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김경숙들은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도 되길 바라며

심지안 2023. 11. 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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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제10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 "불안의 시대, 우리는 끝까지 뭉친다"

[심지안]

지난 11월 15일 화요일,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스페이스살림'에서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기뻐하는 자리가 있었다.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주최한 '2023 제10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 - 불안의 시대, 우리는 끝까지 뭉친다'가 열린 것이다.

1979년, YH무역 노동자 김경숙은 노조가 설립되자 위장폐업을 한 사측에 폐업철폐를 요구하며 신민당사에서 점거농성을 하던 중 경찰에 의한 강제해산 과정에서 의문사하였다. 이 사건은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겼다. 이에 김경숙 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YH동우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를 만들어 2014년부터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 상'을 선정해왔다. 이 날 시상식에는 김경숙 열사의 두 조카가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YH무역 노조지부장이자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 최순영 공동대표는 이날 시상식에서 "노동 운동은 평생 해야 하는 운동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투쟁하지 않으면 조금도 이룰 수가 없다. 쉬엄쉬엄 죽을 때까지 투쟁하며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리자"는 인사말로 수상자들을 응원했다.

올해 수상자는 동료의 부당해고에 맞서 단식투쟁으로써 전원복직을 이끈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이하나 상담사와 방문점검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을 알리고 권리 보장을 이끌어낸 민주노총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로 공동수상이 이뤄졌다. 
 
 2023년 제 10회 올해의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은 전국금속노동조합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왼)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이하나 상담사(오)가 공동수상하였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당신은 나다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곡기를 끊은 이하나씨와 여성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은 우리 여성 노동자 모두의 투쟁이기도 합니다. 한 노동자에 대한 부당해고는 우리 모두에 대한 부당해고입니다. 우리는 당신들 자본이 원하는 대로 더 이상 밀려나지 않겠습니다. 해고 여성노동자들의 복직이 곧 성평등입니다." 

- 저축은행중앙회 콜센터 여성 해고노동자 복직을 촉구하는 여성노동자 선언문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고용승계 약속을 어긴 효성ITX에 맞선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해고자들을 위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투쟁에 나선 이하나 상담사. 그는 동료들의 부당해고에 반발하다 결국 사측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후 그를 포함한 3명의 해고자들이 남아 투쟁을 이어갔고 그의 단식농성은 700명의 연대 단식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사회각계의 연대도 이뤄졌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마침내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로부터 전원 복직을 약속받기에 이른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콜센터 노동자를 내킬 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여긴 오만한 자본에 일침을 가한 귀한 승리다. 이 사회는 여성의 노동을 존중할 줄 모르고, 우리의 일터는 일하는 사람을 쪼개고 갈라놓는다. 이러한 행보를 멈춰 세우고, 동료의 손을 잡은 이하나의 행동은 우리에게 동료와 연대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다정하고도 당당한 동료 이하나 상담사를 만나 기쁘다"며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이하나 상담사는 "1월 1일에 거리 투쟁을 시작했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투쟁이 끝나 이 상을 받게 되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또 세상에 나올 것 같아 지속한 투쟁이었다. 외롭지 않게 싸울 수 있도록 저희 3명을 조합원으로 받아준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와 많은 연대단체들에 감사드린다. 계속해서 다른 투쟁사업장과 연대하겠다. '각성한 노동자를 이기는 자본과 권력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사는 노동자가 되겠다"고 수상소감을 나누었다.

이어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가 여성노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노동자 대다수가 비정규직이거나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특수고용직인 방문점검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유류비조차 자부담을 해야 하고 고객의 폭언과 폭력에 무방비 노출되는 업무환경은 이들의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결국, 이들은 노조 출범 2년 3개월 만에 방문점검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이뤄냈고, 노동조합 활동 보장, 위급상황 시 작업중지 등 다양한 권리를 보장받았다. 노동법상 근로자성조차 인정하지 않던 법원에서도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매니저를 채용한다는 달콤한 말로 불안정 노동을 감추었으나,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며 경력단절을 겪은 중년 여성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을 건당 수수료에 의존하는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았다"며 이들의 싸움을 두고 "여성노동자가 뭉치면 얼마나 강인한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함께하여 이뤄내는 여성노동자의 당당한 모습에서 김경숙 열사의 정신을 본다"며 LG케어솔루션지회를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이에 LG케어솔루션지회 김정원 지회장은 "22살 어린 나이에 자본에 맞서 목숨 걸고 투쟁했던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부담이 된다.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여성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가 권력에 굴하지 않고 신분의 굴레를 벗고 마음대로 노조활동하며 대우받는 사회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로 알겠다. 앞으로 계속 투쟁하고 전진하겠다"라고 수상소감을 나누었다. 

