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상생협력마저 노조 허락 받으라니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2023. 11.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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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정부-협력사 '상생협력 공동선언식'에 금속노조 '규탄선언문'
자동차 산업 생태계 장악 큰 그림?…노란봉투법과도 연계
2월 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투쟁선포식에 참여한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기아 노조) 조합원들이 행진하고 있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패싱(passing).’ 개인이나 단체 간의 관계에서 무시하거나 없는 취급을 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다. 마땅히 거쳐야 할 곳을 그냥 지나친다는 게 본래의 의미니, 신조어에서도 마땅히 행위나 논의에 포함시켰어야 할 존재를 ‘열외’시켰을 때 주로 패싱이란 용어가 쓰인다.

최근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이 용어를 사용했다. 지난 20일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정부, 전문가 및 협력사 대표들과 함께 ‘자동차산업 상생협력 확산을 위한 공동선언식’을 열자 금속노조가 ‘노조 패싱’이라고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금속노조는 성명을 통해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를 포함해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은 공동선언과 관련한 어떤 내용도 듣지 못했다”면서 “협력사와 하청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의제라면 원‧하청 노조, 노동자의 얘기를 들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를 배제하고 사장들끼리 상생을 외치는 건 모두를 기만하는 짓”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과연 ‘패싱’이라는 용어를 제대로 사용한 것일까.

상생협력의 내용은 선언식에 참여한 주체들이 ‘상생협의체’를 만들고 대기업이자 원청인 현대차와 기아가 협력사들의 숙련인력 채용, 직원복지 증진, 산업안전 강화 등의 지원을 통해 전문성과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특히 기존 1차 협력사에서 중소 협력사인 2, 3차 협력사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가능하고 폭넓은 지원책을 강구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부도 업계의 노력에 상응해 성장, 고용, 복지로 이어지는 자동차산업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제반사항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현대차와 기아, 정부는 지원의 주체들이고 협력사는 지원을 받는 쪽이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도록 자문을 해주는 역할이다. 여기서 누가 ‘패싱’을 당했다는 건지 근거를 찾기 힘들다.

원청 대기업들의 중소 협력사 지원은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를테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납품대금 연동제나 저금리 대출 및 이자 지원 등을 통해 자금 융통을 원활하게 하고, 특허 공유나 R&D 컨설팅 등을 통한 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식이다.

협력사에 대한 직 간접 자금 지원은 직원의 처우 개선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지만, R&D나 신규 설비 투자를 통한 경쟁력 향상에도 사용돼야 한다.

반면 노동계가 요구하는 상생협력은 거대 산별노조 차원에서 대기업에 최대한 많은 금액을 뜯어내 산하 조직 조합원들에게 분배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지난 2018년 금속노조가 추진했던 ‘하후상박 연대임금’이 대표적이다. 당시 금속노조는 산하 사업장들의 임금인상 요구안을 기본 7.4%로 하되, 현대차와 기아, 한국GM 등 임금수준이 높은 완성차 3사만 5.3%로 낮췄다. 대신 기본 인상률과 완성차 3사 인상률 차액만큼을 중소 협력사 근로자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 지원에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사측은 동일하게 7.4%의 임금인상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었다.

그 해 자동차 업계 실적 악화로 완성차 3사는 그 정도 금액을 올려줄 여력이 없었다. 결국 현대차와 기아는 노조 요구안(임금 5.3%·11만6276원 인상+사회양극화 해소 비용 2.1%·3만470원)의 3분의 1 수준인 4만5000원 인상에 그해 임단협을 타결했다. 한국GM은 최대주주인 제너럴모터스(GM)와 2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자구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임금을 동결했다.

3사 모두 ‘임금이 7.4% 인상되면 그 중 2.1% 인상분을 중소 협력사 근로자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 지원에 사용하겠다’는 전제였으나, 실제 인상률이 그에 못 미쳤으니 연대임금도 없던 일이 됐다.

당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금속노조가 추구하는 것은 평균연봉 1억원에 육박하는 대기업 노조는 그들이 원하는 만큼 임금을 올리고, 추가로 더 받아내 협력사 지원에 사용하자는 식이다.

분배의 주체도 금속노조다. 대기업에서 내놓은 금액을 금속노조가 직접 협력사 조합원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공동선언의 취지인 ‘안정적인 자동차 산업 생태계 구축’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막대한 자금을 손에 쥐고 분배하는 금속노조의 힘만 커지는 구조다. 결국 금속노조가 자동차 산업 생태계 전체를 손에 쥐고 흔들겠다는 심산이다.

금속노조는 이번 상생협력 선언에 대해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한 힘 빼기”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면서 “노조법 개정안이야말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선책”이라고 주장했다.

노란봉투법에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간주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원청 대기업을 노사관계의 당사자로 끌어들여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대상을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금속노조가 그리던 자동차 산업 생태계 장악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하청과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노조의 횡포, 그리고 그로 인한 산업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더 무게가 실린다.

6대 경제단체들 뿐 아니라 각 업종별 단체들까지 ‘산업 생태계 파괴’를 경고하며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 친화적인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거대 노조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면했던 산업 대재앙을 윤석열 정부에서 떠안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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