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왜 그렇게 운동을 시켜?" 미국인 엄마에게 물었더니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김보민 기자]
"너희 아이는 어떤 스포츠 해?"
동네에서 아이들 친구의 엄마를 만나면 너도나도 묻는 첫 번째 질문이다. 아이 둘 다 테니스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답을 하면 곧이어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또 뭐해?"
이때부터 나는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한다. 뭘 또 하냐고? 자전거를 타고 트레킹을 한다고 해야 하나, 다들 운동을 하나 이상 하는 게 기본이라 생각하나, 뭘 꼭 더 해야 하는 건가 등등 머릿속이 복잡해져 내가 질문을 던진다.
"너희 아이들은 스포츠 뭐하는데?"
"우리 애들도 주중에 테니스하고, 주말에는 축구해. 지난주에 수영팀 훈련도 시작했고, 곧 케이팝 댄스 수업도 참여할 거야."
테니스와 축구를 기본으로 하고 수영과 케이팝 댄스를 곧 시작한다는 이 엄마를 만난 이후 다들 이 정도로 아이들 스포츠에 열정적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른 학부모를 만날 때는 내가 먼저 물어보기 시작했다. 다들 농구, 축구, 수영 등 서너 개의 스포츠 활동을 하고 있었고, 우리 집 어린이들처럼 하나만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아이들을 모두 스포츠 선수로 키울 셈인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다가도 다들 수학이 중요하다는 둥, 독서와 글쓰기는 기본이라는 둥 학업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말을 보탠다.
▲ 얼마전 아이의 농구부 레벨 테스트가 동네 초등학교 강당에서 있었다. 드리블하는 소리가 아이들의 경쾌한 발걸음을 닮았다. |
ⓒ 김보민 |
'남의 집' 아이들이 이것저것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왔다. 온 거실에 종이와 크레파스, 연필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고, 쿠션을 집어 던지며 놀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우리 집' 아이들을 멍하게 바라본 날, 단전에서 올라오는 '조급함'이 나의 온 몸에 퍼졌다. '남의 집' 아이들은 서너 개의 운동을 하고 공부하고 음악을 하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저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놀고 있어도 되는가.
테니스 외 시킬 수 있는 다른 운동이 있는지 검색에 들어간다. 얼마 전부터 큰아이가 학교에서 하는 농구가 재미있다고 했었다.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농구 수업이 있는지 찾아본다. 다행히도 타운 내 레크리에이션 센터(Recreation Center)에서 겨우내 진행되는 농구팀이 있다.
작은 아이는 공을 잘 차니까 축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손가락은 핸드폰 위에서 축구 수업을 찾고 있다. 농구는 겨울 스포츠라 곧 시작될 농구 클럽에 등록했고, 축구는 시즌이 끝나 내년 봄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운동이 일상인 나라
미국은 타운마다 레크리에이션 센터(Recreation Center)가 있다. 초∙중∙고 학생들이 방과 후 활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운동과 각종 활동, 장년층 및 노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 등을 개설하고 운영한다.
특이한 점은 센터 내 공간을 활용해 스포츠와 기타 활동을 운영하기도 하고, 타운 내 학교와 민간 시설(사설 테니스장 또는 사설 야구장 등)의 공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타운 내 축구, 야구팀은 부모들이 훈련과 경기 운영을 위해 봉사를 하기도 하고, 직접 코치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참가비도 크게 부담이 없어 해당 스포츠를 좋아하는 가족은 주말 동안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훈련과 다른 가족과의 사교도 즐긴다.
▲ 날씨가 좋은 날은 타운내 테니스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햇살 아래에서 공놀이하는 것만큼 재밌는게 또 있을까 싶다. |
ⓒ 김보민 |
얼마 전 동네 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에서 동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테니스 수업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총 4주간 일요일 아침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고등학생 언니들이 운동을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계속 테니스를 치는 자기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참여하게 했다.
일요일 아침, 동네 중학교 테니스장 앞에 학부모와 아이들이 테니스 라켓을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테니스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안면을 튼 아이 친구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또다시 요즘 아이들이 어떤 스포츠를 하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테니스, 그리고 12월부터 농구를 시작한다고 했다. 농구가 추가된 이후 내 목소리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 너무나도 궁금한 나머지 너희 아이들은 어떤 스포츠를 하냐는 질문 대신 다른 질문을 건넸다.
