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찬 전 대변인 "천공을 건드린 죄는 가혹했다"
[김도균 기자]
▲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
ⓒ 남소연 |
지난 2월 저서 <권력과 안보-문재인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를 통해 천공의 대통령 관저 이전 개입 의혹을 제기했던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은 역린을 건드린 대가를 1년 가까이 톡톡히 치르고 있다.
출간 직후 대통령실은 부 전 대변인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정보통신방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관련 내용을 최초 보도했던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 기자 5명도 함께 고발됐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명예훼손 피해자는 김용현 경호처장이었고, 고발인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책에서 2021년 12월 개최된 한미안보협의회의(SCM)을 언급한 것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와 군 검찰 조사를 받은 후 기소되었고, 2021년 3월 개최된 한미국방장관 회담을 다룬 부분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국방부가 출판사를 상대로 제기한 출판판매금지 가처분 소송도 8개월째 진행 중이다.
천공 의혹에 대해 반년 넘게 수사했던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대는 지난 8월 '천공이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국방부 영내 육군 서울사무소를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공관을 방문한 사람은 천공이 아닌 풍수지리 전문가인 백재권 교수였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부 대변인은 "백재권은 백재권이고, 천공은 천공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공관 관리 부사관이 남영신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천공이 답사를 왔다고 보고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 전 대변인이 책을 처음 출판한 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반영한 <권력과 안보-문재인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 개정증보판을 냈다. 8부까지의 기존 내용에 저자에 대한 경찰과 군 검찰 조사 내용 및 가처분 소송 진행과정과 쟁점을 정리한 9부 '출간, 그 후'가 추가됐다. 새로 들어간 30페이지 분량은 ▲천공 의혹 경찰 수사 ▲방첩사·군검찰의 군사기밀 수사 ▲공무상비밀누설 경찰 수사 ▲출판판매금지 가처분 소송 등의 내용이다. 국방부가 군사기밀이라고 주장하는 6페이지 분량은 2심 결정을 존중해 가렸다.
지난 10월 중순 내년 총선에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서 출마할 것을 알린 부 전 대변인은 "천공을 건드린 죄는 가혹했다"고 토로했다. 다음은 부 전 대변인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23일 오전 전화로 진행됐다.
▲ <권력과 안보-문재인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 개정증보판 표지. 기존 내용에 저자에 대한 경찰과 군 검찰 조사 내용 및 가처분 소송 진행과정과 쟁점을 정리한 9부 ‘출간, 그 후’가 추가됐다. |
ⓒ 해요미디어 |
- 책 출간 직후부터 대통령실과 국방부로부터 여러 가지 혐의로 고소·고발당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조사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최근에는 약간 위안이 되는 일도 있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서 중앙지검으로 송치했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지난주 처분결과가 나왔는데, 검찰이 서울경찰청으로 다시 돌려보냈더라. 보완수사를 하라는 건데, 하도 억지수사를 해서 기소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 '문재인정부 국방비사'란 부제처럼 천공의 관저 이전 개입 의혹을 다룬 부분은 책에서는 아주 일부분이었는데,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다.
"책이 나온 바로 다음날 대통령실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법상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경찰 조사받으면서 명예훼손 피해자가 김용현 경호처장이란 걸 알았다. 고발인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는데, 개인의 명예훼손을 두고 대통령실이 고발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또 김대기 실장이 대신 나서줄 정도로 김용현 처장의 권력서열이 대통령 비서실장보다 높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 대통령실의 고발 취지는 뭐였나.
"책을 출간하면서 <뉴스토마토>, <한국일보> 기자들과 공모를 해 김용현 처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거였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해서 당연히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조사관에게 분명하게 얘기했다.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김용현씨가 천공과 함께 총장 공관과 육군 서울사무소를 방문했다고 공관장이 보고했다'고 들었지만, 책이나 언론에 김용현 이름 석자를 언급한 적이 없는데, 대체 김용현씨가 나로 인해 무슨 명예를 훼손당했는지 알고 싶다'고 말이다."
