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소신, 관치, 그리고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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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경질설에 휘말린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애초 연말에 스스로 옷을 벗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1년6개월여 동안 금융위원회를 무난하게 이끌었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각도 예상돼 명예롭게 물러나려고 했다는 것이다.
공매도 금지는 특히 총선을 앞두고 내놓은 포퓰리즘적 대책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포퓰리즘 정책으로 변질될 우려가 큰 관치는 더욱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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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포퓰리즘과 맞닿은 관치
갑작스레 경질설에 휘말린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애초 연말에 스스로 옷을 벗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1년6개월여 동안 금융위원회를 무난하게 이끌었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각도 예상돼 명예롭게 물러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계획은 한순간에 꼬였다. 자진 사퇴가 아니라 경질이라는 불명예 퇴진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일이 틀어진 건 공매도 (한시) 금지 논란 때문이다. 겉으로는 여당이 총대를 메고 금융당국을 압박했지만, 윤석열 대통령까지 (공매도 금지)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원사격에 나선 중대(?) 사안이다.
공매도 금지는 특히 총선을 앞두고 내놓은 포퓰리즘적 대책으로 볼 수 있다. 외국계 유력 투자은행(IB)의 불법 공매도 사실이 알려진 후 악화된 개인 투자자들의 민심을 달래려는 성격이 강하다. 더구나 현재 총선 판세가 여당에 유리하지 않아 '1400만 개미'의 표심을 어떻게든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계산을 깔고 움직였는데, 김주현 위원장은 공매도 금지에 줄곧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당장 지난 달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그랬다. 소신을 굽히진 않았다. 그렇지만 뜻대로 돌아가진 않았다. 정부와 여당의 압박에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공매도 중단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이 원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졌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 정책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다. 특히 소신을 굽히지 않는 고위 관료와 의견이 엇갈린다면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면 방치해선 곤란하다.
다만 이번처럼 정부·여당이 찍어 누른다면 정부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길 기대하긴 어렵다. 금융위 내부에서도 공매도의 순기능을 옹호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답이 이미 정해진 분위기에서 누가 감히 반대 의견을 개진하겠는가.
공매도 금지 논란은 정부 안에서 벌어진 정책 철학이나 집행과 관련된 문제다. 그런데 이건 은행권이 집중 포화를 맞은 윤석열 정부의 ‘관치금융’ 논란의 연장선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서슬 퍼런 권력자가 작심하고 내뱉는 한마디에 당사자가 휘둘리기 쉽다는 점에서 닮았다.
윤석열 정부는 금융업종 중에서도 특히 이익을 많이 내는 은행권을 겨냥해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 시도에 대한 경고, 시중은행의 예금금리 경쟁 자제 엄포, 은행의 공공성 강화 주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업종은 기본적으로 사익 추구가 인정되지만 공공성도 요구받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기업 활동과 서민 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막대해서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관치'가 어느 정도 용인된다.
다만 여론을 등에 업었다고( 또는 여론을 등에 업기 위해) 힘을 앞세워 찍어 누르기 식으로 나선다면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철에 접어들면서 부작용은 제쳐두고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어서다.
공공성·투명성이 배제된 관치는 결국 후유증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특히 포퓰리즘 정책으로 변질될 우려가 큰 관치는 더욱 위태롭다.
남승률 증권자본시장부장 nam91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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