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올 겨울 첫눈, 당신에겐 어떻게 관측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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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눈이 왔다.
그러니까, 올해의 첫눈이 온 듯하다.
지금이 아직 가을인지 겨울인지 잘 모르겠으나 눈이 오면, 첫눈 같은 게 관측되고 나면, 우리는 선언하게 되는 듯하다.
당신의 올해 첫눈은 어떻게 관측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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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말로 대했던 기억 떠올라
곁의 사람에게 좋았다 말해주길
며칠 전 눈이 왔다. 그러니까, 올해의 첫눈이 온 듯하다. 지금이 아직 가을인지 겨울인지 잘 모르겠으나 눈이 오면, 첫눈 같은 게 관측되고 나면, 우리는 선언하게 되는 듯하다. 그래, 겨울이 왔다고.
기억에 남는 어느 겨울이 있다. 몇 년 전 겨울, 대학원 박사과정생이던 나는 석사과정생 후배와 시내를 걸었다. 그는 중국에서 온, 나보다 두 살이 어린 여자 유학생이었다. 나와 세부전공은 달랐지만 그가 대학원에 들어와 보낸 모든 시간엔 내가 있었다. 학과의 커리큘럼이 빈약했기 때문에 나와 함께 현대문학 수업을 들었고 나는 그에게 밥을 사준다든가 과제를 도와준다든가 하면서 그럭저럭 친하게 지냈다.
그는 다른 유학생들과는 달리 한국의 대학원생들에게 살갑게 대했다. 먼저 밝게 인사하는 그를 모두가 좋아했다. 나에게 처음 “선배, 나 밥 사 줘요!” 하고 말했을 때만 해도 ‘내가 왜 너의 선배냐...’ 하는 마음이었지만, 나는 곧 그와 자주 밥을 먹게 됐다. 나중에는 내가 먼저 “우리 OO이도 같이 밥 먹으러 가야지” 하고 챙기기도 했다. 함께 걷던 그때는 그가 장난스럽게 “선배!” 하고 나의 어깨를 때릴 만큼 친해져 있었다.
왜 함께 시내를 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지방의 중소도시는 차 없이는 굳이 시내를 돌아다닐 일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대학원생이 걸어야 할 길이라는 건 연구동에서 학생식당 가는 몇백 미터 정도가 전부였다. 아마 학과 사무실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나갔을 것이고, 마침 나의 차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했겠다. 그게 아니면 두 사람이 그 시간에 그 거리에 있어야 할 맥락이 도무지 없다.
아마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인지도 몰랐다. 그와 함께 그렇게 둘이서 대학 바깥의 거리를 걷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때, 그가 갑자기 자신의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는 나에게 말했다. “선배, 눈 오는 거 같아요.”
그해의 첫눈이, 예고도 없이 문득 흩날리기 시작한 참이었다. 나는 그에게 중국에도 눈이 오는지 물으려다가, 그건 내가 검색해 보면 될 것 같아서 삼키고는, 정말 눈이 오네, 하고 건조하게 답했다. 그런 나와 달리 그는 눈이 온다며 들떠서 거리를 경쾌하게 밟아 나갔다. 그에게 “너의 고향에도 눈이 많이 오니?” 하고 묻고 싶었지만, 왠지 그에 대해 너무 깊이 알게 될 것이 두려워 그만두었다.
“선배, 이게 올해의 첫눈이죠.”
“아, 그렇지, 이거 첫눈... 아니, 첫눈이 아닌 걸로 하자.”
“네?”
나는 그에게 서로 첫눈을 보지 않은 것으로 하자고 말했다.
“첫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봐야 해. 근데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못 본 걸로 하고 다음에 내리는 눈을 첫눈으로 하자.”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타지에 온 그가, 함께 공부하는 선배와 처음으로 대학이 아닌 거리를 걷는 동안 찾아온, 실로 다시 찾아오지 않을 첫눈의 순간에, 그렇게 차갑게 대하고 말았다. “내리는 눈을 어떻게 못 본 걸로 해요.” 하고 말하는 그는 많이 풀 죽은 모습이었다. 그와 함께 학교로 돌아왔을 때 눈은 이미 그쳤고, 우리는 서로 별말 없이 헤어졌다.
당신의 올해 첫눈은 어떻게 관측되었을까. 나는 2023년의 내리는 첫눈을 와이퍼로 닦아내었을 뿐이지만, 당신이 만약 곁의 사람이 있었다면, 참 좋았다고 말해 주었길.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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