생적이고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2017년까지 불과 2년 만에 화장실 6만 8000여 개가 '혁명'으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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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외친 '화장실개혁'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시진핑은 중국이 더 나은 화장실을 갖기 원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8년간 이뤄진 중국의 ‘화장실 혁명’을 집중 조명했다. 2017년 13만 개 수준이던 중국 내 공중화장실은 지난해 20만 개로 증가했다.
수직적이고 경직된 중국 공무원 사회는 윗선에선 내려온 ‘숫자’를 맞추는 것을 중시한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선 깨지기 쉬운 플라스틱 파이프를 사용해 지은 화장실에도 ‘문제없음’ 도장이 찍혔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각 지역의 기후와 지형을 고려한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다. 매년 겨울마다 혹독한 추위를 겪는 북쪽 지역에서도 야외에 수세식 화장실을 지었다.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얼어 ‘냉동고 화장실’이란 비웃음을 샀다.
신식 화장실에 적응하지 못한 노년층의 생활습관도 반영하지 않았다. 문도 없고 바닥이 뻥 뚫린 재래식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는 옛날 방식이 몸에 밴 노년층이 외면하면서 신식 화장실은 돈 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폐가에 화장실을 설치한 곳도 있었다. 관영 언론인 신화통신마저 “새롭게 개보수된 화장실 8만 개 중 5만 개가 방치됐다. 형식주의의 표본”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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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형식주의 드러난 '5성급 화장실'
이른바 ‘5성급 화장실’도 중국식 보여주기 행정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시 주석의 뜻을 받들려는 공무원들의 지나친 열의가 독이 된 거다. 곳곳에 소파, 와이파이, 전자레인지까지 구비한 초호화 화장실이 생겨났다.
장쑤성의 한 화장실은 건설비용으로만 200만 위안(약 3억 6400만원)을 썼다. 여론이 악화하자 담당부처인 국가여유국(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이 나섰다. “사치와 과시의 상징인 5성급 화장실 건설을 당장 중단하라”며 “실용성과 내구성을 중시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천문학적인 빚더미를 이고 있는 지방정부에 관련 비용을 전가했다는 점도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지역도 예외 없이 화장실 혁명에 동참해야 하니, 중앙정부나 당엔 화장실 혁명 예산이라고 보고한 뒤 다른 곳에 쓰는 사례도 나온다.
지난 7월 윈난성이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9~2022년 '화장실 혁명' 예산 중 456만 위안(약 8억 3000만원) 정도가 허위 기재됐다. 농민 32만 명에게 가야 하는 보조금 2억 1200만 위안(약 381억 원)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걸로도 드러났다. 이월 잉여금 878만 위안(약 15억 7900만원)도 회수되지 않았다. 이노코미스트는 "재정적 압박 때문에 '화장실혁명' 예산을 다른 곳에 사용했다"며 "주로 교육과 의료, 주택 지원에 쓰였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가 올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53%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도성 기자 lee.dos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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