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기본법 시행령 보완해서라도 국어문장사 양성해야"

김슬옹 2023. 11. 2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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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어기본법 최초 발의자 국어문화운동본부 남영신 회장

[김슬옹 기자]

전 세계에서 국어기본법이 있는 나라는 프랑스를 비롯하여 몇 나라 안 된다. 물론 나라마다 법체계가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2004년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2005년 1월 27일 공포되어 7월 28일부터 시행되어 어느새 18년이 되었다. 전 세계 282개의 세종학당을 비롯해 전국 22개의 국어문화원 등이 모두 국어기본법이 있어 태어날 수 있었다.

국어기본법은 국가에서 처음 발의한 것은 아니었다. 한 개인이 발의하고 노력하여 전문가들과 관련 단체들의 동의를 얻어내고 마침내 정부와 국회를 움직여 입법에 성공했다. 그가 바로 국어문화운동본부(사단법인) 남영신 회장이다.

1987년 한글날 무렵 거의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한 이도 남영신 회장이다. 필자는 그때 대학을 갓 졸업한 후였는데 신문기사를 보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울법대 출신으로서 국어전문가들도 못한 최초 우리말 분류 사전을 펴냈기 때문이다.

1967년 서울대 법대 입학 후 한자 뒤범벅이었던 '법학개론'을 보고 우리말글 운동에 뛰어든 지 20년 만에 이룬 문화사적 쾌거였다. 분류 사전을 펴낸 뒤로 평생 우리말글 운동과 연구를 해 온 남영신 회장을 지난 7일, 국어기본법에 따라 국어단체들이 연합하여 세운 세종국어문화원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 1987년에 최초 우리말 분류 사전을 펴낸 남영신 회장 1987년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우리말 분류 사전’을 들고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남영신 회장 @김슬옹
ⓒ 김슬옹
 
- 어떻게 국어기본법을 발의하게 된 건가요?
"2002년 무렵, 국어에 관한 법이 있어야 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처음 생각난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 같은 것이었어요. 우선 내가 법대 출신이라는 거 하나 하고, 그 당시는 공문서에 한글 전용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는데, 공공언어를 바로잡기 위해 공무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지요.

당시는 한글 전용이냐 아니면 국한 혼용이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까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법인데, 그 법을 만드는 거는 공무원들 하고 국회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 문체부 국어정책과에 건의했지만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조직적으로 움직여야겠다 싶더라고요. 전문가 소모임을 만들고 마침 그 당시의 남기심 국립국어원 원장과 허웅 한글학회 회장 등이 지지를 해주어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지요."

- 국어기본법 초안 역시 회장님이 만드신 건가요?
그렇지요. 이 일을 빨리 추진하기 위해서는 일단 초안이 있어야겠기에 프랑스 등 외국 사례를 참조하여 초안을 만들었죠. 그때는 아마 국가기본법이 아니고 국가진흥법인가 그랬어요. 이 초안에 동의한 남기심 원장과 허웅 회장이 각각 5명을 추천하고 내가 직접 5명을 불러모아 15인으로 된 국어진흥법 추진 위원회를 만들었지요.

처음 2회 모임까지는 식사비까지 모든 비용을 제가 냈지요. 그러다 보니 부담도 되고 얼른 원로분들의 동의를 받아 국회 발의로 가자고 했지요. 동의를 받으러 다니는 중에 국어정책과 김수현 과장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 일을 국어정책과에서 앞장서서 추진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국어정책과에서 내가 만든 초안을 좀 더 보완해서 지금 국어기본법에 근접하는 수정안을 만들었지요."

- 그럼 지금 국어기본법과 회장님이 처음 만든 국어기본법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차이가 있지요. 예를 들면 국어와 관련해서 이 법을 제대로 안 지키면 벌금을 프랑스식으로 내게 하자는 것이 처음 초안에는 있었지요. 그런데 그때는 법의 규제를 풀자는 흐름이 있어서 그렇게 세게 나가면 법 자체가 통과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법이 먼저 통과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모두 동의해 주었지요. 그러면 공무원들에게 벌금을 내도록 하는 건 다 빼고 그 대신 국가가 의무를 지는 것으로 했지요."

- 규제를 뺀 거에 대해서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도 그때 욕을 많이 얻어먹었는데 그때 논리가 이런 거였어요. 법이라는 건 만들기가 참 어렵구나. 법 하나를 만들어서 국가가 시행하기까지는 엄청 어려운데 고치는 건 조금 쉽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만약에 규제를 넣어서 입법 자체가 안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지요.

다만 국가가 공공언어를 지키는 것을 강제하면 국민들한테 강제하는 것 이상으로 효과는 날 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실상 개인들이 간판이라든지 여러 가지 공적인 생활을 할 때 국어기본법을 잘 못 지켰을 때 어떤 불이익을 준다기보다는 국가가 그걸 관리를 국가가 이를 잘 관리할 잭임을 지라는 식이죠.

그래서 구체적인 규제안을 뺀 초안을 만들어서 정부가 서울을 비롯해 6개 도시를 돌면서 공청회를 하는 데 1년이 걸렸지요. 그러고 나서 입법에 성공했고 2005년에 국어기본법이 제정될 수 있었습니다."