- 김용현 경호처장 명예훼손 혐의와 관련해 경찰 조사를 모두 4번 받았는데, 조사과정은 어떠했나.
"4월 27일 2차 조사에서 남영신 육군참모총장과의 대질과 국방부 대변인 시절 일기 원본 제출여부를 물어봤다. 남 총장과의 대질은 꼭 하고 싶고, 일기 원본은 기록정보를 이미 제시했기 때문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TV조선은 저녁뉴스에서 경찰관계자 발로 '부승찬 전 대변인, 일기 제출 거부', '조작됐다면 천인공노할 일'이란 보도를 했다. 내가 졸지에 천인공노할 짓을 벌인 사람이 된 거다."
- 천공이 대통령 관저 이전에 관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은 지난 8월 '사실무근' 취지의 최종 결론을 내렸다.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둘러본 건 천공이 아니라 풍수지리 전문가인 백재권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로 확인됐다는 건데, 이런 결과에 동의하나.
"7월 13일 제주에서 세 번째 조사를 받았다. 그때부터 질문 내용이 좀 이상했다. '목격자가 천공과 다른 사람을 오인해서 보고가 이루어졌고, 오인 보고가 육군참모총장에게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식이었다. 군의 보고체계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또 보고자가 오인할 정도로 천공의 모습이 일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8월 18일 4차 조사는 백재권 교수가 공관에 다녀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에 진행됐다. '천공이 아닌 다른 인물이 다녀갔다는 뉴스를 봤느냐'고 묻길래 '육군참모종장, 육군 인사, 그리고 사실이 확인돼 올라온 보고체계를 여전히 신뢰한다'고 답변했다. 또 'CCTV는 총장공관에 한정되고, 확인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천공이 차량에서 내리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사도 안했고, 육군 서울사무소 CCTV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수사가 미진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 지난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대통령 관저 이전을 추진하던 지난해 3월 10일~20일 사이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국방부 영내 육군 서울사무소에 출입했던 민간인 기록을 공개하면서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서울 사무소의 민간인 출입기록이 없다'는 그간 국방부의 설명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 나는 그 기록도 신뢰하지 못하겠다. 육군 서울사무소 출입기록에는 손님이 없다고 했는데, 경찰은 백재권 교수가 서울사무소도 출입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서울사무소 출입기록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없다고 하지 않는가. 국방부에 들어갈 때는 절대로 손님 이런 식으로는 출입할 수 없다. 신원을 확인한 후 신분증과 출입증을 교환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나도 국방부에 근무했지만, 그곳엔 은밀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배진교 의원이 확보한 기록도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
ⓒ 권우성 |
- 책을 통해 군사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혹시라도 비밀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조심, 또 조심했다. 현역시절 군사보안 업무를 담당하면서 실제 군사비밀을 생산하고 관리했다. 그런 내가 미쳤다고 군사기밀을 누설했겠나. 25시간 동안이나 집을 압수수색했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자 먼지떨이 식으로 수사를 하더라. 내 지시를 따른 죄 밖에 없는 대변인실 직원을 공모관계로 보는 질문도 했다. '제발 증거 좀 제시하면서 조사를 해 달라'고 말했다.
책은 대변인 재직 시절 사무실에서 작성했던 개인 일기를 토대로 썼다. 대변인을 그만두고 국방부 내부전산망 자료교환체계를 통해 일기를 넘겨받은 건데, 군 검찰은 이를 놓고 군사기밀을 반출하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내가 '승인 권한을 가진 부서장이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공보과장(국방부 부대변인)'이라고 하더라. 국방부 대변인실의 부서장이 대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진즉 알았다면 공보과장이 올리는 문서를 결재하지도 않고 부서장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군 검찰은 내 책에 언급된 내용을 가지고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는 것 같았다. '몇 페이지 몇 번째 줄에 이런 문구가 나오는데, 맞는지'하는 식으로 물어봤는데, 이런 식의 조사를 하면서 자신들은 얼마나 부끄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 군사기밀누설 혐의 외에 국방부 검찰단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판단해 민간경찰로 이첩한 사건은 서울경찰청 반부패범죄수사대가 맡았다.
