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위기 커지는데 '이런 군인'이라뇨
[장동엽]
대한민국에는 이런 군인이 있습니다. 이 군인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린 2022년 3월 5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을 한 2022년 5월 7일에 군 장성들이 드나드는 태릉골프장에서 골프를 쳤습니다. 최근 5년 동안 77차례나 군 골프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 군인은 근무시간 중에 주식 거래도 한다는 군요. 북한이 초음속미사일 등 탄도미사일을 쏜 2022년 1월 5일과 1월 17일에도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군인에게 합동참모의장을 맡기겠답니다. 바로 김명수 함찹의장 후보자입니다. 합참의장은 '국군조직법'에 따라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며,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와 합동부대를 지휘·감독하는, 군 서열 1위에 해당하는 자리입니다.
합참의장이 군 병력을 움직이는 권한을 갖다 보니, 합참의장의 권한을 명시한 '국군조직법' 제9조 제2항에는 "평시 독립전투여단급 이상의 부대이동 등 주요 군사사항은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단서조항까지 붙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공직자인 터라 인사청문회를 통해 검증을 거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 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 후보자가 지난 1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가 산회된 뒤 승강기에 올라 있다. |
ⓒ 남소연 |
그런데 '북한 도발' 때 골프를 치고 주식 거래를 하는 군인에게 군의 지휘를 맡기겠다니 앞뒤가 안 맞지요. 윤석열 정부의 안보 위기론이 과장된 것이거나, 군 기강이 그만큼 해이해졌다는 것일 테니까요.
얼마 전 신원식 국방부장관도 국회에서 주식 거래 관련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잡혀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해당 메시지는 "모 증권사의 위탁 대리자가 주식 거래 결과를 문자로 보내온 것"이라면서 "해당 문자는 오늘(7일) 아침 9시 35분에 수신하고 9시 45분에 답신한 것으로, 이는 예결위 전체회의가 시작되기 전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국가 안보의 최고위급 책임자가 공무 수행 중에 사익 추구 행위에 여념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낯부끄러운 일입니다. 신원식 국방부장관-김명수 합참의장 조합으로 군 기강이 제대로 설 수 있을까요?
논란이 가볍지 않았던 탓에 김명수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결국 파행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승겸 현 합참의장도 21대 국회 하반기 원 구성이 지연돼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않자 임명을 강행한 사례입니다.
마침 지난 21일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구실로, 윤 대통령은 '9.19 남북군사합의서'의 일부 조항에 대해 효력을 정지시키면서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도 한층 높아지고 있지요. 그 핑계로, 윤 대통령은 국회에 김명수 합참의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오늘(24일)까지 재송부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임명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남북 군사 긴장 국면을 핑계 삼아, 공직자 자격조차 의심스러운 군인에게 합참의장을 맡겨도 되는 건까요? 합참의장이 공석도 아닌데 말입니다.
▲ '셀카' 찍는 한동훈 장관 22일 오후 국회 의정관을 방문한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함께 사진을 찍자는 지지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함께 촬영을 하고 있다. |
ⓒ 류승연 |
진짜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이 또다시 실패했다는 겁니다. 인사검증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김명수 후보자는 배우자 명의의 채권 4억 원을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빼놨습니다. 이제 후보자 자녀의 '학교 폭력' 문제는 이제 단골메뉴가 돼 버렸지요.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김승희 전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에 이어 이 정부 들어 네 번째입니다. 후보자 본인 잘못이든 아니든 논란이 될 것임이 뻔한데, 매번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묻기조차 이제는 지칩니다.
인사 추천과 2차 검증을 맡은 대통령비서실이나 1차 검증을 맡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대체 무엇을 검증한 걸까요? 검증을 하긴 하는 걸까요? 앞서 부실한 인사검증 논란에서도 숱하게 보았 듯, 야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언론들조차 손쉽게 밝힐 수 있는 문제인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한동훈 법무부장관 모두 인사검증의 책임자인데, 본인이 책임을 지지도, 실무자의 책임을 묻지도 않고 있습니다. 인사검증 실패가 거듭 되풀이되지만, 대통령비서실의 복두규 인사기획관과 이원모 인사비서관도,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들 모두 하나같이 '검찰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군요.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지난 10월 11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후보자가 제출하거나 동의를 받아) 수집한 자료들을 프로토콜(규정)에 따라 의견을 부기하지 않은 상태로 기계적으로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넘기는 역할까지만 한다"며 대통령비서실로 인사검증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그런데 공직예비후보자들이 제출해야 하는 자기검증(사전) 질문서 답변에 대해 진위 여부와 법률적 쟁점을 확인하고 있는지 묻는 말에, 한동훈 장관은 "후보자들 대부분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며 "그럼 압수수색을 하느냐"고 되묻더군요.
▲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왼쪽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
ⓒ 공동취재사진 |
11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의결한 법무부의 내년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은 당초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요청한 3억9900만 원에서 3억1996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인사정보관리단에 쓰일 이 돈마저도 무척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인사검증이 효율적이지도, 적정하지도 않음은 이미 충분히 확인됐으니까요.
법적 근거는 빈약하고 제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당장 폐지해야 마땅합니다. 법대로 인사혁신처가 공직자 인사사무를 맡도록 되돌려야 합니다. 길게 보자면, '고위공직자 인사검증법'을 제정해 검증시스템을 법제화하고, 반부패⋅공직윤리 업무를 맡은 독립적 기구나 인사검증위원회를 설치해 인사검증을 맡는 방안까지도 검토할 때입니다.
인사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지만 부적격한 공직자를 임명하라고 위임된 권한이 아닙니다. 고위공직자로서 기본적 윤리의식마저 갖추지 못한 인사들을 골라서 마구 임명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사로운 이익 앞에서 국민이 맡긴 공무는 뒷전인 고위공직자들, 이제 그만 만나고 싶습니다.
[참여연대의 최근 관련 자료]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폐지하라 (2023. 10. 25.)
법무부 인사관리정보단 관련 정보의 비공개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2023. 04. 19.)
반복되는 인사실패 남 탓하는 대통령, 사과해야 (2023. 02. 27.)
윤석열 정부 인사검증 문제점과 개선방안 마련 입법토론회 (2022. 07. 25.)
'법무부 인사검증이 효율적'이라는 인사혁신처 (2022. 07. 14.)
'법무부에 인사검증권한 부여' 반대 의견서 제출 (2022. 05. 25.)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장동엽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선임간사가 쓴 것으로,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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