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단계부터 e스포츠화 고려”… 기대작 살펴보니
국내 게임 산업계가 종목 가짓수에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국내 e스포츠 역사상 체계를 갖춘 스포츠화에 성공했다고 할 만한 게임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 게 실상이다. 게임사들은 다양한 캐릭터, 체계화된 PvP(플레이어 간 대결) 콘텐츠, 극대화한 전략 요소 등을 통해 개발 초기 단계부터 e스포츠를 염두에 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e스포츠는 나날이 성장 중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글로벌 e스포츠 관중 수가 5억 7400만명이고, 2025년까지 연평균 8.1% 증가해 6억 4100만명에 다다를 거라 전망했다. 지난 19일 지난 19일 한국 팀 T1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23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은 1만 8000여 명의 전 세계 게임 팬이 현장에 집결했다. 전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팬 페스트’에는 4일간 13만 명이 넘는 팬이 다녀갔다. 또한 전 세계 롤드컵 결승전 시청자 수는 1억 명으로 추정한다. 업계에서는 롤드컵 개최에 따른 직간접적 경제 효과가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인기와 산업 규모와 달리 e스포츠 종목은 다채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실제 극히 일부 게임을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흥행한 대회를 찾아볼 수 없다. 선수 팬덤의 측면에서 스포츠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는 게임은 LoL이 유일하다.
하지만 성공적인 e스포츠 정착은 모든 게임사들의 염원이다. 게임 서비스와 e스포츠 대회가 모두 일정 수준에 오르면 매우 긍정적인 선순환 효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에 게임사들은 꾸준히 자사의 신작을 e스포츠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투자와 시간, 인력 등 큰 비용 지출이 불가피하지만 일단 안정적으로 정착하면 사용자 유입, 과금 등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최근엔 ‘하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에 대한 수요도 굉장히 높아지는 추세다.
그렇다면 최신작 중 e스포츠 가능성이 보이는 ‘새싹 게임’은 무엇일까. 우선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 럼블’이 있다. 워크래프트 럼블은 블리자드가 처음 선보이는 모바일 전략 게임으로, 자사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소재로 제작됐다. 게임판 위에서 60여 종의 다양한 캐릭터를 배치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거나 다른 이용자와 대결하는 게임성이 특징이다.
이 게임은 e스포츠 요소를 충분히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양한 캐릭터를 사용해 변칙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며 약 6주 주기마다 모든 ‘미니(게임판 위에 배치하는 유닛)’의 새로운 특성이 추가돼 PvP모드의 밸런스 조정이 가능하다. 비크 사라프 워크래프트 럼블 총괄 프로듀서는 “게임을 e스포츠화할 수 있을지 지속해서 점검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e스포츠 잠재력이 높은 게임은 크래프톤의 ‘다크앤다커 모바일’이다. 다크앤다커 모바일은 던전에서 좁혀오는 다크 스웜(자기장)을 피해 생존전을 벌이다가 후반부 생성되는 포탈을 타고 탈출는 생존 어드벤처 게임이다. 일단 포탈을 타기만 하면 획득한 전리품을 모두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최후의 1인이 되더라도 포탈을 못 타면 무용지물이 되는 독특성을 띈다.
게이머는 전사, 궁수, 도적, 마법사 등 클래스 중 하나를 골라 입맛·손맛대로 플레이할 수 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룰이기 때문에 경쟁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e스포츠의 특성과도 들어맞는다.
엔씨소프트의 난투형 대전 액션 게임 ‘배틀크러쉬’도 주목 대상이다. ‘총 없는 배틀그라운드’라는 평가를 받는 이 게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지는 지형에서 최후의 1인이 되는 걸 목표로 한다.
체력 회복과 피해량 감소 등 다양한 효과를 주는 장비와 아이템을 수집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적과 만났을 때 적재적소에 아이템을 사용하는 전략성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다. 캐릭터는 근거리, 원거리, 암살, 서포터 등으로 나뉘고 최대 30인까지 즐길 수 있는 대규모 모드도 지원한다. 무너지는 지형지물을 활용해 상대를 밀어내서 낙사 시키는 등 다양한 전투가 가능하다.
배틀크러쉬는 PC(스팀)·모바일·콘솔(닌텐도스위치) 등을 모두 지원한다. 엔씨는 앞서 배틀크러쉬의 사내테스트와 글로벌 비공개 베타 테스트(CBT)를 진행하면서 조작 관련 피드백을 받고 개발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임을 밝힌 바 있다. 3가지 플랫폼의 밸런싱 조절이 잘 이루어진다면 e스포츠 종목으로서 충분한 가능성이 보인다.
e스포츠는 진흥이 절실한 산업이다. 한국은 종주국이지만 아직도 자급자족이 불가능할 정도로 산업 기반이 열악한 상태다. e스포츠로서 잠재력이 큰 게임이라도 과감한 투자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업계와 정부 모두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이 e스포츠 종목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고정 이용자층을 모을 수 있는 ‘재미’,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릴 수 있는 ‘공평성’, 오로지 순수 실력으로만 경쟁할 수 있는 ‘캐릭터 밸런스 조정’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업계와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e스포츠 종목 발굴이 이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게임사, 정부,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e스포츠 행사를 기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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