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까지 ‘백중세’…물량공세 사우디, 성지순례 제한카드까지

구채은 2023. 11. 24. 15: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D-5
사우디, 성지순례 쿼터제까지 총력 방어전
빈살만, 팔레스타인 지지·원유 감산 변수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 있는 ‘호텔 드 크리용(Hotel de Crillon)'.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인 무타이브 빈 압둘라 빈 압둘아이즈가 소유한 이 호텔에는 28일(현지시간)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국 결정을 앞두고 사우디 관계자 상당수가 숙식하면서 '007첩보전'을 방불케하는 교섭을 벌이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 민·관이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원팀'으로 광폭 행보를 벌이면서 표심이 흔들릴 조짐이 보이자, 다급해진 사우디가 총력 방어전에 나선 것이다.

24일 외교가에 따르면 닷새 앞으로 다가온 엑스포 유치전은 백중세다. 파리에 위치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되는 이번 엑스포는 한국의 부산과 사우디 리야드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 이슬람 성지순례 제한카드까지 '물량공세'

특히 사우디는 '오일머니'를 앞세워 초반부터 공격적인 유치전에 나섰는데, 최근에는 ‘초호화 물량공세’로 막판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 인근에서 각국 정상과 대사들을 수차례 접촉하는 사우디 측 인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면서 “크리용 호텔에 추가 인력을 급파해 표밭갈이를 하기도 하고, 한국의 ‘뒤집기’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밝혔다. 특히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피파 월드컵과 2030엑스포 유치를 미래 치적으로 홍보한만큼 사우디 측 인사들은 엑스포 개최가 좌절되면 사실상 ‘직을 내려놔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전언이다.

최근에는 사우디 소재 이슬람 성지순례국인 ‘메카’의 순례 비자제한 카드까지 물밑에서 꺼내들며 회원국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에 투표하지 않으면, 순례 인원을 제한하겠다’는 엄포를 놓거나 ‘대통령 연고지에 오일머니를 쓰겠다’는 방식의 사실상의 ‘금권선거’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이런 사우디의 돈줄전략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각국 대사들이 한국에 우려를 전달하기도 한다”고 했다.

복병은 비밀투표다. 엑스포는 182개 BIE 회원국 대표들이 무기명 투표로 결정하기 때문에 뚜껑이 열릴 때까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각국은 투표 전 자국 대표에게 어느 도시에 투표할지 지침을 내리지만, 주프랑스대사나 대사관 소속 참사관 등이 재량으로 개최국을 찍을 가능성도 있다. 사우디 측은 특정 나라에 투표 참여 대상자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까지 하고 나섰다.

사우디는 첫 투표에서 3분의 2이상인 122표를 넘겨 1차 투표로 승기를 잡는다는 복안이다. 이렇게 되면 엑스포 개최지는 첫 번째 투표에서 바로 결정 날 수 있다. 하지만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은 도시가 없으면 3위 도시가 탈락, 1~2위 도시를 대상으로 당일 바로 결선 투표가 진행된다. 결선 투표에서는 득표 수가 많은 도시가 이긴다.

우리나라는 1차 투표에서 사우디 ‘3분의 2 이상 저지’, 2차 투표에서 ‘이탈리아표 흡수’로 전략을 세우고 '명분'과 '스토리텔링'으로 지지국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키맨’인 아프리카(49표·26.9%) 표심 잡기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막판 판세는?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경쟁국가보다 늦게 득표 활동을 개시한 데다, 사우디가 물량공세에 나서면서 초반 유치전에서는 밀리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BIE 실사단이 부산을 방문하면서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실사단은 통상 개최국의 엑스포에 대한 열의를 높게 평가하는데, 실사 당시 부산 시민들의 열정적인 지지에 감동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급변한 국제 정세도 변수다. 빈 살만 왕세자가 최근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원유 감산 조치가 겹치면서 판세가 한국 측에 유리하게 역전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원유 수출 중단으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서방 국가들이 사우디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우디가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독식 견제론’이 나온만큼 막판까지 각국의 표심 향배를 예측하기 어려운 초박빙 국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 관계자는 “부동표보다 유동표가 많아 막전막후 교섭을 하면 결과는 예측불허로 갈 것”이라면서 “사우디의 담판 외교에 맞선 소통 외교로 대역전극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