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인질협상 막후에 바이든 있었다…석방 질문엔 '핑거크로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인질 석방 및 일시 휴전 협상 과정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매체는 23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한 달여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13차례 통화를 하며 인질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를 설득하는 등 깊이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합의한 인질ㆍ수감자 맞교환과 관련해 이날 석방 절차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매사추세츠 낸터킷에서 추수감사절 휴가를 보내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인질 석방과 관련된 업데이트 소식은 없느냐”는 취재진 물음에 “완료가 될 때까지 업데이트할 게 없다”고 답했다. 이어 “세 살짜리 미국인 여자아이도 석방자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검지와 중지를 교차하며 “잘 되기를 바란다”(I’m keeping my fingers crossed)고 했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번 협상 과정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개입은 지난달 7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기습 공격 몇 시간 뒤 백악관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240여명 가운데 미국인이 일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미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7일 하마스 공격 직후 카타르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과 관련된 구체적 정보를 갖고 백악관에 접근했고 석방 문제를 거래할 수 있다고 했다”고 악시오스에 말했다.
이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브렛 맥거크 국가안보회의(NSC) 중동ㆍ북아프리카조정관, 조시 겔처 백악관 부보좌관에게 인질 석방 협상을 담당할 비밀 실무조직 구성을 지시했다고 한다. 카타르와 이스라엘도 내부에 유사한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악시오스는 “바이든 정부 내에서 이들 조직의 작업 내용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매일 이들의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줌 영상을 통해 이스라엘에서 실종된 미국인 가족과 1시간 반 동안 통화했다. 이어 닷새 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 만나 인질 석방 문제를 논의했다. 지난달 23일 미국인 모녀 인질 2명이 하마스로부터 풀려 나오면서 더 많은 인질을 구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작전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던 지난달 25일 하마스는 미국 측에 추가 인질 석방 협상 의사를 보냈지만 이스라엘은 진의가 의심된다며 이틀 뒤 대규모 병력을 가자지구에 투입해 본격적인 지상전에 들어갔다.
소강 상태를 보이던 협상 상황은 열흘 이상이 흐른 뒤 다시 풀리기 시작했다. 하마스가 인질 50명 석방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보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2일 카타르 국왕에게 전화해 인질 신원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고 하자 하마스는 50명 전원의 구체적 신상 정보를 제시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14일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고 협상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1차 석방 인원 50명에 이어 향후 추가로 20여명을 석방할 수 있다는 하마스 측 의향을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달하며 합의 수용을 설득했다고 한다.
당일 텔아비브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맥거크 조정관의 만남이 있었는데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맥거크 조정관은 전후(戰後) 가자지구 통치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맡기를 원한다고 한 반면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 군인들은 나중에 다시 ‘하마스탄’(하마스가 통치하는 국가)으로 바뀔 ‘파타스탄’(PA를 이끄는 정당 ‘파타’가 통치하는 국가)을 세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맥거크 조정관이 자리를 뜰 때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는 이 협상이 필요하다”며 팔을 붙잡고 카타르를 통해 하마스 측에 이스라엘의 최종 조건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다 협상이 다시 난관에 부닥쳤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최대 의료기관 알시파 병원을 공격하자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알시파 병원 공격을 중단하지 않으면 협상을 모두 끊겠다고 위협했다. 비밀 실무조직을 통해 이스라엘군이 알시파 병원의 운영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협상이 재개됐고, 결국 21일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인질 석방 및 4일간의 휴전에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날 매사추세츠 낸터킷으로 추수감사절 휴가를 떠났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대 손준호 6개월째 구금…中, 클린스만 호소에도 "법대로" | 중앙일보
- "남편, 돈 대신 제주땅 받아와"…그 교사 120억 날린 사연 | 중앙일보
- 팩폭 '서장훈식 위로' 왜 떴을까…'청년비하' 野가 되새길 때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
- “의사 양반, 나 죽기 싫어요” 존엄 지킨다던 노인의 본심 | 중앙일보
- 강남 청약 30평대 사라졌다…몰래 남겨둔 '29가구의 비밀' [부동산? 부동산!] | 중앙일보
- "서울 안가길 잘했네" 울산서 일사천리 암치료…'원팀' 덕이었다 [지역의료, 희망있다] | 중앙일
- 라면은 억울하다…몸에 해롭다? 이것만 넣으면 건강한 한 끼 [Cooking&Food] | 중앙일보
- [단독]김기현 10억 이재명 18억…107억 원한 '쪽지예산'도 있다 | 중앙일보
- 이번엔 사무실 근무중 단추 풀었다, 7급 공무원의 노출 방송 | 중앙일보
- 난데없이 형수 등장했다…'불법촬영·협박' 황의조 스캔들 전말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