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저주토끼> 정보라가 외면하기 힘든 고통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편집자말>
[장순심 기자]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이 다니는 병원이 많다. 고질병처럼 아픈 허리 때문에, 삐걱거리는 무릎과 약해진 이 때문에, 점점 더 지독해지는 근시와 새로이 등장한 난시 때문에, 최근엔 어깨 통증까지. 이제 병과는 한몸이 되어야 하고 병원과는 친밀한 친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노화, 질병으로 인한 육체의 고통은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은 세상의 일이 내 일처럼, 나의 고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불의의 사고와 재난으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그 가족들이 겪는 아픔과 두려움의 실체를 목도하게 될 때가 그렇다. 외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은 마음을 괴롭게 한다.
책 <사회적 고통>에서 사회학 교수 비나 다스(Veena Das)는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이 신들의 변덕스러움과 그런 신들이 일으킨 우발적 사건의 결과로 본다고 했다. 반면 권력을 가진 자들은 고통 받는 자들이 불의하기 때문에 받는 처벌로써 고통을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정말 모든 고통은 개인의 책임일까. 복합적이고 다양한 사회 속에서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 정치적 책임으로 구분할 수 있는 세부적인 규정은 없다. 다만 같은 책에서도 밝히듯 "정치적, 제도적, 경제적 권력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에서 비롯된 모든 것은 '사회적 고통'이다".
우리 모두는 사회의 구성원이며, 빈곤과 학대, 폭력의 피해자는 물론이고, 사회적 참사로 인한 고통 또한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적 고통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 고통에 관하여, 정보라(지은이) |
ⓒ 다산책방 |
정보라의 소설 <고통에 관하여>에서는, '고통은 위험신호이며 우리 몸이 세상과 의사소통하는 방식'이며, '분노와 슬픔, 무모한 두려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공포'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고통에 관하여>의 배경은 통증을 무력화하는 완벽한 진통제가 등장한 미지의 세상이다. 내성 없이 안정적인 진통제를 개발한 제약회사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그 배후에 고통만이 구원받는 길이라고 설파하는 종교 단체가 나타난다.
교단은 포괄적인 관점에서 고통의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그들은 데카르트를 읽고 고통이 주는 통증 신호가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어 영혼이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에 주목했고, 고통이 없는 삶은 자신의 영혼을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라 결론지었다. 그들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는 고통을 겪지 않는 인간은 신의 구원을 갈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고통이 없는 상태가 죄악에 빠진 상태보다도 더욱 무서운 타락이라는 주장을 수긍했다. 그들은 통증의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고통에 수반되는 두려움, 절망감, 모멸감, 자괴감, 분노 등의 정서적 반응에도 주목하며 이것이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고통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었다.(p.29)
책에는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다양한 고통의 실체가 등장한다. 친족성폭력, 자녀 학대, 사이비 종교 단체의 폭력 등. 이 모든 일들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자행된다. 완벽한 결과를 위해 인간들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은 오히려 삶의 진실된 이면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지독한 고통마저 삶의 의미가 되는 현실.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조그만 고통을 겪고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들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교단이 주는 인정과 치하는 삶의 의미 혹은 그에 가까운 어떤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삶의 의미. 그 삶이 고통이라도, 거기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든 견뎌낸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오래 지속되면 고통을 견뎌내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된다. 삶의 의미를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더 건강하고 자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찾을 능력과 자원은 이미 고통을 견디는 데 소모되어 사라진다.(p.30)
삶에 대한 인간의 의지
고통이 삶의 의미가 되는 소설 속 이야기는 작가의 말대로 지금 우리 시대를 말하는 것 같다. 매 순간 벌어지는 참사를 접하며 인간은 존재의 나약함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사회의 구조를 불신하게 된다. 작은 불안이나 사고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긴장하게 한다. 그 모든 참사에서 내 가족이 배제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언제 내게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강박적 사고가 자리 잡는다.
소설에서 인체 실험의 대상자인 경은 폭탄 테러로 인해 자신을 인체 실험에 내몬 부모를 잃는다. 돌봄의 위치에 있는 부모로부터의 지독한 폭력, 끔찍했던 경험은 다양한 증상을 수반한다. '타인의 공격성과 악에 대한 감지능력과 자기 방어의 본능'으로 경은 숨어들지만, 몸은 끊임없이 고통의 신호를 보내오고 9년 반의 시간은 비정상의 시간이었기에 정상인 세상에서 견뎌낼 수 없다.
소설은 고통으로부터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무수한 견딤, 상실의 아픔과 고단함을 보여준다. 또 위선과 배신의 감정이 쌓이고 허물어지는 과정을 표현한다. 그들 모두의 고통을 테러와 살인이라는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상처를 극복하고자 무던히 애쓰는 인간의 삶의 의지를 이야기한다.
<고통에 관하여>는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고통'이란 주제에 관해 탐색하는 소설이다. SF 스릴러란 틀 안에 고통의 실체를 추적하는 작가의 깊은 탐구가 담겨 있다. 소설은 막힘없이 읽히지만 고통의 문제가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작가의 깊은 탐구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한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모두 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다. 충분히 잘 먹고 충분히 잘 쉬고 내 몸을 잘 돌보았을 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괴로운 상황을 탈출할 길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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