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얼얼함…너희들은 누구냐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3. 11.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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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가 뒤흔드는 매운맛 전쟁

대한민국에 ‘매운맛’ 열풍이 뜨겁다. 단순히 혀가 아리는 정도의 매운 음식을 찾는 게 아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극한의 매운맛을 추구하거나,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이국적인 매운맛’을 찾아 나선다. 매운맛 돌풍에 유통업계는 적극 대응한다. 라면, 과자, 햄버거, 치킨, 만두 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맵기를 강조한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통사들은 경쟁적으로 ‘매운맛’ 제품을 내놓는다. 사진 왼쪽부터 농심 신라면 더 레드, 맘스터치 불불불불싸이버거, 오리온 매운 과자 3종. (각 사 제공)
신라면이 촉발시킨 ‘붉은 전쟁’

라면도 과자도 햄버거도 맵게

올해 매운맛 유행을 촉발시킨 곳은 농심이다. 올해 8월 한정판 제품으로 ‘신라면 더 레드’를 선보였다. 스코빌지수(매운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 7500으로, 기존 신라면(3400)의 2배가 넘는 제품이다. 신라면 더 레드는 판매 시작 80일 만에 1500만봉 이상 팔려 나갔다. 농심이 올해 내놓은 라면 신제품 중 가장 우수한 성과다. 인기에 힘입어 농심은 11월 20일 ‘신라면 더 레드’를 정식 제품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라면 맞수 오뚜기는 10월 ‘컵누들 마라탕’을 공개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마라탕을 컵누들에 접목한 제품이다. 사골 국물 베이스에 얼얼한 마라와 고소한 땅콩, 참깨를 더했다. 마라탕 전문점 1.5단계 정도 맵기를 재현했다는 게 오뚜기 측 설명이다. 판매 시작 3주 만에 100만개가 팔려 나갔다.

식품업계 라이벌 롯데웰푸드와 해태제과는 나란히 ‘매운 만두’ 제품을 공개하며 경쟁에 들어갔다. 롯데웰푸드는 11월 12일 냉동 만두 간편식 ‘쉐푸드 크레이지 불만두’를 내놨다. 중국 쓰촨 지방 고추를 사용해 타오르는 매운맛을 구현한 만두다. 스코빌지수가 2만3000에 달하는 특제 소스가 들어갔다. 이에 맞서 해태제과는 ‘열불날 만두하지’라는 신제품을 내놓으며 맞선다. 해태의 스테디셀러 제품인 ‘고향만두’ 브랜드 역사상 가장 매운 만두다. 청양고추보다 10배 더 매운 ‘베트남 고추’와 매운 볶음라면에 쓰이는 ‘열불 소스’를 활용해 칼칼함을 극대화했다.

외식 트렌드에 민감한 프랜차이즈업계도 매운맛 전쟁에 적극이다. 맘스터치, 맥도날드, 굽네치킨, 써브웨이 등이 연달아 관련 제품을 내놓는다.

맘스터치는 11월 9일부터 기존 ‘불싸이버거’보다 4배 더 매운 ‘불불불불싸이버거’ 판매를 시작했다. 스코빌지수가 4941에 달하는 제품이다.

굽네치킨은 기존 ‘고추바사삭 치킨’보다 맵기를 올린 한정판 메뉴 ‘마라 고추바사삭’으로 화제를 모았다. 판매 시작 3일 만에 8만마리가 팔렸다.

맥도날드와 써브웨이는 ‘극한의 매운맛’보다는 색다른 매운맛으로 승부를 띄웠다. 맥도날드는 11월 2일 ‘맥크리스피 스리라차 마요’ ‘맥스파이시 스리라차 마요’ 제품을 내놨다. 한국인에게 생소한 ‘스리라차 소스’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샌드위치 전문점 써브웨이는 9월 특제 소스를 활용한 ‘스파이시 샌드위치 시리즈’를 선보였다. 판매 시작 10주 동안 도합 판매량이 100만개를 넘어섰다. 한정판 메뉴로 시작했지만, 찾는 손길이 많아지면서 정식 메뉴로 전환했다.

왜 ‘매운맛’에 열광할까

힘든 현실, SNS 영향

매운맛 열풍이 지속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두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첫째, 경기 불황에 따른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이 고물가, 경기 침체에 따른 힘든 현실을 매운맛을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잊고자 한다는 이야기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떡볶이, 짬뽕, 닭발 등 매운맛 음식이 인기를 끈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많아 극단적인 맛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잖다”며 “매운맛을 먹고 땀을 흘리며 순간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매운 음식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둘째, 젊은 층에 퍼진 SNS 챌린지 문화가 ‘매운맛’ 돌풍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매운 음식을 먹고 SNS에 인증하는 행위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 실제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는 매운맛 챌린지 게시물이 넘친다.

올해 틱톡에서 가장 인기가 뜨거웠던 ‘매운맛 챌린지’ 영상은 조회 수 1억7600만건을 넘겼다. 전미영 서울대 트렌드센터 연구위원은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마치 요즘 유행하는 MBTI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는 것 같다”며 “자신이 매운 것을 잘 먹는지, 매운 음식에 약한 일명 ‘맵찔이’인지 표현하는 하나의 놀이가 된 셈”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지나친 매운맛 중독은 ‘건강에 해롭다’는 지적도 거세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매운맛에 중독되면 위장을 계속 자극해 위염이나 역류성 식도염 등이 생길 수 있다”며 “최근 10~20년간 국민이 섭취하는 스코빌지수가 높아지고 있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극한의 매운맛 제품 직접 먹어보니
신라면 더 레드 순해, 불불불불싸이버거도 괜찮네
매운맛 제품은 얼마나 매울까. 광고처럼 먹으면 정말 눈물이 나는 정도일까. 정말 매운지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신라면 더 레드’와 맘스터치 ‘불불불불싸이버거’를 직접 먹어봤다.

먼저 최근에 나온 ‘불불불불싸이버거’를 먹었다. 매운맛 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지수는 4941로 대표적인 매운 라면인 불닭볶음면(4404)보다 높다.

매장 직원에게 정말 맵냐고 물어보니 “소스만 찍어 먹어봤는데 엄청 맵다”고 겁을 줬다. 포장지를 열자마자 매운 향이 코를 찔렀다. 생김새는 더 강렬하다. 새빨간 ‘소스’가 통닭다리살 패티와 빵, 야채 곳곳에 묻어 있다. 한입 베어 물자 소스의 알싸하고 화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어느새 정수리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콜라를 마셔도 진정되지 않는 혀의 얼얼함은 꽤 오래갔다. 다만 갖가지 재료의 풍성한 맛도 함께인지라 불닭볶음면보다는 덜 맵게 느껴졌다. 평소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볼 법하다.

다음 날, 신라면 더 레드를 체험했다. 스코빌지수가 7500에 달하는 제품이라 꽤 긴장했다. 막상 끓여서 먹어보니 ‘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에 국물이 잘 배지 않은 탓이다. 방심하고 국물을 흡입한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알싸한 매콤함이 혀를 강타했다. 한동안 혀를 물에 계속 대야만 했다.

총평. 광고에서 말한 대로 ‘미친 듯이’ 맵지는 않다. 다만, 평소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이라면 도전을 권하지 않는다. 불닭볶음면, 엽기떡볶이 같은 기존 제품보다는 ‘확실히’ 맵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5호 (2023.11.22~2023.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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