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창지대 양반가 소울푸드였던 '이네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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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 정지승]
그런데 난데없는 상어배미라니. 독특한 이름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해남군 송지면지를 보면 금강마을과 월강마을 지명유래지에 그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한다. 거기에는 '뱃사람들이 상어를 잡아와서 곡식과 바꿔간 곳'이라는 내용을 짤막하게 나온다.
유사한 것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모두가 곡창지대로 여겼던 바닷가 인근 마을에 붙은 지명이다. 해남의 제 1항구였던 어성천을 따라 올라가보면 해창만을 비롯해 최대 곡창지대인 삼산면 사러리 들판이 있다. 그곳에도 이와 흡사한 이야기가 전한다. 추수 때 바람 불면 곡식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소리가 '사르륵사르륵'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인데, 얼마나 곡식이 많았던지 그 풍성함을 빗댄 표현이다.
그곳에는 만석지기 양반이 살았고, 아직도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산면 백포리 공재 윤두서 고택과 초호리 윤철하 가옥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사용한 그대로 잘 보존되어 고택은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사러리 들판의 만석지기 이참판 댁은 70년대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송지면 월강마을 상어배미에서 구산천을 따라가면 보이는 초호리. 마을 앞 수백 미터 정도된 둑길에는 노거수가 있다. 오래전 이곳은 포구였고, 노거수는 어선을 정박할 때 뱃줄 묶는 용도로 심어진 나무들이다. 200~300년 세월을 견디며 수십 그루 노거수가 여전히 생기를 품고 서있다.
옛 영화가 가득한 때는 여러 문인의 왕래가 잦았고, 그들은 시문을 남겼다. 그 내용 중에는 어성귀범(漁城歸帆)이라는 문구도 있다. 지역의 풍광 중에 8경을 노래한 것으로 먼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해질녘 어성포에 돛배를 끌고 오는 모습을 그림처럼 기록한 것이다.
그 시절 만선의 깃발을 올리며 포구를 찾아오던 뱃사람들은 누구며, 무슨 고기를 주로 잡았던 것일까? 조사해 보니 사수도 해역에서 어장을 형성한 예작도 어민이 대다수였고, 그들이 잡은 물고기는 정어리멸치와 이네기라고 부르는 상어였다.
사수도에서 추자도 인근 수역은 그때도 지금처럼 황금어장이었다. 해남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쳐서 비교적 어족이 풍부하지만,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큰 물고기를 구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사수도 인근 해역에서 잡아온 이네기 상어로 포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렸고, 젓갈을 담을 수 있는 정어리멸치는 양반집 아녀자들이 귀하게 여길만한 품목이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예작도의 마지막 상어낚시꾼 이양재씨의 이야기다. 이른 봄 상어 철이 되면 바다에 나가려고 부인 전상례씨와 주낙을 준비하는 과정이 카메라에 그대로 포착됐다. 주낙을 준비해서 예작도 주민들은 상어잡이 채비를 서두른다.
화면에는 현재 예작도 김창근 이장 부부도 나온다. 그는 3톤이 넘는 배를 끌고 다녔는데, 한번은 엄청 큰 이네기가 걸려서 그의 부인이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옛날처럼 여럿이 다니면 상어잡이가 훨씬 수월할 터인데, 대다수가 뭍으로 나가고 마을에는 몇 가구 남아있지 않았다. 보통 100킬로그램이 넘는 상어를 잡으려고 부인과 단둘이서 다니기엔 버거울 정도였다고.
이네기 상어는 갈퀴로 걸어서 배 위로 올려야 하는데, 얼마나 힘이 센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민들이 준비한 도구가 몇 가지 된다. 몽둥이는 필수다. 배로 가까이 올 때 상어를 때려서 기절 시켜야 했고, 서너 시간 실랑이를 쳐야만 가까스로 상어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빨이 강한 상어가 줄을 끊어 버릴 수 있으니 낚시 줄 중간에 철사 줄로 고정한다. 미끼는 보통 전어를 쓰는데 상어잡이에는 숭어를 토막 내서 사용했다. 피 냄새로 유인해서 상어를 잡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 정지승은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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