"다들 왜 이렇게 스포츠를 많이 시키는 거야? 아이들이 동시에 여러 가지 스포츠를 하는 것 같은데 다들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너무 순수한 질문이었을까, 아이 친구 엄마는 생각에 잠겼다.
"네 질문을 듣고 보니 아이들에게 꽤 많은 스포츠를 시키는 것 같아. 내 주변 친구들도 다들 그렇거든. 아이들이 어릴 땐 여러 스포츠를 경험하고, 중고등학생으로 자라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스포츠에 몰입하는 게 기본이라 생각했어. 이렇게 초등학생들한테 테니스를 가르쳐주는 고등학생들도 대학 입시 원서에 초등학생들에게 테니스 수업을 제공했다고 한 줄 넣을 수 있거든. 대학교 입시에도 도움이 되고 말이지."
▲ 동네 중학교 운동장, 이 날은 럭비 클럽 어린이들이 운동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
ⓒ 김보민 |
그러고 보면 주변 친구 아이 중 운동 하나에만 죽어라 덤비는 아이는 없다. 학교 방과 후 활동 혹은 레크리에이션 센터, 동네 YMCA 등에서 운영하는 각종 스포츠를 이것저것 해보며 우리가 흔히 아는 구기 종목을 비롯한 스포츠를 조금씩 천천히 익힌다.
여름과 가을에는 축구와 야구처럼 야외에서 즐기는 스포츠에 참여하고, 길고 긴 겨울에는 농구와 수영 등 실내 스포츠를 주로 한다. 아이 친구 중 실력이 좋아 운동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심적 부담 없이 뛰어 노느라 바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는 스포츠팀이 따로 있고, 대부분 학생이 한 가지 이상 스포츠팀에서 활동한다. 친구의 아이는 고등학생인데 크로스컨트리팀에서 활동한다(들판과 언덕 같은 야외를 달리는 종목, 크로스컨트리가 뭔지 몰라 검색하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스포츠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아이들이 학원에 가서 몇 시간씩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운동하러 가는 게 더 좋다. 마음껏 뛰고 달려야 하는 아이들이니 운동하면서 친구도 만나고, 체력과 운동 실력도 쌓을 수 있으니 이만한 놀이가 또 있을까 싶다.
축구, 농구처럼 팀 경기를 하는 스포츠는 혼자 하는 운동과 다른 매력도 있다. 팀원들끼리 힘을 북돋워 주고, 팀플레이가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이런 것은 책이나 말이 아닌 몸으로만 배울 수 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을 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체육 시간의 의미를 체육 선생님도 설명하지 못했다. 다른 수업의 보충 수업을 위해 자습을 하는 경우도 잦았고, 운동장에서 농구공으로 슛을 몇 번 던지다 말고 나무 그늘에서 쉬기 일쑤였다. 아무도 우리에게 운동 열심히 하라고 일러주지 않았고,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나와 다르게 어릴 때부터 운동과 친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운동을 잘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 정신력으로 버티기 어려운 순간 뒤에서 받쳐줄 수 있는 체력을 쌓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체력이 기본이 되면 정신력도 덩달아 향상하는 기적을 만날 때가 있다. 무엇을 하든 체력만큼 중요한 기본이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 아이들은 그 체력을 어릴 때부터 잘 쌓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 알기를
흔히 운동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관심을 가진다. 나도 하프 마라톤을 참여하기 전까진 어디 가서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못 했다. 동네 몇 바퀴 달리는 것은 뜀박질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마라톤 기록이 있는 사람은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알기 때문이다.
소질이 있고, 잘하는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잘 못해도, 소질이 없어도 좋아하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느끼는 만족감이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소한 행복은 잘해서 이기는 게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곧잘 승리하는 행복을 주입한다.
아이들이 운동하면서, 자기 몸을 움직이면서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길 기대한다. 그 즐거움이 순간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오랜 시간 동안 누릴 수 있는 행복이길 희망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하다 보면 잘하고 싶어질 때가 온다. 그때가 되면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고, 더 잘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미국인들의 스포츠 사랑을 지켜보며 양육자로서 아이들이 운동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하기를 바라는지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운동을 잘하기보다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우리는 테니스장으로 농구장으로 간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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