"노동은 배신하지만 동료는 배신하지 않아"
   
 2부에서 진행된 <불안을 뚫고 나간 우리의 순간들> 토크쇼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LG케어솔루션지회 김진희 수석부지회장 님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시상식이 끝나고 토크쇼 '불안을 뚫고 나간 우리의 순간들'이 이어졌다. 이하나 상담사는 동료와 연대하다 해고됐음에도 투쟁을 이어간 심정에 대해 묻자, "동료가 떠나가면 일터를 사랑할 수 없다. 누가 희생하고 용기 낸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고 말한다. LG케어솔루션지회 김진희 수석부지회장도 "당장의 임금개선도 중요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이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경력단절의 상황이 있다. 이 활동이 앞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조합원들에게 노조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각자도생하지 않고 연결의 힘을 믿은 이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LG케어솔루션지회 김진희 수석부지회장은 노동조합을 하게 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한다.

"내가 지나가는 이 길마저도 어떤 노동자들이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내가 이 길을 걷고 있고 이 길이 깨끗한 이유도 누군가는 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내 구체적 삶이 누군가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연결을 느낀다. 내 삶에 충실할수록 다른 이의 노동 역시 값지게 다가온다. 그것이 이들이 나 아닌 다른 이의 불안까지도 안을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이하나 상담사가 처음 콜센터에 입사했을 때, 상담사들 모두가 신입인 상황임에도 적절한 매뉴얼이나 가이드가 없었다. 이들은 이직률을 낮춰 안정화하기 위해 직접 스크립트와 매뉴얼을 만들며 주체적으로 노력하기도 했다. 자기 몫을 넘치게 해내고도 부당해고를 겪은 것이다. 운에 따라 재계약과 해고가 갈리는 상황은 개인으로서 감당하기에는 큰 불안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해고된 내 동료의 현재가 나의 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주 잡는 손들이 하나하나 나타나 곁이 되어줄 때 그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세상에 대한 용기가 된다.
    
 2부에서 진행된 <불안을 뚫고 나간 우리의 순간들> 토크쇼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이하나 님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이하나 상담사는 투쟁 220일째 되는 날 동조 단식 220명을 모아 동조 단식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이는 220일이 되기 불과 3, 4일 전에 기획되었고 다들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당일 아침에 700명이 넘는 동조 단식이 이루어졌다. 그는 "저희 때문에 같이 굶어주시는 게 고맙고 우리가 한 이 투쟁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됐다. 더 열심히 싸우자는 동기부여가 되었다."며 연대의 순간을 전했다.

어렵고 약하고 아픈 데를 이야기하고 싸우는데 오히려 주변이 든든해지고 자신도 모르는 힘이 자기장처럼 주위를 호위하는 연대의 경험은 '내'가 '우리'로, 나아가 '세계'로 확장되는 변혁이 된다. 힘이 넘쳐서가 아니라 모자라고 아파서 연대는 이루어진다. 나를 통과한 고통이 연대라는 공명을 낳을 때 우리는 그것이 삶이다 기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수상자 모두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며 동료와 연대하여 직접 환경을 바꾸고 성과까지 이끌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노동을 할수록 삶의 질이 떨어지는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로 저자가 3년간 직접 다양한 저임금 노동을 하며 겪은 일들을 기록하였다)을 겪으면서도 현재 내 곁의 동료와 미래 여성세대를 아우르는 연대의 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날 모인 2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후배, 선배, 동료 여성노동자들은 자기 현장을 지키며 김경숙 열사의 현재를 이어나가고 있다. 미래의 김경숙들은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2023년 제 10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 참여자 단체사진
ⓒ 한국여성노동자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6기 노동기록팀 소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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