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안 작은도서관, 안 망하고 8개월 된 사연

최승우 2023. 11. 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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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모여 '맨땅에 헤딩' 개관 준비... 자랑스러운 마을도서관 있는 삶터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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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 기자]

 도서관 기둥과 벽면의 그림
ⓒ 최승우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 작은 도서관이 개관 후 8개월을 향해 가고 있다. 냉랭하고 무심했던 텅 빈 곳이 사람의 숨을 먹고 생동감과 따뜻함이 가득한 장소로 변모했다. 도서관의 서고는 책으로 채워지고 벽과 기둥은 나무와 풍선 그림으로 채색되어 동화 속 풍경같이 아름답다. 도서관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꼬마 손님과 아이들의 놀이터로 제 공간을 아낌없이 내주고 있다.

나는 아파트 주민으로서 지난해 9월 초 아파트 작은 도서관 봉사자 모집 공고를 접하고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자원 봉사자에 지원했다. 도서관 개관 준비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도서관 감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이 작은 도서관은 지난 3월 21일 개관했다. 도서관 회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 도서관이었는데 11월 중순 현재 회원 수 150명을 넘었다. 도서 대출은 시립 도서관에 비할 바는 아니나 한 달 평균 대출 권수가 170권에 육박한다.

도서관 개관 초기 소장 도서는 아파트 주민이 기증한 아동용 도서가 대부분이었고 성인 대상 도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러나 문학 나눔 도서가 들어오고 외부 기관으로부터 500여 권의 성인 대상 도서를 기부받아 지금은 1000권이 넘는 성인 대상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시의 도서관 지원 사업으로 빔프로젝터와 컬러 프린터, 코팅기도 들여놓아 시청각 자료의 공급이 가능해지고 도서관 프로그램 운영에도 숨통이 틔었다.

영화 상영, 자수 강좌 등 남녀노소 대상 무료 강의
 
 도서관 성인 대상 서고
ⓒ 최승우
   
오는 11월 말에는 일 년 동안의 도서관 사업 실적을 제출해야 한다. 올해의 성과가 내년의 도서관 지원 사업과 연결되기 때문에 일 년 동안의 도서관 사업을 빠짐없이 모아야 한다. 북 아트와 예술 제본 전시, 어린이날 행사, 작가와의 만남, 책 읽고 도어벨 만들기, 독서 동아리, 여름 방학 특강 등 전반기의 활동이 제법 알차다.

최근에는 어른 대상의 프랑스 자수 무료 강좌를 진행했고,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편씩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영화관 이름은 '달달 영화관'은 느낌만으로도 감각적이고 달콤하게 다가온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만화 영화를 보여주고 아이들 입에는 간식거리가 물려있으니, 단어대로 '달달 영화관'이 딱 맞다.

11월 말경에는 어른 대상의 디지털 생활 교육도 예정되어 있다. 정보화로 생활의 편리함이 극대화된 세상이나 나이 든 어른의 세계에서는 변화된 사회의 적응은 어려운 문제다. 키오스크 교육과 생활 어플리케이션 이용 교육을 통해 정보화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에서 벗어나 일상의 편리함과 유용함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렇듯 도서관은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놀고 배우며, 머무르는 제법 괜찮은 문화 공간이다.
  
 디지털 생활 교육 포스터
ⓒ 최승우
 
되돌아보면 도서관 개관을 위해 해왔던 준비는 한 마디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멋모르고 의욕만 가득했던 사람이 모여 여러 시행착오 끝에 도서관 개관이라는 멋진 결과를 이루어 냈다. 먼지 날리던 공간이 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온기 가득한 도서관으로 탈바꿈했고,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서 선생님의 도움으로 도서관이 빠르게 제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소수의 마을 주민과 사서 선생님의 협력이 '무에서 유'로의 창조적 변화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 이 사서 선생님이 오는 11월 말로 임기를 마친다. 헤어짐의 아쉬움보다 앞으로 우리끼리 헤쳐 나가야 할 일에 걱정이 앞선다. 종전과 같이 5명의 자원봉사자가 각각 맡은 요일에 4시간씩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2024년도 도서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유에서 유'를 이루어야 한다.

서로의 언덕이 되어주는 사회 

치열한 경쟁적인 삶 속에서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공동체 일원으로서 할 일과 해야 할 일을 더 이상 '우리 일', '내 일'이 아닌 '네 일'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해 보인다. 공익을 위한 아파트 작은 도서관의 운영에도 예외 없이, 내 일과는 관계없는 타인의 시선으로 무관심과 무반응으로 일관할 때가 잦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작습니다. 함께 할 때 우리는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헬렌 켈러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관계의 단절에서 벗어나 나의 삶터에 대한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 첫발을 떼보면 어떨까? 첫걸음은 어렵지만, 일단 한 걸음을 떼면 뒷걸음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다행스럽게 아파트 주민 중에는 불타는 열정으로 아파트 작은 도서관의 일을 '내 일'로 여기고 첫발을 뗀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함께 서로 서로가 '비빌 언덕'이 되고 지지대가 되어 힘들어도 지치지 않게 서로 함께 걸어가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책 읽는 동네, 자랑스러운 마을 도서관이 있는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의 삶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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