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망 마비에 국힘 "문 정부도 있었다"... 합당한 비교일까
[박성우 기자]
▲ 전국 지자체 행정 전산망 장애 발생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내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있다 |
ⓒ 연합뉴스 |
지난 20일 행정안전부는 사흘간 이어진 전국적인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가 정상화되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상화 선언 이후에도 22일 약 30분가량 전국 주민센터와 읍·면 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 인감, 전입 발급 시스템 등이 작동되지 않고 23일 조달청 나라장터 등 행정 전산망이 1시간가량 '먹통'이 되기도 하는 등 또 다시 행정전산망이 멈춰 섰다. 계속되는 행정전산망 마비에 디지털 정부라는 이름에 오명이 생기고 있다는 우려가 속출하고 있다.
야당에서도 비판이 나오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1일 "거듭되는 국가 전산망 마비는 특정 정부의 잘못보다는 2004년 전자정부 도입 이래 역대 정부에서 누적된 문제의 결과"라며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정치 공세로 일관하는 것은 결국은 누워서 침뱉기"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2020년 초중고 온라인 수업 시스템 마비, 2021년 코로나 백신 예약 시스템 접속 장애 등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중요한 국가전산망이 마비된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취재진이 코로나19를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의 전산망 마비와 이번 사태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지 않냐고 질문하자 윤 원내대표는 "코로나 시기인지 아닌지가 어떤 전산망 마비 사태하고 과연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지 그거는 좀 더 세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윤 대표 말대로 세밀하게 따져보니
문재인 정부 때 전산망 마비와 이번 정부의 전산망 마비를 상세히 비교해보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2020년 초중고 온라인 수업 시스템 마비의 경우 김유열 당시 EBS 부사장에 의하면 코로나19 이전 2천 명 수준에 불과했던 동시 수용인원을 단 두 달 만에 3백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바꿔야 했다. 김 부사장 스스로도 "졸속으로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관련 기사: "초유의 '온라인 개학' 준비, EBS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단기간에 천 배 이상의 성능 향상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고 1차 온라인 개학 당시 여러 오류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후 전문가 20여 명이 합심해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쓴 결과 2차 온라인 개학에는 총 184만 명이 이용했지만 지연 등이 있었을 뿐 '먹통'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당시 기술상황실장으로서 현장을 지켜본 김 부사장의 증언이다.
2021년 코로나 백신 예약 시스템 접속 장애 역시 동시접속 30만 명을 처리할 수준의 서버 용량에 비해 600만 명에서 최대 천만 명까지 접속자 수가 몰렸다. 이에 정부는 사전예약 10부제를 비롯해 동시접속 금지, 본인인증 수단 확대 등을 새롭게 도입해 해결을 시도했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대기업인 LG CNS에 도움을 요청했다. 정부는 초중고 온라인 수업 시스템 마비 당시에도 LG CNS에 도움을 요청한 바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 요청에 급파된 LG CNS팀은 데이터베이스 최적화 작업과 데이터 병목 현상을 개선해 분당 처리량을 약 4.6배 증가시켰다.
해당 보도에서 LG CNS 관계자는 "정부가 급하게 백신 예방 시스템을 만들다 보니 시스템 테스트나 최적화 과정을 거치지 못했을 것"이라며 "우리가 그 최적화 과정을 진행한 결과"라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단기간에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미비한 부분들이 있었던 셈이다.
▲ 한편 이번에 발생한 전국적인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에는 유지 보수 예산이 삭감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23년 행안부 예산안에 따르면 행정업무 효율화와 국민·기업의 편의성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전자정부 지원 사업'은 2022년 720억 원에서 올해 493억 원으로 약 226억 원 줄었다. |
ⓒ 행정안전부 |
반면 올해 들어 발생한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들은 어떨까. 먼저 지난 3월, 사법부 전산망 오류 사태가 발생해 전국 법원의 재판 사무 시스템과 전자소송시스템이 중단되고 일부 재판은 연기되는 등 피해가 생겼다. 이에 법원행정처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대법원은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을 경질했다.
이후 4월 열린 전국법관회의에서 법원행정처는 데이터베이스관리자가 전원 이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원들의 상호 역할 분담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담당 공무원의 관리·감독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행정처는 "한정된 예산 내에서 용역사업을 수행하다보니 최근 상승된 인건비를 따라가지 못해 고급 기술인력을 확보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예산 부족의 문제도 덧붙였다.
6월에는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에서 오류가 발생해 일부 학교의 기말고사 정답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해당 사태의 책임이 행정당국에 있다고 비판했다.
권 의원은 4세대 나이스에서 새롭게 도입된 유치원 나이스가 초중등 나이스와는 별개의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별도 발주가 효율적이라는 개발업체의 의견을 무시한 채 행정 편의를 위해 통합 발주해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또한 권 의원은 4세대 나이스 설계과정에서 결함을 평가하는 베타테스트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어떤 요청사항이 있었는지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단순히 요청사항과 건의사항 건수만 줬다"며 "단순히 불편을 접수해 조치했다며 건수만 맞추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고스란히 현장 사용자에게 넘어갔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번에 발생한 전국적인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에는 유지 보수 예산이 삭감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23년 행안부 예산안에 따르면 행정업무 효율화와 국민·기업의 편의성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전자정부 지원 사업'은 2022년 720억 원에서 올해 493억 원으로 약 226억 원 줄었다.
중앙·지자체·공공기관 정보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도모하고 정보시스템 등의 운영현황 및 투자성과를 분석하여 최적의 운영 효율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전자정부 성과평가 사업'도 2022년 50억 원에서 올해 41억 6천만 원으로 약 8억 8천만 원 삭감됐다. 노후화된 행정정보 공동이용 시스템을 3개년에 걸쳐 전면 재개편 추진하는 '행정정보 공동이용 사업' 예산도 지난해에 비해 약 6억4천만 원 줄어들었다.
▲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 유성호 |
또한 윤 원내대표는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 제한을 전산망 마비 사태의 원인으로 꼽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문제 발생 당시 대기업인 LG CNS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반면 윤 정부 들어서 발생한 전산망 마비 사태의 원인은 예산 부족과 관리·감독 미비, 행정편의 추구가 지목되고 있는 만큼 특정 기업의 참여 여부보다 정부의 구조적·제도적 문제들부터 짚은 뒤 원인 분석과 해결 방안을 도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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