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친정체제'…LG '선택과 집중‧미래준비' 가속화

박영국 2023. 11. 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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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 부회장 마지막으로 구 회장 취임 당시 부회장 6인방 모두 퇴진
구 회장 취임 후 CEO 데뷔한 인물들로 경영진 구성
신사업은 젊은 경영자에, 사업 재편은 고참 경영자에…투 트랙 용병술
부회장 승진 없어…장기적으로 부회장단 없는 '젊은 경영진' 구성 전망
구광모 LG 회장이 3월 16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테크콘퍼런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LG

LG그룹이 24일까지 사흘에 걸친 인사를 통해 경영진을 재편했다. 구본무 선대회장 시절부터 중책을 맡아온 부회장들이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가운데,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최고경영자(CEO)에 데뷔한 인물들이 그 자리를 채우면서 취임 5년 만에 구 회장 친정체제가 완비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LG그룹은 이날 LG전자 등 일부 계열사를 마지막으로 2024년도 임원인사를 마무리했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순혈 LG 출신 전문경영인의 상징과도 같았던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의 용퇴와 70년생 CEO의 등장(문혁수 LG이노텍 부사장)이다.

이는 취임 5년차를 맞은 구광모 회장이 이전 세대 인물들과 작별하고 한층 젊어진 경영진으로 세대교체를 단행해 지속성장을 위한 장기 레이싱에 돌입할 채비를 마쳤음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선택과 집중’을 앞세운 구광모 회장의 공격적 사업 재편이 한층 가속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50대 김동명, 문혁수는 1등 사업 키우고…60대 신학철, 정철동은 사업재편 중책

권영수 부회장이 용퇴하면서 2018년 구 회장 취임 당시 자리에 있던 부회장 6인방(권영수·박진수·조성진·차석용·한상범·하현회)이 모두 자리를 떠나게 됐다.

남은 경영진은 모두 구 회장 취임 이후 CEO로 데뷔했거나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들이다. 구 회장은 이들 중 젊은 CEO들에게는 한창 성장 가도에 있는 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들을 맡기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경영진에는 아직 사업 재편이나 구조조정이 필요한 계열사들을 이끌게 하는 용병술을 펼친 것으로 분석된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신임 CEO(왼쪽), 문혁수 LG이노텍 신임 CEO. ⓒLG

권 부회장의 후임으로 LG에너지솔루션을 이끌게 된 김동명 사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처음으로 CEO를 맡게 됐다. 69년생인 그는 LG 계열사 CEO들 중 문혁수 LG이노텍 부사장에 이어 두 번째로 젊다. 57년생인 권 부회장과는 정확히 띠동갑이다.

김 사장은 1998년 배터리 연구센터로 입사해 R&D, 상품기획, 사업부장 등 배터리 사업 전반에 걸친 직무를 맡은 이력으로 ‘배터리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LG가 이번 임원인사의 기조 중 하나로 제시한 ‘1위 사업 달성을 위해 해당 산업에서 성과를 내고 전문 역량을 갖춘 인재 발탁’에 가장 정확하게 들어맞는 인물이다.

정호영 사장의 뒤를 이어 LG디스플레이 수장의 자리에 오른 정철동 사장은 구광모 회장 취임 첫 해인 2018년 말 LG이노텍 사장으로 처음 CEO 데뷔전을 치렀다. 정호영 사장과 같은 61년생으로 LG CEO들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인 그의 역할은 LCD(액정표시장치) 사업 사양화로 위기에 빠진 LG디스플레이의 사업 재편이다.

LG이노텍 대표 시절 수년간 적자를 지속하던 LED(발광다이오드) 사업을 과감히 접고 카메라모듈 사업을 강화해 주력 사업으로 성장시키는 한편, FC-BGA 등 신사업의 기틀을 잡는 등 성과를 보인 정철동 사장은 ‘잘할 수 있는 것은 밀어 주고, 아닌 것은 과감히 정리한다’는 구광모 회장의 ‘선택과 집중’ 경영전략에 부합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LCD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로 사업의 중심축을 옮기는 등 사업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과감한 추진력을 갖춘 정 사장이 적임자로 선택됐다는 분석이다.

LG이노텍의 수장을 70년생인 문혁수 부사장에게 맡긴 것은 회사 매출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해진 카메라 모듈 분야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더욱 굳히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문 부사장은 2009년부터 LG이노텍에 합류해 광학솔루션 개발실장, 연구소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이 기간 세계 최초 기술을 적용한 카메라 모듈을 지속 개발, 광학솔루션 사업을 글로벌 1위로 키우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권봉석 (주)LG 부회장(왼쪽),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LG

이번 인사에서 권영수 부회장과 함께 거취가 주목됐던 다른 두 부회장, 권봉석 (주)LG 대표이사와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는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63년생인 권봉석 부회장은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인 2019년 말 인사에서 LG전자 대표이사로 CEO에 데뷔한 인물이다. 2021년 11월부터는 지주사인 (주)LG에서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맡아 구 회장을 보좌했다.

구 회장의 그룹 전반 사업 재편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권 부회장의 역할이 아직 남아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그룹 내 유일한 50년대생(57년생) 경영진이다. 세대교체 기조와는 다소 이질감이 있지만 그 역시 ‘구광모 시대’의 사람이다. ‘순혈 LG맨’이 아닌, 외국기업 3M 출신으로, 구 회장이 취임 직후 영입해 당시 전지사업본부(현 LG에너지솔루션)까지 안고 있던 LG화학을 맡길 정도로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LG화학을 이끌며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SK온과의 배터리 특허 분쟁 등 여러 난제를 해결한 신 부회장에게 구 회장은 앞으로 환경규제 및 레드오션화로 사양길에 접어든 전통 화학분야 중심의 사업구조를 미래 유망 사업으로 재편하는 중책을 다시 한 번 맡겼다.

조주완 부회장 승진 없었다…부회장 자리 사라지나

‘부회장 승진설’이 있었던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계속 사장의 직함을 유지하게 된 것은 이번 인사의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2021년 연말 인사에서 LG전자 지휘봉을 잡은 그는 주력 사업인 가전과 TV, 신성장 사업인 전장 부문에서 두루 좋은 성과를 내며 LG전자의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끌어낸 공로로 이번에 부회장 승진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재계에서는 LG그룹이 젊고 스마트한 조직으로 변모하는 과정 중 하나로 풀이하고 있다. 40대의 젊은 총수인 구광모 회장 체제의 LG그룹에 다수의 부회장이 포진하는 체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2017년 9명에 달했던 부회장단이 정의선 회장의 수석부회장 취임(2018년)을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다가 지금은 정 회장의 매형인 정태영 현대카드대표이사 부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이후에도 경영진 중 좋은 성과를 낸 고참급 사장을 대상으로 부회장 승진설이 있었지만 정 회장의 회장 취임(2020년) 이후 현대차그룹 내에서 부회장 승진은 단 한 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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