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Q sign #24] 굶어서 죽어버릴 심산
마음에 가득한 미움이라는 정체가 원통하고 억울해서 이를 갈면서 “000과 000을 사랑합니다!” 라고 울부짖는 순간, 몸이 의자에서 굴러떨어져서 성가대실 바닥을 두드리며 몸부림을 치게 되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어떻게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가 있어? 억울해, 분하다고.”
그러나 계속해서 “000과 000을 사랑합니다!”라고 악을 쓰고 있는 사이에 그런대로 익숙해졌는지 더 이를 갈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나마 미움의 독소가 빠져나가서인지 온몸이 굳어 버릴 것만 같았던 증상이 가라앉았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요일 2:9)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얼마가 지나고 회사에 출근하는 시간이었다. 그가 갑자기 무슨 일을 트집 잡아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는 항상 용암과 같이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그 소리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들릴 지경이었다. 얼마나 격렬하게 화를 내는지 덩치가 큰 남자가 분노로 몸을 뒤흔들자 소형차인 Toyoda Corolla가 들썩거리게 되었고 결국엔 Stop 사인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므로 경찰에게 걸리게 되었다. 나는 울면서 회사로 뛰어 들어갔다. 회사에서 멀지 않는 지점이었으므로.
“I am going to go to fasting prayer mountain, now. If, I am not come back even after 10 days, fire me!”(나는 지금 금식 기도원으로 갑니다. 만일 열흘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나를 해고 하십시오!) 사장인 Gary에게 말하고 뛰쳐 나와서 곧바로 Riverside에 있는 나성순복음국제금식기도원으로 달려갔다. 솔직히, 금식기도를 하려는 게 아니라 굶어서 죽어버릴 심산으로.
가뜩이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곤비한 사람이 금식하게 되니, 몸이 나무 도마 위의 해삼처럼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다리가 쑤시고 눈을 뜰 수가 없어서 그냥 엎어진 채로, 눈을 감은 채로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하루에 세 번 드리는 예배 후, 성전을 떠나지 않고 부르짖고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시 기진해서 엎어지곤 했다.
금식 7일째, 저녁 예배 후 혼자 기도를 드리는데 환상이 보였다. 그 당시 기아로 죽어가던 아이들, 머리만 크고 배가 풍선같이 부풀어 오르고 팔다리는 가죽만 남아서 새까만 비아프라 어린아이들 여섯 명을 내 가슴에서 내 손으로 떼어내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본 후, 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다음날 새벽 눈을 떴는데 아니, 어디서 힘이 났는지 온몸이 가볍고 힘이 넘쳐서 그 당시 천막 성전 밖으로 나가서 기도원 동산을 사슴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새날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생기가 펄펄 살아났다. 새벽예배를 드린 후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고 헬렌 목사님께 이야기했더니, 숫자가 6인 바로 마귀를 떼어낸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 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2)
그렇게 하고 내려와서 회사로 나가보니 내 자리가 그대로 있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그 회사는 내가 Production sample maker에서 Pattern maker가 될 수 있었던 프랑스계 유대인 회사였다.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1년이 되어가니 다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다 사라진 줄 알았던 미움이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부걱거리며 목으로 기어 올라왔다. 어쩌면 그렇게도 잔인하고 무자비한 건지.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기도원으로 올라갔다. 역시 7일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죽으려고 간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하루 3번의 예배를 드린 후, 성전에 남아서 찬송가 1장에서부터 계속해서 물러나겠다. 가다가 모르는 찬양이 있으면 건너뛰면서. 몸의 상태도 처음보다는 훨씬 나았다. 금식 6일짼가, 7일짼가 정확하진 않다. 성전에 혼자 남아서 찬양을 드릴때 내 등 뒤로 콘크리트 담이 덮여 오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아니면, 몸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가는지도 몰랐다.
그때, 나는 알았다.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면서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으로 굳어져 가면서 느꼈을 고통을.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고 헬렌 목사님의 숙소로 갔다. 목사님 앞에 엎드린 채로 상황을 말씀드리고 기도를 부탁드렸다. 목사님은 내 등을 쓰다듬어 가며 열심히 기도를 해 주셨다. 30분쯤 시간이 흐르고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 “지금, 미움의 독이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어요.” 몸이 굳어가는 혹은 돌에 눌려가는 듯한 고통이 서서히 풀려나갔다. 처음같이 심하지는 않았어도 비슷한 상황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얼마간 지속하였다. 그러며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배로부터 무언가 ‘퐁’하며 소리 나게 빠져나가더니 마침내 등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하얗게 빈 느낌이 왔다.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의 미움이나 원망은 물론이고 쓸개까지 다 빠져나간 것 같은 자유함, 어두운 토굴에 내내 갇혀 있다가 갑자기 공기가 신선한 밖으로 나온 느낌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미워할 만한 일을 왜 안 겪었겠냐 만은, 이상하게도 미워지지 않았다. 아, 이 사람은 이렇구나, 저 사람은 또 저렇구나, 그 정도에서 끝나고 말 뿐 더 이상의 진전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잘 안 생겼는데 저 사람이 잘생겨서 밉다든가, 혹은 나는 지지리 고생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너무나 잘살고 있어서 괘씸하다 등의 건강하지 않은 미움이 아닌 이상, 누구라도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게 되진 않는다. 그러나 그 미움이라는 것은 흑암의 세력이다. 어떻게 시작된 미움일지라도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나 자신이 먼저 미움이라는 마귀의 세력에 갇혀 죽게 된다.
어디라도 남을 괴롭히는 인종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차라리 싸우고 털어 버리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해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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