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클래식 ‘호두까기 인형’이 돌아왔다
국내에선 1974년 첫 전막 공연
국립발레단 등 12월 무대 경쟁
한국 정서 고려한 다양한 안무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일 때면 찾아오는 공연이 있다. 바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다. 올해도 11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전국 공연장에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등 여러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이 공연된다.
국립발레단은 11월 30일~12월 2일 대전을 시작으로 12월 4~5일 경기도 광주, 12월 9~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호두까기 인형’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1월 24~25일 천안에서 시작해 12월 1~2일 진주, 12월 8~10일 고양, 12월 21~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다. 이외에 와이즈발레단, M발레단, 코리아발레스타스 등이 연말까지 서울의 여러 공연장을 찾는다. 올해는 특히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최소빈발레단과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가 경기도 동두천, 포천, 평택, 연천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이는 것이 눈에 띈다.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 많은 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독일 작가 E.T.A 호프만의 판타지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을 원작으로 한 ‘호두까기 인형’의 배경이 크리스마스인 만큼 연말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 드로셀마이어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은 소녀 클라라(소설 속 이름은 마리)가 꿈속에서 왕자로 변한 인형과 함께 과자왕국을 여행하는 이야기는 온 가족이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무엇보다 ‘호두까기 인형’이 각 발레단에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레퍼토리인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처음부터 이렇게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90년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제정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은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다시 의뢰했다. 하지만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티파는 아이들이 많이 출연하는 데다 여주인공이 어린 소녀인 소설 원작이 발레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클래식 발레에서 중요한 남녀 주인공의 이인무를 출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대본을 새로 쓰는 조건으로 안무를 수락한 프티파는 과자왕국 여왕인 사탕요정을 새롭게 만들었다. 클라라를 대신해 화려한 춤을 추는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차이콥스키 역시 깐깐한 프티파와의 작업을 내켜 하지 않다가 황실극장이 오페라 ‘이올란타’도 함께 위촉하면서 작곡을 수락했다. 차이콥스키의 경우 사랑하는 여동생 사샤의 부음을 듣고 ‘호두까기 인형’의 악상을 떠올렸다. 사샤를 사탕요정, 조카 남매를 클라라와 프리츠, 자신을 드로셀마이어로 대입해 작곡한 것이다.
그런데, 차이콥스키의 작곡이 끝난 뒤 개막을 3개월 앞두고 프티파가 안무 스케치만 끝낸 채 병석에 눕고 말았다. 프티파의 구성을 토대로 조수 레프 이바노프가 안무를 완성했지만 1892년 ‘호두까기 인형’ 초연은 “발레의 수준의 떨어뜨렸다”는 말을 들을 만큼 실패했다. 주요 원인으로 마임 위주의 1막과 춤 위주의 2막 사이의 불균형이 지적됐다. 당시 아이들이 많이 출연한 것도 발레 팬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비록 초연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호두까기 인형’은 1919년 구소련 볼쇼이 발레단의 알렉산드르 고르스키를 시작으로 후대 안무가들의 손에서 잇따라 재안무 됐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안무에 반영됐다. 클라라가 꿈속에서 성인이 되는 한편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 인형과 직접 춤추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인 이야기에 일관성이 생기고, 클라라와 호두까기 인형의 관계도 로맨틱해졌다. 또한, 1막 초반에 드로셀마이어가 보여주는 인형극은 이후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의 싸움, 클라라와 왕자의 과자왕국 여행 등 꿈을 반영한다.
거장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이끄는 뉴욕시티발레단은 ‘호두까기 인형’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주역이다. 발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1954년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 아이들을 대거 출연시킨 것이 기대 이상의 반응을 끌어낸 것이다. 이어 미국 CBS 방송이 1958년 뉴욕시티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크리스마스에 맞춰 방송한 것은 대중화의 토대가 됐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호두까기 인형’이 공연됐을까. 첫 전막 공연은 1974년 11월 명동 국립극장에서 수도여자사범대(지금의 세종대) 무용과가 이틀간 4회 공연한 것이다. 당시 제작 여건상 작품 규모를 축소했지만, 기성 무용계도 못 하던 전막 공연을 학생들이 해내 높은 평가를 받았다.
4년 뒤인 1977년 12월 국립발레단이 일본 도쿄시티발레단의 안무가 아리마 고로를 초빙해 ‘호두까기 인형’ 전막을 5일간 5회 공연했다. 흥미로운 점은 1977년 국립발레단의 전막 초연 이후 ‘호두까기 인형’이 12월에 공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립발레단은 이 작품을 어린이날이 있는 5월에 격년 꼴로 무대에 올렸다. 그러다가 다시 12월에 공연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과 관련 있다. 두 발레단은 1986년 12월 나란히 ‘호두까기 인형’을 무대에 올린 후 매년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이 12월의 필수 레퍼토리로 자리잡자 1990년대 말부터 지역 공연장에서도 두 발레단을 초청해 ‘호두까기 인형’을 올리기 시작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구소련 키로프 발레단(지금의 마린스키 발레단) 예술감독 출신 올레그 비노그라프가 1999년 안무한 버전을 토대로 유병헌 현 예술감독이 한국 관객들의 정서를 고려해 안무를 일부 수정한 것이다. 이에 비해 국립발레단의 현재 ‘호두까기 인형’은 구소련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낸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을 2000년부터 선보이고 있다. 여주인공 클라라 역을 1막에선 어린이가, 2막에선 성인이 맡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비노그라프 버전과 달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은 어른 무용수가 1막과 2막을 전부 소화한다. 그리고 그리고로비치 버전은 호두까기 인형을 실제 나무 인형 대신 어린이가 직접 연기하도록 한다.
이외에 두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여러 장면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이 정교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매력이라면 국립발레단은 춤이 좀 더 역동적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설립된 국내 중소 규모 민간 발레단은 각각 한국 안무가들이 ‘호두까기 인형’의 기존 흐름을 유지한 가운데 조금씩 자신의 개성을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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