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글은 산책의 부산물”…세계적인 작가는 오늘도 걷는다

서믿음 2023. 11. 24. 13:4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걷기, 오랜 기간 작가·철학자의 사색 도구
니체 "진정 위대한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
레슬리 스티븐 "글쓰기조차 산책의 부산물"

“먼 곳에서 이곳으로, ‘아직도’ 걸어오는 중인 옛사람들이 있다. ‘걷기의 즐거움’은 그들의 건강하고 온화한 발소리를 담은 책이다.”

박연준 시인의 추천사처럼 책에는 ‘걷기’를 애정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겼다. 수백 년 전 쓰인 고전이 시대의 경계를 허물고 존재 의미를 뽐내는 건 아마 그 안에 담긴 내용의 불변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일 터다. ‘걷기’도 마찬가지. 오래전 걷기는 생존을 위해 사냥감을 쫓는 필수 행위였을 테고, 후에 동물, 마차, 자동차 등의 탈 것이 생겼을 때는 가난의 필연적 선택으로 간주됐지만, 이제는 다시 건강의 효능으로 주목받고 있다. 책은 그 걸음에 관해 시대와 배경, 성격이 다른 가지각색 예찬을 전한다.

걷기는 오랜 시간 작가, 예술가, 철학가들의 사색 도구로 작용했다. 사색을 통해 영감을 얻었고 이를 통해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고 했고, 하루도 산책을 거르지 않았던,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산책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산책에 꼭 필요한 여유, 자유, 독립은 돈으로 살 수가 없다’는 그의 지론과 맥을 같이 한다.

프랑스 철학 장 자크 루소에게 걷기는 살아있음을 일깨우는 각성제였다. 그는 ‘고백록’을 통해 “걷기는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정신을 깨워주었다”며 “(걷기는)문 앞에 새로운 낙원이 기다린다는 것만을 느끼며, 어서 즐기고픈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걷기 예찬’을 쓴 레슬리 스티븐은 걷기 그 자체의 즐거움을 강조했다. 그는 걷기를 대결이나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행위를 비판하며 “진정으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그 자체가 즐거워서 걷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이클링이나 다른 여가 활동이 즐겁다고 해서 고전적인 걷기 여행을 유행에 뒤처진 것으로 여긴다면 이는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글쓰기조차 “결국 이리저리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얻은 부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책에 거론되는 대문호는 걷기를 즐긴다는 점에서 같지만, 누구와 걷느냐의 문제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영국의 문학비평가이자 당대 최고의 미술평론가로 알려진 윌리엄 해즐릿에게 걷기는 혼자만의 사색에 빠지는 시간이다. 그는 ‘홀로 가는 여행’에서 “나는 걸으면서 남과 말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며 “떠들면서 동시에 사색에 빠지질 못하고, 울적한 기분에 빠져있다가 별안간 생기 있게 대화에 끼질 못한다”고 했다. 낭만파 시에 큰 족적을 남긴 윌리엄 쿠퍼는 시 ‘은퇴’에서 “쓸쓸함, 그건 너무 달콤하지. 내가 말을 걸며 중얼거릴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고”라고 했다.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쓴 로버트 루이슨 스티븐슨은 걷기를 넘어 여행도 혼자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반자나 친구와 짝이 되어 떠나면 도보 여행은 그저 이름만 여행이 되고 만다”며 “도보 여행이 아닌, 그저 야유회 정도로 그치게 되는 것”이라며 홀로 걷기를 강조했다.

반면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도보 여행의 매력은 걷는 데 있거나 보는 풍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데에 있다”고 했다. 그는 “걸을 때는 박자에 맞추어 혀를 움직이기 좋고, 걷기가 혈관과 두뇌를 자극해 활동적으로 만들어준다”며 “경치나 숲 내음이 저절로,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새, 눈과 영혼과 감각기관을 홀린 듯 위로해주기는 하지만, 최상의 즐거움은 역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영상을 통한 대리경험이 손쉬워지면서 이미 경험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걷기 역시 직접 발을 움직이기보다 타인이 걷는 영상을 보며 간접 체험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때도 온전히 집중하기보다 핸드폰을 보거나, 밥을 먹거나, 잠에 빠지면서 시간효율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수록 온전한 걷기의 효과는 요원해지기 마련이다.

도보여행의 역사를 다룬 책 ‘방랑벽’에서 리베카 솔닛은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 마음도 발걸음처럼 시속 3마일(약 4.8㎞) 정도로 움직이게 된다”며 “우리 시대 삶의 문제는 생각이나 사색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책 속 34명의 세계적인 작가들은 걷는 속도에 생각의 흐름을 맞춰 혼자든, 함께든 지금 당장 걸어보라고 권한다.

걷기의 즐거움 | 존 다이어 외 33명 | 272쪽 | 인플루엔셜 | 1만68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