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의 아름다움에 취해 지나칠 뻔했다

문운주 2023. 11. 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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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레길 1코스는 '제주올레'에서 가장 먼저 열린 길이다.

이 길을 시작으로 27개의 올레길을 내게 된다.

 성산일출봉에서 섭지코지에 가는 길목에 있는 광치기 해변은 물이 빠지는 썰물 때 바닷물에 숨겨져 있던 비경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일출봉 끝자락이 물들고, 넓은바위와 검은 모래도 누르스름하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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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코스 ①] 일출 명소 성산 광치기해변과 터진목 학살터 현장

[문운주 기자]

▲ 성산 일출봉 광치기 해변의 일출 모습
ⓒ 문운주
     
올레길 1코스는 '제주올레'에서 가장 먼저 열린 길이다. 이 길을 시작으로 27개의 올레길을 내게 된다. 말미오름과 알오름을 거쳐간다. 억새와 띠, 검은 돌담에서 제주도만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시흥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오름과 해안길이 이어진다.

광치기 해변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역방향 트레킹이다. 성산일출봉의 비경과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총길이가 15.1km, 소요시간은 4~5 시간 예상된다. 해맞이 해안로를 따라가다가 알오름을 거쳐 말미오름으로 오르는 코스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까지 내려 체감온도가 영하의 날씨다. 일정을 19일로 변경했다. 두툼한 점퍼로 중무장을 하고, 모자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단단히 맸다. 숙소인 표선리에서 성산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6시 30분, 밖은 아직 캄캄하다.
   
▲ 성산일출봉 광치기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 물이 빠진 썰물 때라 모래톱이 햇빛을 받아 누르스럼한 색상으로 변했다. 남해의 다랑논을 보는 것 같다.
ⓒ 문운주
         
▲ 광치기 해변 물 빠진 해변 바위들이 이른 아침 햇빛을 받아 누렇게 물들었다. 멀리 섭지코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썰물 때 봐야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 문운주
 
▲ 성산일출봉 일출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상일출봉과 일출 모습
ⓒ 문운주
 
성산일출봉에서 섭지코지에 가는 길목에 있는 광치기 해변은 물이 빠지는 썰물 때 바닷물에 숨겨져 있던 비경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녹색 이끼와 검은 모래가 연출하는 풍경이 장관이다. 특히 성산 일출봉 옆으로 떠오르는 일출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해 뜨는 시각이 7시 9분,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50여 명에 달한다. 언덕 밑에 검은 모래를 넘어서면 넓은 바위가 길게 깔려 있다. 구멍이 송송 뚫리기도 하고 거북이 모습을 한 바위도 있다. 거대한 마당바위다. 

구름이 붉게 물들더니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일출봉 끝자락이 물들고, 넓은바위와 검은 모래도 누르스름하게 변한다. 말 발자국과 모래톱이 장관이다. 억새, 검은 모래, 바위와 일출봉 등이 연출한 스펙트럼을 보는 것 같다. 
  
▲ 말 타고 달리는 백기사(?) 광치기 해변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다. 새벽 햇살을 가르며 마치 황야를 달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 문운주
 
"와!" 하는 탄성이 동시에 터진다. 전문 사진가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프레임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다. 동영상을 찍는 사람,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람, 실루엣으로 뒷모습을 찍는 사람 등 저마다의 즐거움을 찾는다. 멀리서 다가오는 점 하나, 기사님 한 분이 말 타고 아침 햇살을 가르며 달린다.
제주 4·3 성산추모공원
    
▲ 4·3 성산추모공원 표석 강중훈 시인의 '섬의 우수'와 함께 새겨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의 <제주 기행문> 중에서 발췌하여 기록한 표석
ⓒ 문운주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록과 검정. 섬의 우수를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1948년 9월 25일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마을사람들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것,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군인과 경찰이 양민 학살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사건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에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 씨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 그의 시 한 편이 그  9월 25일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성산포 JC 공원에서 올레길을 따라 한 십여 분 걸었을까. 터진목(터진 길목) 제주 4·3 성산추모공원을 만난다. 북동쪽으로 일출봉이 보이는 위치다. 여기서는 군말이 필요 없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의 <제주 기행문> 중에서 발췌하여 세운 표석에 새겨진 내용을 옮겨 적는다.

일출봉 옆으로 붉게 솟아오는 일출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칫 지나칠 뻔했다. 터진목 학살터 현장이다. 제주도의 비경인 성산일출봉과 일출을 보기 위해 광치기 해변을 찾았던 그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다. 

"오늘날 이 잔인한 사건은 지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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