- 그럼 국어기본법의 최대 효과는 무엇인가요?
"역시 최고 효과는 국어문화원, 세종학당 등의 기관이 생긴 것이죠. 그다음에는 정부 각 부처에 국어책임관을 두게 하여 공문서가 국어기본법을 어기지 않도록 지도하는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각 지자체가 국어 바로 쓰기 조례를 만든 것이 부수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시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 조례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국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내용의 조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어기본법 규정에 따라 정부가 국어문화원 연합회에 의뢰하여 모든 정부 기관의 공문서 평가 사업을 시작했거든요. 작년에 예비 평가를 했고, 올해는 본 평가를 하고 있지요. 곧 그 결과가 나올 건데요. 그 결과에 따라서 정부 기관의 공공언어가 국민에게 쉽고 바르게 전달되는 방향으로 발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업을 주관하는 국어문화원의 위상도 많이 높아질 것 같아요."

- 그러면 국어기본법을 보완하거나 아니면 시행령 등을 통해서라도 정책적으로 집행되어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요?
"먼저 국어책임관 제도를 보완해야 해요. 현재 국어기본법 10조, 국어책임관의 지정 조항에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국어의 발전 및 보전을 위한 업무를 총괄하는 국어책임관을 그 소속 공무원 중에서 지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죠.

그래서 현재 중앙행정기관 50명, 중앙행정 소속 기관 1,405명, 지방자치단체 243명, 교육청 253명, 공공기관 350명, 특수법인 66명, 모두 2,367명이나 임명되어 있어요. 그런데 거의 다 겸직이다 보니 실질적인 역할을 못 하고 있지요.

그래서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인원을 별정직으로 하면 재정 부담이 너무 크므로 중앙 부처와 광역자치단체에 한 명씩을 별정직으로 두자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도 파급 효과가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한국고전번역원 같은 기관을 국립국어원으로 들어오게 해야 해요. 고전을 보급하려면 우리말 번역 문장을 제대로 써야 하는데, 지금의 한국고전번역원은 국어 문장 작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적어도 국가의 기록물은 국어기본법을 기반으로 하는 한글맞춤법과 기타 어문 규정에 맞추어 적어야 하잖아요. 국립국어원 안에 고전번역원이 있다면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입니다.

국립국어원 안에 고전번역원을 넣으려면 국립국어원을 한국어청으로 격상해야 할 것입니다. 세종께서 언문청을 만든 것을 본받아 현대에 한국어청을 만들어 국어의 모든 문제를 연구하고 정책을 시행한다면 세종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 우리말글을 제대로 잘 쓰고 이끄는 국어전문가가 많이 필요한데 국어기본법에서 이런 점을 강화할 수 없나요?
"좋은 지적해 주셨어요. 우리말글 교육이 제대로 안 된다면 국어기본법은 무의미하게 되죠. 그래서 내가 1999년부터 10년 넘게 해오다가 지금은 중단한 '국어문장사' 양성을 국가 차원에서 시행할 수 있도록 국어기본법에 관련 조항을 추가해 주면 좋겠습니다.

국어문화를 잘 이끌어가려면 교정, 교열 등 국어 현장에서 수고할 전문 인력이 필요하잖아요. 국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국어 문장사' 자격증을 만들었는데, 10여 년은 아주 인기가 많았죠.

그러다가 한때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취업과 연결이 안 되고 비용 문제도 있고 해서 중단되었죠. 이제는 한류와 함께 한국어 열풍도 불고하니 국어 전문가가 많이 필요한 시기에요. 국어기본법 시행령을 보완해서라도 국어 문장사를 양성할 수 있기 바랍니다."

- 국어 전문가들도 국어기본법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슨 절실한 법으로 인식을 많이 안 하는 것 같고요. 국어 교사들도 일부는 이제 국어기본법을 모르기도 하고 좀 더 많이 알려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국어기본법은 국민들한테 직접 이래라저래라하는 법이 아니므로 국민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이래라저래라하는 것들이 많아요. 그걸 이용해서 '예를 들면 국가에서 발행하는 모든 기록물은 국어기본법에 따른 어문규정을 지켜야 한다'라고 한 규정을 확고하게 적용한다면 지금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서류를 다 점검해야 돼요."

- 그동안 많은 책을 펴내셨는데 어떤 최초 책 말고 가장 이렇게 애정이 가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아무래도 가장 많이 나간 책이겠죠.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라는 책인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틀리거나 잘못 쓰게 되는 것들을 설명하고 사람들이 좀 잘 쓰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아직도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02년에 처음 나왔으니 벌써 20년이나 지났네요.

다음으로는 롯데 출판대상 받은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이에요. 분류 사전은 사실은 단순한 뜻풀이만 있잖아요. 어떤 시인이 한 얘기가 여기서 낱말을 찾아서 그걸 가지고 시에 썼는데 독자들이 이 낱말이 이렇게 쓰이는 게 맞느냐고 질문을 해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도 뜻풀이만 보고 그 뜻에 맞게 이 뜻이라면 이렇게 써도 되겠다 해서 썼는데 독자들이 이 낱말을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물어봤다는 거예요. 용례를 제시하지 않으니 그런 문제가 생겼겠구나 싶어서 용례 사전을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국어 용례 사전' 덕에 글 쓰는 사람들이 도움을 좀 받았을 거예요."

남 회장은 법대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법 쪽의 꿈을 접었는데 법(국어기본법)을 만드는 중요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나 예사 웃음이 아니었다. 50년 넘게 우리말글을 지키고 가꾸고자 고심하며 보람차지만 험난한 길을 걸어온 이의 깊은 고뇌가 배어 있는 웃음이었다.

남 회장은 요즘 세종 배우기에 푹 빠져 있다면서, 앞으로 '세종학교'를 세워 세종 정신, 훈민정음 정신을 널리 펴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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