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유튜브라는 ‘멋진 신세계’

조효석 2023. 11. 25.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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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반년 넘게 일한 지금 부서에선 기사 대신 유튜브 영상 촬영대본을 쓴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 이 세계의 논리와 작동 양식이 낯설 때가 잦다. 도대체 그런 콘텐츠가 왜 만들어지는지, 왜 유행을 타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아서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업계 관계자와 차를 마시며 이런 고민을 털어놓다가 들은 한마디에 문득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다 돈 때문에 하는 거죠.”

겉보기에는 뭐든 가능할 듯한 유튜브 세상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영상으로 인기를 끄는 예는 이제 드물다. 기존에 오랫동안 이름을 날린 연예인이나 스타, 그러니까 유튜브 바깥에서 이미 유명했던 ‘셀럽’이거나 막 유튜브 붐이 일던 초창기에 이미 유명세를 쌓은 유튜버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기란 갈수록 어렵다는 얘기다.

콘텐츠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인기 많은 검증된 포맷을 자가복제하거나 따라 하는 정도는 양반이고 외국산 콘텐츠를 ‘불펌’(불법으로 퍼오기)하는 사례도 넘친다. 눈길을 조금이라도 더 끌려니 자극적 제목과 이미지를 쓸 수밖에 없다. 가짜 정보나 심한 욕설, 선정적 장면을 담은 영상도 한둘이 아니지만, 알고리즘에 의한 감시와 신고에만 의존한 유튜브 이하 플랫폼은 걸러내는 시도를 무력화하거나 외려 생사람만 잡아낸다. 그게 결국 플랫폼에도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오직 ‘관심’이다. 모든 콘텐츠의 목표는 담아내는 행위 그 자체보다 그것이 얻어낼 관심에만 집중된다. 내용의 질이나 방법은 아무려면 상관없다. 관심을 끈다면 뭐든 하지만,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 역시 제한된다. 이 공간에서 어떤 걸 사람들이 좋아할지 찾기 위해 이것저것 새로운 걸 시도하던 시기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미 나온 정답지 안에서 조금이라도 점수를 높이려 허우적댈 뿐이다.

10대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유튜버라는 소식이 더 새롭지 않듯이 새로운 체제에 뛰어드는 이들은 누구나 자신이 성공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들뜬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런 사례는 갈수록 줄어간다. 유튜브 세상의 부는 바깥세상보다도 더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오히려 바깥의 상징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갈수록 더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 새로움도, 기회도 말라가는 공간인 셈이다.

이 세계에선 인간의 의지가 아닌, 의지로 위장한 알고리즘에 따라 앞으로 접할 세상이 정해지고 관심이 또 다른 관심을 끌어온다. 그렇기에 우리가 행위 자체에 부여해온 직업적 사명이나 소명, 즉 진정성은 의미를 잃는다. ‘다 돈 때문에 한다’는 말은, 이 공간에서 온전히 진정성을 지닌 행위는 사실 없다는 뜻이기에 의미심장하다. 관심을 받지 못한 행위는 진정성 여부와 상관없이 곧 돈이 되지 않는 행위, 즉 의미 없는 행위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관심을 끌려는 행위, 그러니까 ‘렉카질’은 본질적으로 모든 유튜버에 해당한다. 사람들도 이 점을 알기에 화면 속 유튜버가 어떤 행동을 하든 조회수에 눈이 멀었다며 손가락질하거나 진실한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유튜브 공간에서 반복되는 뒷광고 논란, 가짜뉴스 공방 등은 그 단면이다. ‘진짜’를 기대할 수 없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진정성을 희구하고 그러면서도 더한 자극을 찾아 헤매는 게 이 새로운 시대 우리의 모습이다.

새 체제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혁신을 기대한다. 유튜브 세상이 도래한 초기에 사람들은 방송이 독점하던 영상 권력의 민주화,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결과는 앞서 쓴 대로다. 사실 가까운 과거에도 비슷한 모습은 반복됐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기지개를 켜던 이번 세기 초가 그랬다. 당시만 해도 새 공론장과 정보의 민주화를 향한 기대를 모두가 늘어놨지만 뒤이어 나타난 세상은 그런 기대보다 일그러졌다는 걸 이제 다들 안다.

우리가 정체를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이 ‘멋진 신세계’는 이전까지의 어떤 세상보다 빠른 속도로 일상을 지배하는 현실이 됐다. 이곳을 내버려둔다는 건 그나마 남은 혁신의 가능성마저 없애는 일이다. 이 새로운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할 수 없다면 남은 선택지는 이곳을 그나마 어떻게 더 나은 곳으로 만들지 고민하는 것일 테다. 그것이 정치 권력이든, 공동체의 힘이든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말이다.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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