"경찰은 군 검찰과는 달리 혐의 내용에 관한 수사 자료 열람을 허용했는데, 경찰 수사관이 제시한 자료(2021년 3월 17일 개최된) 한미 국방장관 회담 녹취록이 '군사기밀'로 등재돼 있었다. '녹취록이 군사기밀로 지정돼 관리되는데 왜 경찰에서 조사하는 모르겠다'고 하자 경찰관은 자신들도 국방부 검찰단에 군사기밀보호법에 따라 처리돼야 할 사건이라고 했더니 막무가내로 경찰에서 맡아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됐다고 했다. 수사관에게 반드시 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국방부는 나를 엮기 위해 이미 2년 전에 열렸던 한미 국방장관 회담 녹취록을 책이 출간된 2023년 2월 3일 이후인 2월 6일에야 정식 비밀로 등재했고, 이를 근거로 나에게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했다. 어떻게 군사기밀을 2년 동안이나 '음성'으로 보관하고 있다가 책이 나온 후 '양성화'할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책이 나온 후에야 군사기밀로 등재했다는 건가?
"군사기밀은 무조건 15일 이내에 정식문서로 등재해야 하는 걸로 안다. 2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비밀로 등재했다면 담당자는 중징계를 넘어 파면감이다. 더 황당한 건 조작됐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는 수십 페이지 분량 녹취록을 확인했더니, 내 책 내용과 같은 단어는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언급한 '소모적 논쟁' 밖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국방부는 '내용은 일치하지 않지만, 해석상 뉘앙스상 녹취록과 비슷하니 공무상비밀누설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경찰에 제시했다고 하더라.
국방부는 출판판매금지 가처분 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항고할 때, 책이 나온 후에야 부랴부랴 비밀로 등재한 한미 국방장관 회담 녹취록을 '녹취록이 군사기밀로 보호되고 있으며, 책 내용 일부가 녹취록과 같다'면서 가처분 신청 근거로 제시했다. 그리고 2심에서 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되자 이제는 한미 국방장관 회담은 군사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슬쩍 서울경찰청으로 넘겨버렸다."
- 군사기밀누설 혐의로는 군 검찰이 기소했다.
"내 책에 비밀이 어디 있나? 이미 언론에 훨씬 더 상세하게 보도된 내용들이다. 맞춤형 억제전략만 해도 <국방백서>에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그런 부분을 다 확인하고 책을 썼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한미일이 연합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런데 국방부는 비밀회의 장소에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이 얘기를 했기 때문에 비밀이라는 거다. 이런 논리가 어디 있는가."
- 대변인 시절 직원을 군 검찰이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책을 낸 후에 가장 안타깝고 마음 아픈 부분이다. 현역 군인인 그 직원은 언제나 성실했고 능력도 뛰어나서 항상 1차로 진급했던 사람이다. 그는 부서장이었던 내 지시로 내 일기를 나에게 전송했다는 이유로 기소까지 당했다. 백번 양보해서 수백페이지 분량의 일기 중에 비밀이 있었다고 해도, 그 직원은 그걸 가려낼 수 없었다. 그 부서원이 내 지시에 따라 일기를 내게 보낸 날은 대통령실 이전 계획에 따라 국방부 대변인실을 합동참모본부 1층으로 옮긴 날이었는데, 이사를 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그걸 어떻게 가려냈겠는가. 그 부서원은 비밀이 뭔지 알 수도 없었고, 비밀을 본 적도 없었는데, 내 지시를 수행했다는 말도 안 되는 혐의로 기소 당했다. 가까운 군 법무관, 변호사들에게 물어보니 '최악의 경우 징계 등 행정적 처벌은 받을 수 있지만, 사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는데, 군 검찰이 기어이 군사재판에 넘겼다.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위해서 동료 등에 칼을 꽂는 군 검찰 행태를 보니, 평시 군사법원은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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